구글 요청한 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여부
차기 정부서 결정…美 정부 가세로 셈법 복잡해져
지도 데이터, 자율주행·디지털트윈 등 산업계 '원유'
산업 주권·안보 중요…장기적 실익 면밀히 따져야
구글의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 허가 요청에 대한 파장이 거세다. 연일 국회에서는 지도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경계하는 내용의 토론회가 열리고, 국내 IT(정보기술) 업계는 너도나도 반대 성명을 내고 나섰다.
구글의 요청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2007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1:5000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해외로 가져가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1:5000 지도 데이터는 50m 지도상 거리를 1cm로 줄여 골목길 모습까지 식별할 수 있는 지도다. 우리 정부는 번번이 안보를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그런데, 여기에 미국 트럼프 정부가 가세하며 상황이 복잡하게 꼬였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국별무역장벽보고서(NTE)'에서 지도를 포함한 위치정보 데이터의 국외 반출 제한을 두고 '디지털 무역 장벽'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안이 외교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부담감이 커진 탓일까. 정부는 국외 반출 결정을 유보하고 처리기간을 60일 연장하기로 했다. 공을 다음 정부로 넘겨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국내 테크 기업들은 이렇게까지 거세게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에 반기를 들고 나서는 것이며, 구글은 두 번이나 거절당했음에도 이토록 집요하게 반출을 요구하는 것일까.
정답은 지도 데이터가 갖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있다. 단순히 구글맵 고도화 뿐만 아니라 지도 데이터를 활용해 미래 산업에서 주도권을 쥘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반발이라는 것이다.
우선, 지도 앱에 국한해 살펴보자. 지도 앱은 관광, 여행, 외식 등 다양한 산업군과 연계되며 고부가가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용자가 특정 지역의 장소를 검색하면 인근 식당, 카페, 숙소 등까지 자동 추천되는 식이다. 이는 사용자 체류 시간 확대와 예약 수수료 및 광고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장점을 갖는다. 네이버지도, 티맵모빌리티, 카카오맵 등의 사업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생활 밀착형 비즈니스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허가해줄 시 지도 API(오픈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가 구글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도 데이터를 구축하는 데엔 천문학적 금액이 들어 다수의 기업들은 네이버나 티맵모빌리티의 API를 사용한다. 구글도 대표적인 해외 API 사업자다.
현재는 국내용 서비스로 네이버나 티맵의 API를, 해외용 서비스로 구글의 API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구글이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확보할 경우, 글로벌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들은 구글이 제공하는 API를 쓸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구글의 진입이 여러 기업에 선택권 확대가 아닌 시장 독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구글이 API 제공 가격을 인상하거나 접근을 제한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피해가 불가피하다. 어떤 분야에서건 진출 초기에 친절했던 사업자도 일단 시장을 독점하면 돈 욕심에 눈이 돌아간다.
미래 산업 혁신을 이끌 것으로 평가받는 테크 산업에는 더욱 영향이 크다. 지도 데이터는 미래 산업에 원유와도 같은 존재다. 도로 위의 자율주행부터 도시 전체를 디지털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스마트시티, 그 모든 것을 가상 공간에서 구현하는 디지털트윈까지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핵심 인프라로 작용한다.
수조를 투입해 지금까지 축적한 국가적 전략 자산을 해외 서버에 반출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가져다줄 이득은 도대체 무엇일까. 구글은 구글맵 고도화를 통한 국내 관광 활성화를 내세우고 있다. 현재 구글맵은 국내에서 도보 길찾기 등을 지원하고 있지 않은데, 1:5000 수치지도 데이터를 가지고 있으면 이를 지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구글맵이 단순히 잘 작동한다고 해서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구글맵 때문에 여행을 결심했다는 관광객이 얼마나 될 지는 찬찬히 계산해봐야 할 문제다.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국가 자산 격인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요구하는 구글의 요청을 단순히 외교적 명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의 산업 주권과 안보를 눈앞의 외교적 실리와 맞바꿀 수는 없다. 장기적인 실익을 면밀히 따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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