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들의 몸값은 인기에 의해 좌우되고, 그 인기의 등락은 대중, 특히 열혈 팬덤이 쥐고 있다. 그동안 팬덤은 자신이 지지하는 연예인을 절대적으로 감싸왔다. 위법이든, 부적절한 언행이든 마찬가지다. 최근 김호중 팬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팬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다. '소비자'를 넘어 '감시자' 역할을 차처한 팬덤은,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연예인의 윤리적 태도와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적‧비판함은 물론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까지 만들고 있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최근 아이돌 그룹 더보이즈 멤버 선우는 예의 없는 태도로 대중뿐 아니라 팬들의 질타를 받았다. SNS에 공개된 한 영상에서 선우는 자신이 떨어뜨린 무선 이어폰을 경호원에게 주워오게 하고 이를 한 손으로 받으며 인사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 영상이 퍼지자 대중은 "예의가 없다"고 지적했고, 선배 가수인 나나 또한 "혼나야겠다"며 비판했다. 소속사는 공식 사과문을 내며 수습에 나섰지만, 정작 선우는 팬 플랫폼을 통해 "몇 초까지 영상으로 선을 넘는 악플을 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고 욕을 먹는 게 무섭다"고 반박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에 팬덤 또한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선우는 장문의 사과문을 올렸으나 '예의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보다 앞선 사례로는 에스파 멤버 카리나가 있다. 지난해 2월 카리나는 이재욱과의 열애를 인정했고, 팬들은 반발했다.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인근에 사과를 요구하는 트럭 시위를 벌인 팬들도 등장했다. 이에 카리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이 놀랐을 마이(팬덤명)들에게 조심스러운 마음이다. 그 마음을 나도 알기 때문에 더 미안하다"며 장문의 자필 편지를 게시했으나, 결별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앞선 사례들은 멤버들의 사과로 급한 불을 껐지만, 사생활 논란으로 팬들의 항의를 받고 그룹에서 탈퇴한 사례도 있다. 2023년 9월 그룹 라이즈로 데뷔한 승한은 데뷔 직후 연습생 시절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 유출됐다. 이 사진에는 승한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 여성과 입을 맞추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에 승한은 팬들의 강한 질타를 받았고, 그의 탈퇴를 요구하는 팬들도 다수 등장했다. 그러자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는 승한의 무기한 활동 중단 처분을 내렸으나 지난해 10월 활동 복귀를 발표했다. 팬덤의 탈퇴 요구에 활동 재개로 응답한 소속사에 팬덤은 분노했고, SM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 1000여 개의 근조화환이 놓였다. 결국 승한은 팀에서 탈퇴했다.
연예인들의 태도와 사생활 문제에 대한 지적은 최근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레드벨벳 멤버 슬기가 공항에서 매니저와 신발을 바꿔 신으며 '하이힐 갑질 논란'에 휩싸였고,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멤버 연준은 광복절에 일본 거리에서 촬영한 사진을 게시한 후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는 '강도'의 수준과 '팬덤'의 개입이다.
통상적으로 연예인의 발언 실수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대중 VS 팬덤'의 구도가 형성된다. 일례로 최근 뉴진스의 행보가 있다. 대중은 외면해도 팬덤인 버니즈는 여전히 뉴진스의 행동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러나 이제는 '팬덤'이 오히려 대중보다 더 엄격해졌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비판에서 이제는 적극적 비판은 물론 연예계 퇴출까지도 팬덤이 결정하게 된 것이다.
영역도 넓어졌다. 범죄 행위는 당연히 비난받고, 사생활 논란도 이젠 수시로 일어난다. 여기에 과거 발언, 일상적 언행, 젠더 감수성, 약자에 대한 인식, 팬과의 소통 방식까지, 사소해 보이는 지점까지도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에게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팬덤의 변화는 연예인 본인뿐 아니라 소속사의 역할과 책임도 막중해졌음을 의미한다. 단순한 이미지 관리뿐 아니라 연예인의 윤리 교육과 논란 발생 시 대응 매뉴얼 구축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이런 상황에 대해 JYP, 하이브, 큐브 엔터테인먼트 등이 윤리 교육과 대응 매뉴얼이 구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팬덤이 연예인에게 기대하는 도덕적 기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이제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잘못을 무조건적으로 감싸기보다는, 비판 역시 성숙한 팬 문화의 일부로 인식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연예인들 또한 팬덤의 여론을 기민하게 살피고 있으며, 특히 유래를 알 수 없는 밈이나 유행어 등은 불필요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더 신중하게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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