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이후 뮤지컬 산업화 가속
"대구·부산 등 비수도권 파급력 커져야"
한국 뮤지컬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사례로 꼽힌다. 서양 뮤지컬이 정착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엔 창극이나 가극, 악극, 판소리와 같은 음악극 형태의 전통극이 존재했다. 이는 뮤지컬이란 장르가 여타 아시아 지역의 문화권에 비해 국내에서 빠르게 정착한 계기를 마련해 줬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뮤지컬 시장은 약 4000억 규모(매출액 기준)로 성장하고 공연계의 60% 이상을 지탱하는 주요 문화산업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창작 뮤지컬인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가 탄생했던 1966년을 뮤지컬의 시작점으로 보고 있지만, 본격적인 산업화의 길은 대략 4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뮤지컬의 역사는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가 서울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발표된 것을 필두로 예그린과 신인 국립 가무단이 시장을 주도한 태동기(1966∼1977년)를 거쳐, 3개 극단(민중·대중·광장)이 공동으로 무대를 꾸며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아가씨와 건달들’(1983) 등 본격적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번안되어 소개되기 시작한 유년기(1978∼1987년)로 본다.
이후 ‘사랑은 비를 타고’ ‘명성황후’ ‘난타’ 등의 창작 뮤지컬들과 ‘브로드웨이 42번가’ ‘캣츠’ ‘페임’ 등 수입 번안 작품들이 대중적 인기를 끌던 성장기(1988∼1999년)를 거쳐 ‘렌트’와 ‘오페라의 유령’이 등장한 이래 대형화·현대화의 추세로 발전을 보이고 있는 청년기(2000년∼현재)로 구분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뮤지컬이 하나의 ‘산업’으로서의 틀을 마련하게 된 시기는 2010년 이후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년기 당시엔 열악한 제작환경과 작품의 완성도, 배우의 기량 미흡, 뮤지컬 전문 스태프의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특히 극장을 장기 대관할 수 없어 장소를 옮겨가며 공연을 해야 했다는 한계도 분명했다. 당시에 공연시설이 전국적으로 늘어났지만, 양질의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뮤지컬계가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한 건 ‘오페라의 유령’(2001)을 기점으로 한다. 당시 7개월간 244회의 장기 공연을 하며 24만 명의 유관객을 동원했고 약 192억원의 매출, 20억원의 순수입을 달성했다. 이는 뮤지컬 시장도 파이가 커질 수 있다는, 즉 ‘규모의 경제’가 가능함을 실증해 보인 계기가 됐다. ‘오페라의 유령’ 외에도 이 시기 ‘시카고’ ‘캣츠’ ‘맘마미아’ 등 해외 인기 작품들이 공연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수요층이 넓어지면서 내한 공연도 늘어났고 그 결과 2000년까지만 해도 140억 규모였던 뮤지컬 시장은 2002년에는 400억원 규모로 커졌고 이후 매년 급성장을 거듭해 2006년 약 1000억원, 2008년 약 2000억원, 2010년 약 3000억원까지 몸집을 불렸고 현재는 약 4000억원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뮤지컬 시장의 확대는 제작 편수의 증가와도 연결된다. 뮤지컬을 찾는 관객이 늘면서 이른바 ‘흥행 대박’을 터뜨리는 작품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이 때문에 대형 자본이나 투자자들이 뮤지컬 쪽으로 몰리면서 제작 편수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공연 수요자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장르의 공연보다 뮤지컬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과 동시에 자본의 유입으로 뮤지컬이 외형적 규모 확대는 물론 퀄리티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다시 관객의 유입을 유도하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가파른 성장세에 대형 뮤지컬 전용관도 잇따라 개관했다. 2006년 개관한 뮤지컬 전용관 샤롯데씨어터(잠실)에 이어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을 개축한 우리금융아트홀, 신도림동의 디큐브아트센터, 한남동 블루스퀘어, 대학로 CJ아트센터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 시기 본격적으로 전문 프로듀서와 신시컴퍼니·오디컴퍼니·설앤컴퍼니 등 전문 프로듀싱 컴퍼니도 등장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과거 공연을 올리고 싶어도 공연장이 부족해 공연기획사들끼리 경쟁을 했다면, 극장별로 좋은 작품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좋은 작품을 가진 제작사가 좋은 공연장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구조로 바뀌게 됐다. 이는 단순히 공연장과 제작사와의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입장에서 좋은 공연을 좋은 환경에서 볼 수 있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시장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됐고, 공연 문화도 그에 따라 성숙해 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더구나 청년기를 거친 이후의 뮤지컬 시장 규모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성장 속도가 둔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국민 소득수준은 인구와 비례한다. 현재 5000만명에서 정체가 되고 있기 때문에 성장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면서 “호주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비수도권으로의 파급력이 커져야 한다. 서울을 비롯해 대구, 부산 등 전용극장이 있는 곳을 기점으로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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