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시장 개막하며 글로벌 기업들 선점 경쟁 본격화
메모리에선 미국 마이크론의 HBM 시장 진입 주목
파운드리에선 美 정부 업은 인텔 참전이 업계 화제
"HBM 글로벌 3사, 파운드리 2사에 한국 기업 과반 이상"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협회 사옥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임채현 기자
반도체 업황이 깊은 침체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진입하는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이 개막하면서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의 선점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메모리 분야에서 미국 마이크론의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진입과 비메모리 분야에서 인텔의 파운드리 참전이 업계의 최대 화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향후 첨단 반도체 산업에서 확장할 수 있을 지를 두고 여러 시선이 엇갈리는 가운데 '위기보단 기회가 될 것'이라는 업계 전문가 목소리가 주목 받고 있다. 특히 그간 한국이 우위를 점했던 메모리 분야, 그 중에서도 AI 첨단 반도체 부상은, 한국 기업들이 업황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지난달 27일 본지와 만나 국내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해 "반도체 업황이 올해는 이륙하는 시기이고, 속도를 내는 시간"이라며 "2026년에서 2027년 사이 제대로 호황 사이클에 올라탈 것이라 본다"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제조적 측면에서 전세계 상위권 기업 아닌가. 업황이 좋아지면서 충분히 그 호황의 혜택을 누릴만한 조건을 갖췄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사이클 어디까지 왔나
최근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6년 4개월 만에 최고 증가율을 회복하는 등 반도체 사이클이 호황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업계 안팎에서 쏟아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안 전무는 "금리가 내려가지 않는 이상 실물 경제는 못 올라간다"면서도 "작년부터 우리 반도체 쪽에서 AI 반도체 수요가 많이 생기지 않았나. 다만 실물 경기가 좋지 않다보니 확 올라가진 않는 그런 분위기다. 그래도 점진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안 전무는 "AI 확산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 특히 국내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나"는 질문에 "AI 반도체로 지금 엔비디아가 뜨거운 감자다. 다만 엔비디아는 설계 회사지 않나. 설계는 하지만 공장이 없다. 고로 이걸 제조할 수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라는 이야기"라며 "GPU 옆에 D램을 달아야 AI 반도체가 되는데 엔비디아는 그 D램에 HBM을 달고 있는 것이고,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SK하이닉스, 삼성, 마이크론 등 3사 뿐인 것"이라고 했다.
최근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HBM 시장이 격전지로 떠오른 상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밀려 점유율 10% 미만인 마이크론은 지난달 26일 5세대 HBM3E를 세계 최초 양산한다고 밝히며 승부수를 던진 상황이다. 아울러 이를 엔비디아에 납품하기로 했다는 수주 사실도 공개했다. 만년 메모리 3인자 마이크론이 삼성을 제치고 엔비디아의 고객사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안기현 전무는 "삼성같은 경우에 HBM 분야에서 하이닉스보다 한발 늦었다는 평가, 그리고 마이크론이 끼어들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는데, 이미 기술 개발은 다 됐다"며 "고객 확보만 하면 되는 상황이고, 고객도 엔비디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메타, 구글 등의 빅테크 기업들도 인공지능 반도체를 충분히 할 수 있다. 엔비디아 외 다른 설계사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AI 반도체 설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꼽히는 HBM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글로벌 3사 뿐이고, GPU에 이를 합쳐 하나의 AI 반도체로 찍어낼 수 있는 회사는 전세계 2개 뿐인데, 그 중 과반 이상이 한국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AI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HBM 제조 수요는 점차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점과 엔비디아 외에 다른 설계 고객사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점이 국내 기업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메타, 오픈AI의 CEO가 직접 방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판교에 위치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한 사무실 공간에 위치한 웨이퍼.ⓒ임채현 기자
메모리 이어... 파운드리도 인텔 참전으로 3파전
파운드리의 경우 어떨까.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TSMC, 삼성전자에 이어 최근 미국 인텔이 치고 올라오는 형국이다. 미일 주도의 기정학 시대에 직면한 삼성 파운드리에 대한 견해는 어떨까. 안기현 전무는 "1등이 TSMC고 2등이 삼성이다. 전세계에서 첨단 제조기술을 가진 회사가 딱 여기 두 곳이다. TSMC는 삼성 파운드리 규모의 세배라 사실상 넘어서기 힘들다. 삼성은 메모리와 시스템을 같이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몸집, 즉 매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기술력으로 쫓아가는 쪽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없다는 것이다.
대만 TSMC와 비교해 삼성이 경쟁력을 갖춘 것은 어떤 부분일까. 안 전무는 "GAA 공정을 경쟁사보다 앞서 도입한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그는 "3나노부터 신기술을 먼저 도입했으니 처음 수율을 높이는데는 당장 시간이 좀 걸렸지만, 2나노부터 GAA 공정을 쓰겠다는 TSMC보다 나중에는 더 빨리 치고나갈 수 있다는 것이 삼성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안기현 전무는 뒤늦게 파운드리 시장에 뛰어든 미국 인텔의 행보를 두고는 '블랙박스'라고 표현했다. 아직 포트폴리오가 없는 상황에서 경쟁자로 등장한 탓이다. 안 전무는 "잘 모르지만, 위협적이기는 하다. 인텔이 삼성보다 앞서면 고객이 그쪽으로 먼저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큰 식당에서 줄서있는 상황에서 옆집에 근사한 새 식당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맛은 알 수 없지만 일단 불안감이 들지 않겠나"고 했다.
최근 업계에선 보조금과 관련한 볼멘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조만간 내놓을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종합 지원방안'에 '반도체 보조금 지원'은 포함되지 않는 분위기가 커지면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반도체 주권을 쥐기 위해 너도나도 앞다퉈 투자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국과 대비된다.
안 전무는 이를 두고 "미국의 경우 '보조금'이라는 혜택을 주는 반면, 한국은 세액공제가 그나마 유일한 혜택인데, 사실상 최근까지 반도체 업황이 적자를 기록한 만큼 세액 공제가 의미가 없다"며 "이는 생존의 문제이고 지금은 전쟁 중이라고 보면 된다"고 쓴소리를 뱉었다.
"아까 파운드리 기업을 맛집에 비유했는데, 손님 많은 큰집은 팔아도 남는 이윤이 없다고 치자. 신메뉴 개발해야되는데 마진이 안남으니 개발이 되겠나. 새로 지은 곳은 건물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 원가 보전까지 누군가 지원해준다고 생각해보면 장사하기가 얼마나 유리한 조건이겠나"
삼성전자는 메모리, 팹리스, 파운드리 사업을 모두 영위하는 종합반도체 기업이다. 연간 50조원 가까이 투자에 쏟아붓고 있음에도 각 사업부별로 나눠서 쓸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오로지 파운드리에만 삼성전자와 비슷한 연간 투자 금액을 들이붓는 TSMC와는 현재 상황으로는 사실상 제대로 된 경쟁이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다.
모바일 시대 저물고 모빌리티 중심으로 시장 형성될 것
안기현 전무는 향후 반도체 수요처가 모바일에서 모빌리티로 옮겨갈 것이라고 단언했다.그는 "자율주행 전기차가 하나의 전자제품이 아니냐. 다만 자율주행 차는 안전성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에 스마트폰 대비 D램,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가 10배 정도 이상 많이 들어간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또한 "저렴한 모바일과 다르게 모빌리티는 비싸게 만들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을 내주는 순간 산업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 바로 그것이고 반도체에서 '안보'가 나오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안 전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에도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미국과는 협력, 중국은 반도체 수요국이다. 둘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며 "미국이 없으면 제조를 못하고 중국이 없으면 팔지를 못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미국은 반도체 장비를 갖고 중국 산업을 통제하는 것이고, 우리는 중국에 줄 장비가 어차피 없는 상황. 실제 미국 반도체 지원법 가드레일 조항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도 했다.
끝으로 안 전무는 반도체 기술 유출과 관련해 "양형 기준이 높아져야 한다. 국가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산업인데 현재 법으로는 유출에 대한 판결조차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다. 실질적인 법 처벌에 대해 다시금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정부에 반도체 기술 유출과 관련해 양형 기준을 높여달라는 건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양형 기준이 다소 모호한 탓이다. 최근 협회에선 "기술 유출에 대한 양형 수준을 높여달라. 중대한 기술유출의 경우 형법 98조 간첩죄를 적용해달라"는 목소리를 정부 측을 향해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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