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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연예단상⑤] ‘엄마와 딸’이 아니라 왜 ‘이모와 조카’일까…스즈메의 문단속 & 일타스캔들


입력 2023.03.22 14:40 수정 2023.03.22 14:4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한국드라마 '일타스캔들'과 일본애니 '스즈메의 문단속'의 공통점

'스즈메의 문단속'의 주인공 스즈메 ⓒ이하 ㈜쇼박스 제공 '스즈메의 문단속'의 주인공 스즈메 ⓒ이하 ㈜쇼박스 제공

‘재패니메이션’(일본 만화영화)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계보를 잇는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서도 흥행 중이다. 회복될 듯하면서도 좀처럼 쾌조의 흥행세가 형성되지 않는 ‘극장가 날씨’를 감안하면, 어른들이 빼곡한 애니메이션 상영관 풍경이 놀랍기만 하다.


‘스즈메의 문단속’(제작 코믹스 웨이브 필름,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쇼박스)은 지난 8일 개봉 후 2주 만에 207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작품성과 연기력, 반전 있는 스토리로 호평받은 한국영화 ‘대외비’가 한 주 앞서 개봉했음에도 100만 관객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3월 21일 현재 74만 명) 것에 비춰 호조의 성적이다.


고양이 다이진과 노랑의자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두드릴 수 있는지 극장에서 확인해 볼까 ⓒ 고양이 다이진과 노랑의자가 사람 마음을 얼마나 두드릴 수 있는지 극장에서 확인해 볼까 ⓒ

일명 ‘신카이 월드’의 집대성 판이라고 호평받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앞서 일본 현지에서 개봉 후 3개월 동안 꾸준한 사람을 받으며 지난 2월 초 1000만 관객을 달성했다. 지난 2016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으로 1928만 명, 2019년 ‘날씨의 아이’로 1063만 명의 사랑을 받은 데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 번째 1000만 영화로 이름을 올린 것. 한 감독이 ‘트리플 천만’의 대기록을 세우기란 쉽지 않은데, 애니메이션의 본고장이라는 일본임을 감안해도 애니메이션으로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국내에서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의 이름은’으로 380만, ‘날씨의 아이’로 74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관객 수는 이미 ‘날씨의 아이’를 훌쩍 넘었고, ‘너의 이름은’을 능가할지가 관심사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스즈메는 뒷문을 두 번 연다. 뒷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뒷문을 통해 이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스즈메는 뒷문을 두 번 연다. 뒷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또뒷문을 통해 이 세상으로 나오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무척 좋아하지만, 영화 예매를 위해 상영시간표를 확인하면 온통 ‘스즈메의 문단속’이어서 묘한 반발감에 차일피일 관람을 미루다 이틀 전에야 봤다. 마음에 문턱이 있었음에도 스즈메는 가뿐히 허들을 넘어 파고들었고, 흥미진진 신나서 영화를 봤다. “아, 너무 재미있다. 한 번 더 봐야겠는걸”, 엔드크레딧이 오름과 동시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일본의 잦은 지진 원인을 신카이 감독 특유의 SF 판타지로 상상해 착안한 ‘뒷문’이라는 개념, 문단속하는 사명을 대를 이어 하는 ‘토지사’라는 존재, 신카이 월드에서 빠지지 않는 남녀의 운명적 만남과 목숨을 건 ‘협업’이 아름다운 영상 속에서 펼쳐진다.


모험의 여정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치카. 따뜻한 마음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 모험의 여정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치카. 따뜻한 마음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

영화로 관객 대중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관람의 뒷맛을 개운하게 하거나 여운을 남기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평소 ‘왜 그럴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날가’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그럴싸한 답변을 내놓거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하나의 현답을 제시하거나, ‘그래, 세상은 아직 살 만해’라는 따스함을 전할 때 그리고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고 공감할 때 표값 이상의 만족감을 느낀다.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다 있다. 특히나, 각박하다고 해도 아직은 따뜻한 심장을 지닌 사람이 더 많고 그래서 세상은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깨달음과 위로를 살포시 전한다. 내가, 내 아이가 살아갈 만한 세상이고 만나봄 직한 사람들이라는 믿음은 막연한 불안감과 우려를 잠재우고 사람을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폐허와 문을 찾는 사람 소타, 그 문을 연 스즈메. 운명적 만남,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내가 갈게! ⓒ 폐허와 문을 찾는 사람 소타, 그 문을 연 스즈메. 운명적 만남,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 내가 갈게! ⓒ

영화를 보다가 문득, ‘어, 이거 요새 느껴본 뜨뜻함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일 종용한 tvN 드라마, 티빙과 넷플릭스 등의 OTT에서 여전히 볼 수 있는 ‘일타스캔들’(제작 스튜디오드래곤)이 떠올랐다. SF 판타지와 코미디, 기본 장르가 다르고 애니메이션 영화와 실사 드라마, 표현 방식도 다르지만 두 작품에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일타스캔들’이나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축을 이루고 그 사랑의 온정이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한다. 또 주인공뿐 아니라 등장하는 여러 인물의 심성과 태도가 주제 의식의 완성에 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내 자식, 내 식구가 아님에도 마음으로 돕는 점. 그것도 생색내며 나서는 게 아니라 많은 질문 없이 묵묵히 도와주는 부분들이 닮았다.


"우리집의 아이가 되어 주렴" 타마키 이모와 꼬마 스즈메 ⓒ "우리집의 아이가 되어 주렴" 타마키 이모와 꼬마 스즈메 ⓒ

가장 비슷한 점은 이모가 조카를 딸처럼 키우는 일이다. 남행선(전도연 분)은 언니의 딸 남해이(노윤서 분)가 여섯 살일 때부터 청춘을 바쳐 키웠다. 이와토 타마키(후카프 에리 목소리연기) 역시 이와토 스즈메(하라 나노카 목소리연기)가 네 살일 때부터 청춘을 바쳐 키웠다. 이모들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했고, 이모와 조카의 성씨(姓氏)가 같은 것도 같다.


‘일타스캔들’에서는 이모가 최치열(정경호 분)과 연애하고,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조카가 무나카타 소타(마즈무라 호쿠토 목소리연기)와 사랑에 빠진다. 이모 행선의 사랑은 가족에 평안을, 조카 스즈메의 사랑은 세상을 구한다. 이야기 말미에 가면, 조카 해이도 연애를 시작하고 타마키 이모에게도 곧 사랑이 찾아올 듯하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세상에 평화를 안기는 소중한 사랑이다.


어떤 가족. "이모, 나 이모에게 그냥 엄마라고 그러면 안돼?" "그래라. 안 될게 뭐가 있어?" ⓒ 어떤 가족. "이모, 나 이모에게 그냥 엄마라고 그러면 안돼?" "그래라. 안 될게 뭐가 있어?" ⓒ

왜 엄마와 딸이 아니라 이모와 조카일까. 작은 차이일 수 있지만, 이모와 조카의 ‘모녀 됨’은 엄마와 딸의 관계일 때와 다른 힘을 갖는다. 혈연과 법적 구속력에 의해 모녀라는 관계가 형성된 경우보다 훨씬 ‘자발적 선택’에 의해 구성된 가족으로 보이고. 느슨한 구속력일 수 있는 두 사람이 진정으로 엄마와 딸. 진심으로 가족이 될 때 그것은 ‘가족을 가족으로 만드는 무엇’의 본질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힘이 있다. 확장하면, 돈독한 ‘세상 사람들의 연대’가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판타지가 있다.


피폐해져 가는 21세기 현대사회, 문화 콘텐츠들의 가족에 관한 관심은 전통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지 않는다. 줄기차게 가족의 구성 본질에 관해 탐구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색적 가족들이 이뤄내는 거사와 큰마음을 통해 일깨운다. 나아가 현대사회의 병폐를 예방하고 치유하는 길 중의 하나가 새로운 형태의 가족에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준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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