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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떠나는 ‘작가’들②] “계약금 터무니없이 낮아”…부당대우에 우는 작가들


입력 2022.10.02 13:52 수정 2022.10.02 09:52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영화 규모 커지면서 위험도 높아져…취약 계층인 작가들이 피해 입게 돼”

꼼수 계약 만연도 문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데뷔한 작가들, 여러분들이 작가로서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드라마를 쓰고 있다. 충무로에 작가가 없어졌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말씀드리겠다.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여름, 추석을 맞아 개봉하고 있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쓴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감독이다. 이 영화들이 어딘가 비슷하다고 느끼실 거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헤어질 결심’, 드라마 ‘마더’, ‘작은 아씨들’을 쓴 정서경 작가가 최근 열린 2022 벡델데이 행사에서 충무로에 전문 시나리오 작가들이 많지 않다고 언급하면서, 이것이 영화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서경 작가ⓒ뉴시스 정서경 작가ⓒ뉴시스

충무로의 ‘작가 기근’ 현상은 수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되던 문제다. 다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드라마, 또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콘텐츠로 활동 영역을 넓힌 작가들이 더욱 많아지면서 심각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기성 작가들은 물론, 신인들도 드라마, OTT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 지망생들의 경우 웹소설이나 웹툰 작가보다도 영화 작가를 후순위에 두기도 한다고. 대다수의 작가 및 관계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대해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환경이 유독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는 “이야기의 스케일로 봤을 때 최소한 100억 이상은 투입이 돼야 할 영화였다. 그런데 그 영화의 각본 제안을 하면서 내게 1500만 원의 계약금을 제시하더라. 그런 경우들이 많다”라며 터무니없는 계약금에 대해 황당함을 표했다. 영화 한 편의 시나리오를 쓸 때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생활비도 보장받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김병인 작가조합 대표는 “2000년대 초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이후 영화 제작비의 규모가 커졌다. 지금은 당시의 3~4배, 일부 작품의 경우 5배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들의 페이는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영화 규모가 커지면서 위험도가 높아지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금액은 줄이게 되는데, 가장 취약한 계층인 작가들이 그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계약금 자체가 지나치게 낮은 것은 물론, 이 금액마저 보상받지 못하는 꼼수 계약이 만연해 더욱 열악한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계약금을 단계별로 나눠 받도록 계약을 하거나 혹은 집필 기간을 명시하지 않아 준비만 하다가 영화가 제작이 되지 못할 경우 처음 제안을 받은 계약금을 다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권장하는 표준계약서가 있지만, 이것이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말했다.


앞서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의 계약금 문제를 지적한 작가 역시도 “영화진흥위원회나 작가협회에서 표준계약서를 쓰라고 권장하는데, 지금까지 받은 제안 중 해당 계약서를 용인해준 제작사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좁은 입지 또한 영화 작가들이 영화계를 떠나 드라마에 도전하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김 대표는 “정서적으로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드라마로 간 작가 한 분이 그곳에선 배우도, 감독도 자신들에게 먼저 의견을 구하는 것을 보고 낯설다고 느끼셨다고 하시더라. 드라마는 작품을 완성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렇기에 전체 그림을 아는 것 역시도 작가 밖에 없다. 그렇기에 집필 과정 내내 존중을 해줄 수밖에 없다”면서 “영화에서는 작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넘기면 이후 작업에서는 배제되는 경우가 흔하다. 촬영과 후반 작업, 나아가 홍보 기간까지. 감독과 꾸준히 함께해야 하다 보니 제작자들도 감독의 의견을 더 들어주게 되는 것”이라고 입지의 차이를 언급했다.


이러한 입지의 차이로 인해 자신의 시나리오가 작업 과정에서 크게 달라지거나, 혹은 각본 및 각색 크레디트에 감독을 비롯해 타인이 함께 숟가락을 얹는 등의 억울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힘든 환경이라는 것.


정서경 작가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환경 탓에 작가들이 계속해서 충무로를 떠나게 되면 결국에는 영화 산업도 후퇴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예술성이 짙은 영화들은 감독이 자기의 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각본을 직접 쓰기도 하고, 또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처럼 천재성이 뛰어나 각본도, 연출도 모두 잘 해낸다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상업영화일수록 분업화가 중요해진다.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각 분야에서 활약을 해야 완성도도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더 큰 성과를 거두고 발전하기 위해선 작가는 글에, 감독은 연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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