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선고로 햇수로만 9년째 사법리스크 벗게 돼
대형 M&A 및 초격차 기술 투자 등 '뉴삼성' 탄력 기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공소장이 접수된지 3년 5개월 만이다.
오랜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이재용 회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뉴삼성'을 본격 가동할 수 있게 됐다. 글로벌 기업들을 압도할 더욱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경영 계획을 수립하는 동시에 사업 전체를 아우를 구심점 역할을 더욱 분명히 할 것이라는 기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 합병과 이에 따른 경영권 불법 승계에 대해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이날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결은 약 50분간 진행됐다.
굳은 표정으로 법원에 들어선 이 회장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다만 변호인 등 이 회장 측은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 만나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재계는 이번 판결을 놓고, 향후 검찰 측의 항소·상고가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1심 결과가 집행유예도 아닌 무죄로 나온 만큼 삼성이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게 됐다고 판단한다.
법원 "경영권 승계 과정서 불법행위 없다"…3년 5개월만 선고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고,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로 봤다.
이 회장 혐의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자본시장법 위반, 이 과정에서 벌인 업무상 배임, 분식 회계에 관한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으로 나뉜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이사회를 거쳐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었다.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했던 이 회장은 합병 이후 지주회사 격인 통합 삼성물산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강화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경영 승계를 목적으로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부정·부정거래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며 2020년 9월 기소했다.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는 게 검찰측 판단이다. 삼성물산 이사들이 배임 행위의 주체로, 이 회장은 지시 또는 공모자로 지목됐다.
이 회장 등은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합병 이후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4조5000억원 상당의 자산을 과다 계상했다고 의심한다. 두 사건은 병합됐다.
이에 대해 삼성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었다고 줄곧 반박해왔다.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정해졌으며, 삼성물산이 당시 3조원이 넘는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합병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삼성은 주장한다. 승계와 연관된 내용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도 작년 11월 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합병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두거나 다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거나 하는 그런 의도는 결단코 없었던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합병이 두 회사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마침내 사법 리스크 벗게된 이재용…'뉴삼성'·M&A 탄력
결과적으로 법원이 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재용 회장은 오랜 사법 리스크를 벗고 그간 추진 동력이 약했던 '뉴삼성'·M&A(인수합병)을 본격적으로 가동시킬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이 회장은 재판으로 해외 출장에 제약을 받는 등 장기간 경영 활동에 발목을 잡혀 왔다. 실제 그는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만 9년째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작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지만 이후에도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에 매주 출석해왔다.
총수의 운신의 폭이 좁다 보니 삼성은 2022년 말 이재용 회장 체제 이후에도 '뉴삼성' 로드맵을 내놓지 못했다. 그 사이 반도체는 업황 부진에 고꾸라졌고, 제2 반도체가 될 신성장동력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차원에서 향후 이 회장이 선보일 '뉴삼성'에 관심이 쏠린다. '뉴삼성' 큰 줄기는 그가 결심공판에서 가진 최후진술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사업 선택과 집중, 신사업, 신기술 투자, M&A를 통한 보완, 지배구조 투명화" 등을 언급했다.
특히 미래 투자는 더욱 적극적이고도 과감해질 것이라는 기대다. 앞서 삼성은 '사법 리스크' 속에서도 5년간 반도체·바이오·신성장 정보기술(IT)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 450조원을 투자하고 8만명을 새로 채용하겠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GAA(게이트 올 어라운드) 트랜지스터 기술을 적용, 세계 최초로 3나노 1세대 공정 양산을 시작한 데 이어 2027년 세계 최초 1.4나노 양산을 정조준하는 등 초격차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도체 뿐 아니라 삼성은 바이오, 배터리 등에서도 글로벌 선두를 위해 시설 투자 및 기술 개발 등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하만 이후 멈춘 대형 M&A가 이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
미래사업 총괄 컨트롤타워 부활할까…등기이사 복귀도 관심
초격차 기술로 글로벌 파고를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삼성은 향후 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고 신성장동력 확보에 힘을 보탤 총괄 조직도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미래사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부활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업지원태스크포스(TF)가 일부 기능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그룹 전체의 전략을 짜고 계열사간 협업을 위해 그룹 내 사령탑 복원을 검토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이는 단순히 삼성전자의 실적 개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장기 전략을 가늠하게 할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해가 이재용식 '뉴삼성'을 보게 될 원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4대 그룹 중 유일하게 미등기임원인 그가 등기이사로 복귀해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를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판결에 대해 재계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의 코멘트를 통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적극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은 첨단산업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과 이제 막 회복세에 들고 있는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한국무역협회도 김고현 전무이사 명의의 코멘트를 통해 "결과적으로 우리 수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고 첨단산업 투자에 대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여건을 감안하면 판결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삼성이 더욱 진취적인 전략을 통해 AI 등 첨단기술을 선도하는 글로벌 리딩 기업으로서 국민으로부터 보다 신뢰받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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