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깃발 아래 모여라"…옛 이름 떼는 피인수 기업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3.03.02 10:25  수정 2023.03.02 10:54

현대두산인프라코어→HD현대인프라코어, 대우조선→한화오션

쌍용차→KG모빌리티…과도기 줄이고 그룹 정체성 강화에 무게

한화비전 CI(위)와 쌍용차 'KG모빌리티 디자인 공모전' 포스터. ⓒ한화비전/쌍용차

주요 기업들의 사명 교체가 잇따르고 있다. 주로 인수합병(M&A)으로 새 주인을 맞은 기업들이 눈에 띈다. 기존 브랜드파워를 감안해 일정 기간 과도기를 거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소속 그룹의 정체성을 따라 옛 이름을 버리는 모습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오는 23일로 예정된 주주총회에서 사명 변경 안건을 올렸다. 안건이 통과되면 ‘두산’을 뺀 ‘HD현대인프라코어’로 새로 출발한다.


두산그룹 산하 두산인프라코어에서 2년 전인 2021년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에 인수되며 HD현대그룹에 합류한 이 회사는 그해 9월 앞에 ‘현대’를 붙인 ‘현대두산인프라코어’라는 새 이름을 달았다.


이후 1년 반 가량 ‘현대’와 ‘두산’이 공존하는 과도기를 거쳐 ‘HD현대’ 깃발 아래 함께하게 됐다.


HD현대그룹은 지난해 2월 지주사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한 데 이어 연말에는 그룹명까지 같은 이름을 택한 이후 올해 주총 시즌을 계기로 전 계열사 사명 앞에 HD를 붙이며 그룹 정체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 역시 그 일환으로 ‘두산’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을 품에 안게 된 한화그룹의 경우 비교적 빠른 타이밍에 사명 교체를 추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그룹 대우조선인수TF(태스크포스) 고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직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화오션’을 새 사명으로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새 사명으로 ‘한화조선해양(HSME)’ 가등기를 신청하기도 했다. 한화조선해양이 됐건, 한화오션이 됐건 아직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기 전부터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점에서 인수 직후 ‘한화’를 앞세운 새 이름으로 출범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화는 지난 1일 한화테크윈의 사명을 ‘한화비전’으로 변경하며 옛 삼성테크윈의 이름을 완전히 지운 바 있다. 2015년 삼성테크윈을 인수해 한화테크윈으로 이름을 바꾼 뒤 2018년 시큐리티 사업부문 분할과 함께 가져왔던 사명을 5년 만에 다시 변경하며 ‘테크윈’마저 떼버린 것이다.


앞서 지난해 8월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KG그룹은 35년간 이어온 쌍용차 브랜드를 포기하고 ‘KG모빌리티’로 변경키로 일찌감치 결정했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2022 자동차인 시상식’에서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쌍용차는 최근 ‘KG모빌리티’의 디자인 공모전에 나서는 등 브랜드 변경을 위한 사전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공모가 마무리되는 6월 말 이후 자동차에 부착되는 로고와 영업점 간판, 브로셔 등에 새 디자인을 반영하는 시점을 감안하면 올 하반기 중으로 쌍용차라는 사명 및 브랜드와 완전히 이별을 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피인수기업의 사명 변경 움직임은 개별 기업의 상황보다 그룹 정체성 확립을 중시하는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랜 업력(業歷)을 쌓은 기업의 사명을 바꿀 경우 브랜드파워는 물론, 영업 네트워크 측면에서도 한동안 차질이 생길 수 있고, 임직원들의 사기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1999년 인수한 ‘기아’의 사명을 20년 넘게 유지하는 것이나, 포스코그룹이 2010년 인수한 대우인터내셔널을 포스코대우를 거쳐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바꾸는 데 9년이나 걸린 것도 이같은 점을 감안해서다.


B2B(기업 간 거래) 업종인 대우조선해양이나 현대두산인프라코어는 기존 ‘대우’와 ‘두산’이 사명에서 사라질 경우 해외 시장에서 오랜 기간 쌓아온 인지도를 포기해야 하는 만큼 해외 영업에 일정 부분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소비자에게 완성차를 직접 판매하는 쌍용차는 브랜드 변경에 따른 파장이 더 크다. 대중적 인지도가 쌍용차보다 더 떨어지는 KG를 앞세운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과 CI를 통일하고 통일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계열사간 시너지와 비전 공유, 임직원 소속감 확립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기가 문제일 뿐 인수된 기업이 결국에 새 주인이 된 그룹의 정체성을 따르는 건 순리”라면서 “다만 과거에는 브랜드파워 및 영업망 등을 감안해 일정 기간 과도기를 뒀다면, 요즘은 다소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그룹과의 통합을 서두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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