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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기한 시행 코앞…식품업계 “포장지 재고·폐기 어쩌나”


입력 2022.06.20 06:01 수정 2022.06.17 16:02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시행 6개월 전, 기업 여전히 ‘우왕좌왕’

폐기발생 비용 등 감내 비용 높아

식중독 등 먹거리 안전에 대한 걱정도

전문가, 사전 홍보·교육 중요성 강조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가정간편식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가정간편식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뉴시스

내년도 소비기한 표시제 시행을 앞두고 식품업계 표정이 밝지 않다.


당장 시행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제품별 기한을 달리 설정해야 하는 데다, 실험 연구에 따른 절차나 비용은 물론 바뀐 정책으로 인한 폐기 비용까지 기업 차원에서 감내해야 할 부담이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해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변경하는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2023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된다. 다만 우유·치즈 등 냉장 유통의 중요성이 높은 식품에는 2031년부터 적용하도록 유예기간을 줬다.


유통기한은 식품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유통기한은 식품을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전체 기간의 60~70% 이내에서 결정된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다. 유통기한에 비해 20~30% 정도 길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가정 내 식품 소비 및 음식물 쓰레기 배출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 사회적 비용 감소 차원에서 소비기한 도입을 추진했다. 소비자들이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식품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온실가스 감축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에게 폐기 시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소비자 안전을 높이고 환경적으로 식품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다.


실제로 두부의 경우 일반적으로 유통기한이 14일이다. 하지만 보관 조건에 따라 소비기한은 100일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유통기한이 3일에 불과한 식빵은 약 20일까지 증가한다. 이외에도 6개월로 유통기한이 긴 슬라이스치즈류는 소비기한을 적용하면 250일로 길어진다.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서울시내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뉴시스

식품업계에서는 소비기한 도입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비기한 표기가 시행될 경우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음식 쓰레기 양과 이를 처리하기 위해 발생하는 손실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재고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기업들은 제품 판매 기한이 늘어날 수 있어 매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대기업의 경우 제품 소비량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할 경우 재고 관리에 유리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봤다. 유통기한 대비 소비기한은 재고로 쌓아둬도 부담이 없다는 계산인 셈이다.


다만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 결정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섞인 목소리도 뒤따랐다. 정책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시행으로 업계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늘어난다는 이유가 컸다. 철저한 사전 소통과 정책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특히 업체 입장에서는 당장 발생할 재고와 비용 손실 문제에 대한 걱정이 상당한 상황이다. 포장지가 대표적이다. 통상 기업은 일괄 구매를 진행하는데 정책의 목적과 맞지 않은 포장지는 폐기처분을 해야 한다.


A업체 관계자는 “내년 1월1일이 되면 제품 포장지에 소비기한을 표기해야 하는데 기존 포장지에는 유통기한만 표기하도록 돼 있다 보니 다 갖다 버려야 한다”면서 “각 사마다 품목수에 따라 포장지 수가 어마어마하다. 선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유예기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업체들은 소비자와의 분쟁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판매 기한이 늘어난 만큼 제품의 보관 및 유통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제조사를 향한 책임이 유통기한에 따라 제품을 판매했을 때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B업체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에 익숙한데,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더욱 엄격히 제품 보관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냉장고에 빽빽하게 보관한다면 보관 온도가 낮아져 변질 우려가 높아져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장 6개월 정도 남은 상태에서 냉동, 냉장, 상온 제품에 대한 소비기한을 전부 달리 설정해야 한다는 부담이 가장 크다”면서 “식약처 가이드라인마저 명확하지 않아 당장 시행하게 된다면 보수적으로 설정하고 수정을 거듭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소비기한 표시제의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 소비자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긴 제품을 구매하려는 경향이 짙다. 소비기한이 도입되더라도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정책 의도와 달리 폐기 제품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기한 시행에 앞서 제도 보완 및 사전 홍보·교육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소비기한을 다소 보수적으로 설정해 유통 현장의 관리 효율성을 끌어올리고 유통기한을 병기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을 통해 소비자 혼란을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책 시행에 앞서 소비자들이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명백히 인지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품안전 교육을 시작하고, 특히 노약자 등은 이런 정보에 취약하기 때문에 캠페인을 통해 쉽게 정보를 습득할수 있도록 지금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조언했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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