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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 : _ ] “영혼의 목욕탕, 칼리 신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입력 2022.07.21 16:15 수정 2022.07.22 05:55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인도 신화에는 푸른 피부색의 칼리 신이 나온다. 온건치 않은 것에 저항하는 혁명의 여신이라고도 불린다. 시간을 관장하며 마음 속 두려움을 가져가는 진언을 주로 남겼다고 알려졌다. 인도에서 신을 만난 홍 칼리(31) 무당도 이름 못지 않게 그를 닮았다. 차별에 반대하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한다는 점에서다. 고양시 소재의 오피스텔에서 작은 신당을 운영 중인 홍 씨. 맑고 반짝이는 눈매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아픔을 위로했을 지 짐작이 됐다.


인터뷰에 임하는 중인 홍 칼리 무당. ⓒ데일리안 인터뷰에 임하는 중인 홍 칼리 무당. ⓒ데일리안

“1년에 1번 건강검진을 받듯, 영혼도 건강검진이 필요해요.”


홍 씨는 인터뷰에 앞서 싱잉볼을 크게 울렸다. 이어 팔로산토 한 조각을 태워 연기를 피웠다. 신당을 오가는 손님들의 불길한 기운을 정화하는 의식이다. 이어 그녀는 두 손을 모아 신에 기도를 올렸다. 홍 씨는 팔에 새겨져 있는 타투를 가리켰다.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영혼의 지도’라고 설명했다. 그녀 앞에 놓인 칼리 신의 형상과 오색 부채, 방울 등은 방을 가득 채운 연기 사이로 신령한 기운을 전했다.


무당은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 호통치는 말투와 화려한 신당에서 지내는 무당의 강렬한 이미지다. 그러나 젊은 무당인 홍 씨는 그와 달랐다. 인스타그램에 일상 사진을 올리고, 풋살을 즐기며, 일러스트를 그리고 문신을 새긴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자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뿐”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 “모든 존재를 끌어안고 정화하는 직업” ··· 칼리 신당을 열기까지


벌써 3년 차 무당이 된 홍 씨. 원래 예술 작업을 해오던 그녀는 20대 중반 무렵 임신 중지 수술을 받았다. 애인은 대학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러 간다며 홀연히 사라졌다. 당시 사회적 시선과 낙인으로 몸과 마음이 지쳤던 그녀는 한국에선 살 수 없다는 마음에 도망치듯 인도로 떠났다. 그 곳이 홍 씨가 무당으로서 첫 발을 내딛던 영혼의 고향이 됐다.


홍 씨는 “인도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부토 춤을 황홀경 상태로 추다가 접신이 됐고 이어 내림 굿을 받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때 내게 찾아왔던 신은 인간을 보살피고 끌어안기 위해 찾아온 존재였다. 그 신처럼 나도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연대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당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토춤을 추고 있는 홍 칼리 무당. ⓒ홍 칼리 제공 부토춤을 추고 있는 홍 칼리 무당. ⓒ홍 칼리 제공


부토춤을 추고 있는 홍 칼리 무당(오른쪽). ⓒ홍 칼리 제공 부토춤을 추고 있는 홍 칼리 무당(오른쪽). ⓒ홍 칼리 제공

부토는 1950년대 말 일본에서 등장한 표현주의적 현대 무용이다. 일본의 가부키와 노 등 전통 공연 장르에서 영향을 받았다. 소위 ‘죽음의 춤’, ‘영혼의 춤’이라고도 불린다. 얼굴과 몸에 흰 분칠을 한 무용수가 매우 느린 움직임을 취하는 게 주요 특징이다.


홍 씨는 주로 젊은 층이 신당을 찾아 온다고 했다. 그는 "끔찍한 꿈을 꾼 뒤 해몽을 듣기 위해 찾거나, 죽고 싶은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방문한다"며 "자신의 영혼의 나이를 물으러 오는 이도 있다"고 말했다.


홍 씨는 주로 ‘동시성’으로 점사를 친다고 알려진다. 동시성이란 어떤 사건들이 비슷한 의미가 있고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예로 홍 씨의 몸 상태나 처한 상황에 따라 신당을 오가는 손님들의 기운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그녀는 “무당은 이러한 동시성을 통해 신령님의 메시지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전달한다"며 "손님과 끊임없이 공명(共鳴)하며 느낀 기운을 토대로 점사를 친다”고 말했다.


점사를 봐주다가도 흉괘가 나올 때도 있다. 주로 시험에 불합격하거나, 이혼, 이별 등의 사주다. 이에 대해 홍 씨는 이를 ‘흉한 점괘라고 단정짓지 않아도 된다’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흉하다는 기준도 인간의 성공건〮강 이데올로기나 성장 주의에 기반한 편견일 수 있다”며 “그래서 사주 풀이 시 흉한 점괘를 재해석해 말씀드리는 편이다. 죽음에 관해선 비극적인 일이라기보단 ‘누구나 천도되어 안전한 곳으로 가신다’라고 안내를 해 드린다”라고 말했다.


■ 굿 상에 돼지머리 대신 참나물? ··· 모든 만물에는 ‘정령’이 있다


신에 관한 공부만 하는 건 아니다. 그녀는 장애학과 페미니즘, 비거니즘 등을 공부하고 토론한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 <신령님이 보고 계셔>에서도 ‘내 주변 환경과의 접점을 공부하고 보려는 노력은 무당에게도 책임이자 권리(117p)’라고 서술했다.


그 때문일까. 칼리 신당 굿상에는 돼지 머리가 없다. 대신 나물류나 빵, 과일이 올라간다. 그는 “샤머니즘은 만물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세계관을 갖고 있다”며 “작은 사물이나 식물, 바다, 산 그리고 비인간 동물들도 모두 신령스런 이유다. 기후 위기도 땅 위의 정령들이 한이 쌓여서 내지르는 비명이다. 이 존재들의 불필요한 희생 없이 굿 상을 치르는 게 샤머니즘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또, 홍 씨는 일부 신당에서 다루는 성별 이분법, 성차별 점사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남편·아내 잡아먹는 사주나 임신 중단을 한 여성에게 태아령이 붙어 있다고 말하는 경우도 모두 성 차별적 해석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씨는 “신령님은 성 차별적 존재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편견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신령님의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다”며 “창문에 낀 먼지를 닦는 느낌으로 사회학 공부를 하며 편견적 해석을 지양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 “1년에 1번 건강검진을 하듯, 우리의 영혼도 건강검진이 필요해요.”


인터뷰에 임하는 중인 홍 칼리 무당. ⓒ데일리안 인터뷰에 임하는 중인 홍 칼리 무당. ⓒ데일리안

현대인들의 24시간은 쉴 틈 없이 흘러간다. 마음 챙길 여유는 어느덧 사치가 됐다. 일과 삶의 경계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홍 씨는 ‘일단 쉬어라’ 라고 조언한다. 그녀는 “산책을 하거나 요리할 때도 천천히 여유를 즐기며 마음을 돌봐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야 누군가를 생각하고 챙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사주 결과에 관하여 일희일비하는 손님들에게도 홍 씨는 “사주라는 큰 줄기는 바꾸기 어려울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주 팔자는 음표처럼 우리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라면서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믿는 때는 바꿀 수 없고,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때는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데일리안 ⓒ 데일리안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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