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영화 생존일기①] 에로물의 전성시대는 정말 끝났을까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2.09.10 13:10  수정 2022.09.10 01:35

에로 영화→에로 비디오 시장으로

2000년대 이후 쇠락

1982년 2월 6일, '애마부인' 개봉 첫 날, 종로 서울극장에는 인파가 몰려 극장 유리창이 깨지고, 경찰이 출동했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애마부인'은 4개월 동안 장기 상영됐으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3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연배우 안소영은 ‘애마부인’의 성공으로 말 그대로 하룻밤 만에 일약 스타가 됐다.


에로 영화는 1982년부터 1989년 혹은 1990년까지, 다양한 연출 능력을 지닌 감독들이 꾸준히 만들어낸, 수많은 한국형 대중 성인영화의 통칭이다. 일본 영화 '백일몽'의 대본을 번역해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유현목 감독의 '춘몽'(1965)과 파격적인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신상옥 감독의 '내시'(1968), 박종호 감독의 '벽 속의 여자'(1969)가 시각적 에로티시즘을 활성화를 쏘아 올려 '애마부인'(1982), '무릎과 무릎사이'(1984), '매춘'(1988)까지 이어지며 극장에서 황금기를 누렸다.


특히 1980년대는 독재 정권이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시행했던 3S(SEX·SPORTS·SCREEN)으로 인해 많은 에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전두환 정권의 문화정책의 산물로만 인식되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흥행력은 단순히 3S 정책의 효과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과 신선함과 완성도가 자리했다. 에로 영화의 전성기 시절이었던 1980년대로부터 약 40년이 흐른 현재 에로 영화는 냉대 속에서 겨우 생명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무엇이 성인영화를 쇠퇴시켰나


에로 영화 쇠퇴는 사회적인 현상, 기술의 발달과 함께 완성도보다는 자극적인 노출을 부각시키는 아류작들이 쏟아지면서 진행됐고, 결국 양지로 올라오지 못했다.


1980년대 말부터 집집마다 TV가 보급되면서 에로영화는 비디오 시장에서 더 활발히 소비됐다. 1988년 '산머루' 등장 이후 90년대에는 '젖소부인 바람났네'가 히트하고 시리즈물로 제작될 만큼 인기를 얻어 한국형 에로 비디오가 전성기를 맞았다. 에로 영화 한 관계자는 "당시 IMF 구제 금융 체제 이후 문화계의 전반적인 불황 속에서도 에로 비디오만은 꾸준히 호황을 누렸다. 비디오 대여점 전체 매상의 30%은 에로 비디오였다"라고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인터넷 보급으로 미디어의 발달과 유통 방식이 변화하면서 '에로 비디오 시장은 죽었다'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비디오테이프가 사라진 뒤에도 미디어 인터넷, 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등으로 주 무대를 옮겨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노출과 자극적인 장면을 앞세웠던 작품들의 영향으로 여전히 비판과 멸시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은밀한 욕망의 대리 수단 취급을 받았던 에로물은 봉만대 감독의 등장으로 잠시 부흥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그는 1999년 한일 합작 비디오 영화 '도쿄 섹스피아'로 데뷔한 후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채널 CGV 'TV방자전' 등을 통해 에로 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봉 감독은 한 눈 팔지 않고 꾸준히 작업에 임해 '에로계 거장'이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그런 봉만대 감독도 사회적 인식과 현실의 벽 앞에서 2017년 잠시 은퇴를 선언했다.


배우의 전라가 아닌 에로틱한 스토리로 에로 영화가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길 바랐지만, 더 이상 극장에서 사람들이 에로 영화를 보지 않는 현실에 부딪쳤다. 수요가 없는 시장에서 공급의 명분을 잃은 것이다. 2015년 '덫: 치명적인 유혹'이 현재 그의 마지막 에로 영화 연출작이다.


정말 에로물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걸까. 과거처럼 극장이나 비디오 테이프로는 에로 영화를 만나는 일이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케이블 TV에서는 하루 종일 성인영화만 나오는 채널들이 있을뿐더러, IPTV 구매 목록에도 성인영 작품이 매달 업데이트 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제작 편수 증가하기도


극장에 가서 보지 않을 뿐, 안방에서는 여전히 에로물의 소비가 이어지고는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지며, 영상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청소년 관람불가 심의 작품이 늘어났다. 과거에는 극장을 찾던 관객들이 집에서 OTT 플랫폼이나 IPTV를 통해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하게 되면서 덩달아 성인 콘텐츠의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발표한 ‘2022 영상물 등급 분류 연감’에 따르면 2021년 영화 전체 관람등급을 심의한 작품 3270편 중 60.3%인 1971편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영등위는 "한국 영화와 외국영화 모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늘어난 이유는 성인영화 등급 분류 편수 증가 때문이다. 성인영화는 노골적 성애가 주 내용으로 선정성과 주제, 모방위험 등에서 청소년들에게 유해성이 높아 거의 청소년 관람불가로 분류했다"라고 분석했다.


최근 3년간의 수치를 살펴보면 2019년 1182편, 2020년 1813편, 2021년 1971편으로 매년 등급 분류 받는 성인영화가 증가하고 있으며, 코로나 위기가 시작되었던 2020년을 기점으로 급상승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다만 주목할 점은 한국 영화의 경우 청소년 관람불가 점유율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지만, 외국영화의 경우 일본 성인영화 수입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외국 성인영화의 경우 2020년 959편에서 2021년에는 286편(29.8%) 늘어난 1245편으로 증가했다. 특히 일본의 비디오물이 2021년 1231편으로 전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1971편의 6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성인 영화 배우 민도윤은 "OTT를 비롯해 자극적인 영상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졌다. 외국 작품 편수는 많아졌지만 실질적으로 국내 성인 영화계는 많이 위축돼 있다“라고 현실을 전했다.


한 성인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성인영화가 일반 영화에 비해서 제작비가 얼마 들지 않아 제작 진입장벽이 낮다. 한 편의 제작비를 쪼개서 여러 편으로 다작을 할 수 있으니 쉽게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니 비성인 쪽도 눈을 돌려 편수가 늘어난 것 같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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