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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떠나는 ‘작가’들①] 영화→드라마·OTT, 작가들에게 늘어난 ‘선택지’


입력 2022.10.01 14:37 수정 2022.10.02 16:32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코로나19 기간 동안 드라마 제안 늘어…이젠 굳이 매체 고집 안해”

“영화적 문법과 어울리는 OTT, 새 기회 열린 셈”

2009년 KBS2 ‘아이리스’가 방송되자 시청자들은 “영화 같다”는 호평을 남기며 열광했다. 영화감독 양윤호의 드라마 진출작이었던 이 작품은, 이전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액션과 방대한 스케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지금은 영화감독의 드라마 진출도,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드라마를 보는 것도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케이블 채널이 생겨나고 각종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도 다양한 장르의 시리즈물들을 쏟아내기 시작하면서 표현의 수위도, 완성도도 영화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빠르게 허물어졌다.


ⓒtvN, 에이스토리 ⓒtvN, 에이스토리

이제는 영화 투자배급사인 뉴(NEW)와 쇼박스를 비롯해 다수의 제작사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제작하고 있으며, 이에 자연스럽게 영화 인력들도 드라마로 이동 중이다. 최근 에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K-드라마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영화 ‘남한산성’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였다. ‘킹덤’의 김성훈 감독, ‘지옥’의 연상호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이준익 감독 등 다수의 스타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시리즈를 연출했거나, 준비 중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앞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각본을 공동 집필한 이숙연 작가가 KBS2 ‘공항 가는 길’을 통해 섬세함을 뽐내고, ‘변호인’의 윤현호 작가가 드라마 ‘리멤버’로 탄탄함을 보여주는 등 작가들의 드라마 진출은 영화감독보다는 비교적 자주 이뤄지기는 했었다. 드라마 ‘추노’, 영화 ‘7급 공무원’ 등을 쓴 천성일 작가를 비롯해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가들이 영화감독보다는 많았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의 확연히 다른 문법 탓에 성공 사례가 많지는 않았다. ‘공항 가는 길’, ‘리멤버’ 모두 작품의 색깔은 뚜렷했으나,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던 것. 2시간 안에 완벽한 기승전결을 보여주는 영화와 20부작 내외의 긴 호흡으로 극을 전개하며 매회 새로운 흥밋거리를 던져줘야 하는 드라마의 다른 전개 방식에 부담감을 느끼는 영화 작가들도 많았다.


그러나 콘텐츠를 둘러싼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작가들도 이제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제작되는 영화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연출과 마찬가지로 드라마의 전개 방식 또한 한층 다양해지면서 생각을 열어두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tvN ‘마더’를 통해 드라마에 진출한 정서경 작가는 현재 ‘작은 아씨들’로 두 번째 도전을 이어나가고 있다. 상처받은 소녀를 구해내기 위해 그 소녀의 엄마가 되기로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뤘던 ‘마더’에서 정 작가는 사건 위주의 극적인 전개가 아닌 아동 학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면서 호평을 받았었다.


정 작가의 ‘디테일’이 드라마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작은 아씨들’ 또한 큰 기대 속에서 방영이 될 수 있었다. 영화 ‘증인’을 쓴 문지원 작가가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는 등 성공 사례 역시도 늘려나가고 있는 요즘이다.


한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는 “코로나19 기간에는 아무래도 영화가 아닌, 드라마 제안까지 들어오더라. 제작사 쪽에서는 준비 중이던 영화를 시리즈화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시리즈가 더 잘 통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이제는 영화, 드라마 중 하나를 굳이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병인 작가조합 대표는 “영화 작가에겐 새로운 기회가 열린 것이다. OTT용 드라마들은 대부분 6~8부작으로 제작이 되는데, 거기에 딱 맞는 기승전결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만들었구나’라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영화적 문법과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영화 시나리오는 시퀀스 별로 나눠서 쓰게 되는데, 각 시퀀스마다의 기승전결이 있다. 작은 클라이맥스들이 모여 하나의 결말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 8개 조각으로 끊어서 쓰는데, OTT의 한 회로도 연결될 수 있다. 영화 시나리오 문법을 적용하는 것이 용이한 OTT용 드라마들은 오히려 좋은 환경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들의 충무로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수정 기자 (jsj85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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