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리스 M&A 등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전략 속도 낼 듯
제일모직‧삼바 재판 등 사법리스크 여전…경영활동 한계 전망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복권되면서 그를 옭아매던 경영 족쇄도 풀어졌다. 국내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리더가 더욱 적극적으로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게 되면서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전략도 강한 동력을 얻게 됐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대규모 투자와 M&A(인수합병) 등 삼성전자의 전략적 행보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전히 진행 중인 재판 일정은 이 부회장의 활동을 제약하는 한계로 지적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2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특별사면’ 브리핑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경제인들이 사면‧복권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이번 사면은 무엇보다 민생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뒀다”고 밝혀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사면이 경제회복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15 가석방 이후 올해 7월 형기가 만료되며 이미 물리적인 제약에서는 자유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5년간의 취업제한 규정으로 인해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등 경영상의 제약은 계속됐다.
특히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전략적 M&A는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사실상 멈춰 있다시피 했다. 삼성전자가 계속해서 사상 최대 실적을 냈음에도, 2017년 하만 인수 이후 사실상 중단된 M&A로 미래에 대한 불안한 시각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이 부회장의 복권은 삼성에 대한 이같은 불안한 시선을 상당부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전략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시장 1위인 대만 TSMC를 맹추격하고 있지만, 시스템반도체의 또 다른 축인 팹리스(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성과가 미미하다.
SK그룹이 신약 개발사와 CMO(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바이오 사업을 크게 키운 것과,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하며 단숨에 글로벌 톱 레벨의 로보틱스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 사례처럼 삼성전자도 팹리스 M&A를 통한 퀀텀점프가 필요하다.
현재 세계적인 팹리스 기업 ARM, 차량용 반도체 기업 NPX반도체와 인피니온 등이 삼성전자의 M&A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팹리스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경우 파운드리 사업과의 시너지를 통한 동반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전략은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과도 일맥상통한다.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시장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린다는 구상도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이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계기로 정부의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도 한층 힘을 받게 되는 셈이다.
미국의 칩4 동맹 가입과 관련, 미-중 갈등의 중간에 끼인 우리나라의 전략적 대응에 있어서도 이 부회장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국익을 최대화하면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해외 출장길이나 국내에서 인텔, 구글, ASML 등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다지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직접 반도체공장을 안내하며 민간 외교사절로서의 역할을 했다.
다만 이번 복권만으로 이 부회장이 운신 폭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으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 결과를 놓고도 불확실성이 큰 데다, 매주 재판을 받는 상황이라 장기 해외출장 등도 제약을 받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복권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이사회 멤버로서 직접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게 된 것은 삼성의 전략적 행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사실 더 큰 사법리스크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다. 5년 넘게 재판을 받아가며 경영에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