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양, 신탁사 위법행위로 재건축 ‘제동’
주민 의견 반영 안 되고 비싼 수수료도 부담
빠른 사업 추진 ‘글쎄’…조합 방식 선회 움직임도
신탁 방식으로 추진되는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데일리안DB
신탁 방식으로 추진되는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성을 내세워 빠르고 안정적으로 사업 추진이 가능하단 점에서 신탁 방식이 유행처럼 번졌으나, 최근 미숙한 운영 방식이 논란이 되면서 사업을 되레 지연시킨단 볼멘소리가 적지 않다.
25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은 이달 말 예정됐던 시공사 선정 총회가 무산되며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시가 이곳 단지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의 위법 사항을 발견하고 영등포구청에 시정조치를 내리면서다. KB부동산신탁이 정비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내고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시켰단 이유다.
신탁 방식은 조합 대신 부동산신탁사가 정비사업 시행 또는 대행을 맡는 방식이다.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사업 전 과정을 신탁사가 도맡아 진행한다. 조합 방식 대비 전문성을 갖춰 사업을 안정적이고 빨리 추진할 수 있고 초기 자금 조달에 유리하단 점에서 신탁 방식을 채택하는 단지들이 속속 늘어나는 추세다.
여의도 한양의 경우 서울시 신속통합기획과 신탁 방식을 동시 채택하면서 일대 재건축 단지들 가운데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으로 꼽혔다. 하지만 신탁사로 인해 한 차례 제동이 걸리면서 ‘여의도 1호 재건축’이란 타이틀이 무색해졌단 평가가 나온다.
여의도 한양뿐만 아니라 신탁 방식을 택한 정비사업장 곳곳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업이 기대만큼 빨리 추진되지 못하는 데다 신탁사에서 주민 의견을 명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여기에 일반분양 수입의 1~3% 정도를 수수료로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한국자산신탁을 사업시행자로 선정한 영등포구 신길우성2차·우창아파트는 신탁 방식과 관련한 잡음으로 사업이 현재 별다른 진척이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5월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한 이후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으나, 한국자산신탁이 소유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대우건설과 공사도급 가계약을 진행한 것을 놓고 논란이 불거졌다.
신탁사마다 정비사업 수행 역량이 달라 신탁 방식으로 준공까지 마친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도 부담이다. 현재까지 신탁 방식으로 준공된 단지는 경기 안양 ‘한양수자인 평촌리버뷰’, 대전 동구 ‘e편한세상 대전 에코포레’ 등이 전부다. 이 때문에 속도감 있는 재건축을 위해 신탁 방식으로 대거 사업에 나선 목동신시가지 일대 단지들도 조합 방식과 신탁 방식을 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다.
업계에선 정부가 정비사업 신탁 계약 해지 문턱을 낮춘 만큼 사업 추진 과정에서 조합 방식으로 ‘갈아타기’하는 단지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정적인 정비사업 추진을 위해 신탁 방식이 시장 내 안착하긴 힘들 거란 견해다.
국토교통부는 그간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어 신탁 방식을 채택한 이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계약해지가 어려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신탁 계약서·시행규정 표준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신탁계약을 체결한 주민 100%가 계약 해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신탁사가 계약 후 2년 내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지 못하거나 주민 75% 이상이 찬성하면 신탁 계약을 일괄 해지할 수 있다. 또 신탁사의 신탁 재산을 담보로 한 대출은 착공 이후에만 가능하고, 소유권 이전 고시 후 1년 내에는 사업비 정산 절차를 완료하도록 사업 완료 기한도 정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탁사가 정비사업 역량이 많고 전문성을 갖췄다고 판단할 만큼 아직 가시적인 성과들이 많지 않다”며 “그간 신탁 방식은 조합 간 갈등이나 분쟁 등을 비교적 최소화할 수 있고 초기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은 경우 사업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단 장점이 부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탁 방식으로 가더라도 사업 속도나 투명성, 수익성 등이 모두 보장된다고 장담할 순 없다”며 “앞으로 전문성이 결여된 신탁사들은 계약 해지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에 정비사업의 대세 방식으로 자리 잡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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