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오케 가자'…일본 영화관에서 본 야쿠자와 중학생의 기묘한 우정기 [D:영화 뷰]

데일리안(도쿄) =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4.02.12 14:32  수정 2024.02.12 14:32

아야노 고·사이토 준 주연

일본 도쿄 롯폰기 힐즈의 토호시네마. 도쿄 영화제의 거점으로 한국 영화인들도 일본 개봉을 앞두고 기자회견 등을 개최하는 장소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도쿄 영화제 취재를 위해 찾았을 당시 전 세계 많은 영화인이 북적였다.


롯폰기 힐즈에 전망대, 모리 미술관, 쇼핑센터, 지하철 등이 모두 연결돼 있어, 롯폰기에 방문한 여행객이 한 번쯤 현지 영화를 관람하고 싶다면 편리하게 토호시네마 포함한 동선을 짤 수 있다.


지난 달 30일, 일본에서 상영 중인 영화 '가라오케 가자'(カラオケ行こ)를 관람하기 위해 찾은 토호시네마의 평일 아침 9시의 풍경은 한산한 한국의 영화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달 12일 개봉해 이미 상영관이 많이 빠진 터라, 아침 9시 5분 영화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영화관에서 눈에 띄는 건 팸플릿 진열 코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이 팸플릿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신작과 개봉 예정작의 팸플릿이 영화관 한쪽을 장식하고 있었다.


상영관 안내 확인과 티켓 발권은 기계로 가능하다. 가격은 2000엔. 한화로 약 17780원이다. 코로나19 중 세 번 인상한 한국 영화관 티켓값이 15000원인 것에 비교하면 비싼 편이다. 상영관은 크지 않았고, 영화가 시작될 쯤 관객은 총 12명이었다.



와야마 야마 작가의 만화 ‘가라오케 가자’가 원작인 영화는, 꽤 다양한 연령층을 흡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줄거리는 야쿠자 쿄지가 끔찍한 벌칙이 걸린 조직 내 노래 대회에 살아남기 위해 인근 중학교 합창부 부장 사토미를 찾아가 노래를 배우는 여정이다. 변성기로 고민이 깊어져 있던 사토미는 야쿠자 쿄지의 행동이 못마땅하고 귀찮다. 무엇보다도 어른 야쿠자는 만날 일 없는 미지의 존재다.


사토미에게 두려움과 호기심의 존재인 쿄지는 무서운 인상과 달리, 노래방에서 엑스재팬 '쿠레나이'를 열창한다. 그 모습은 귀엽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사토미의 노래 교실'을 통해 쿄지는 점점 나아져 간다. 어느 날은 조직원 두목부터 부하까지 모두 데려와 사토미에게 노래 조언을 얻고자 한다. 야쿠자들이 사토미 앞에서 각자 노래를 부르고 평가를 기다리는 모습은 영락없이 웃음 포인트다.


서른 아홉살의 야쿠자와 중학생의 기묘한 우정은 노기 아키코 작가의 손에서 각색돼 조금 더 감성적이고 명랑해졌다. 노기 아키코는 ‘하늘을 나는 홍보실’ ‘중쇄를 찍자’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언내츄럴’ ‘MIU404’ 등 인기 드라마를 집필한 일본의 인기 드라마 작가다. 일상의 조각을 포착해 온기를 퍼뜨리는 내공은 ‘가라오케 가자’에서도 발휘됐다.


주연인 아야노 고는 일본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배우다. 국내에서도 리메이크된 ‘최고의 이혼’ ‘마더’에 출연했으며 이상일 감독의 ‘분노’, 넷플릭스 시리즈 ‘신문기자’ ‘야쿠자의 가족’ ‘유유백서’ 등에 출연했다.


미간을 항상 찌푸리고 있지만, 엉뚱한 말로 사토미를 자꾸 웃게 만드는 쿄지 캐릭터를 매력 있게 재해석했다. 이는 아야노 고가 지금까지 사랑받았던 필모그래피와도 연결 짓게 한다. 데뷔 초반 아야노 고는 죽음과 가까운 음울하고 모성애를 일으키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 같은 캐릭터의 정반대에 있는 야쿠자, 형사 등 과격한 액션 역할도 꽤 많이 맡았다. 이 두 가지의 분위기가 '가라오케 가자'에 조금 유쾌하게 담겼다.


사이토 준은 '가라오케 가자'를 통해 처음 데뷔한 신예다. 사이토 준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졌을 당시,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이 화제를 모았다. 직위, 직업, 나이에 상관없이 평등한 관계로 나아가는 사토미의 변화를 풋풋하게 그려냈다. 연기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사이토 준은 “아야노 고가 촬영 중, 나를 배우로 신뢰해 줬기 때문에 그 기대에 답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촬영 현장에 다니고 있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쿄지와 사토미가 각자의 슬럼프에서 벗어나 평등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실제 배우들의 관계성에서도 기인했을 터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켜는 관객도 없었고 극장에서도 불을 켜지 않았다. 관객들은 대화는 물론 미동도 하지 않고 온전히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하던 습관으로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스마트폰을 확인하려다 주위 분위기에 재빨리 화면을 껐다.


일본에서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가 자주 만들어지고 인기를 가져간다. 하지만 국내 수입되면 ‘오버스러움’이 극대화된 캐릭터의 대사나, 낮은 싱크로율로 호불호가 갈린다. 이전의 실사 영화들과 비교해 '가라오케 가자'는 꽤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이 거슬릴 만한 요소 없이 흘러간다. 이미 '가라오케 가자' 영화판 팬덤이 따로 형성됐다. 국내에서 개봉 소식은 아직 없다. 수입 배급된다고 해도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DVD 발매를 노리는 게 더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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