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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숏컷은 무조건이다”…편협한 잣대, ‘안티 페미’의 비상식적 사상 검증


입력 2021.07.28 14:10 수정 2021.07.28 14:17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국가대표 안산·박희문 선수 둔 황당한 페미 논쟁

부적절한 악플에 무방비 노출...보호할 대책 없어

ⓒ뉴시스 ⓒ뉴시스

숏컷, 여자대학교, 채식주의자, 노메이크업, 노브라. 황당하지만, 일각에서 ‘페미니스트의 조건’이라고 칭하는 단어들이다. 이 키워드들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여성에겐 편협한 잣대를 들이밀고, 사상 검증대에 올리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마치 페미니즘이 ‘범죄’라도 된 것처럼.


“쟤 페미 아냐?” “숏컷하면 다 페미다” “여자 숏컷은 걸러야 된다” “페미 같아서 응원하기가…” “여대에 숏컷은 90% 이상 페미”


이 기이한 사상 검증은 도쿄 올림픽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황당한 건 여성 국가대표 선수들의 ‘머리카락 길이’를 검증의 잣대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여자 양궁 경기에서 안산 선수가 등장하자 SNS를 중심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그가 ‘페미냐, 아니냐’를 둔 우스꽝스런 입씨름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숏컷이) 편해서”라고 말한 안산 선수의 글 이후에도 일부 네티즌은 그가 숏컷을 유지한 기간까지 체크해가며 집요하게 논쟁을 이어나갔다.


헤어스타일로 페미니스트 사상 검증대에 올려진 건 안산 선수만의 일은 아니다. 사격 국가대표 박희문 선수의 SNS에도 같은 종류의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이들이 실제 페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밝혀야 할 의무도, 설령 페미라고 해도 욕을 먹을 이유도 없다.


이 같은 여성 선수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공격이 이어지자 수많은 여성 네티즌들이 자신의 숏컷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 ‘숏컷 캠페인’에 동참했다. 편협한 사회의 잣대로, 평가받아왔던 여성 네티즌이 이번 논쟁을 계기로 또 다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페미니즘의 급격한 확산으로 우려와 경계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일부 극단적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를 목표로 한다는 주장에서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스스로를 ‘안티페미’라고 칭하며 반(反)페미니즘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페미니즘의 인식 갈등은 조남주 작가의 책 ‘82년생 김지영’(2016)과 이를 영화화한 정유미·공유 주연의 영화(2019)를 읽고, 봤다는 사실에 대한 반응으로도 확인된 바 있다.


당시에 많은 연예인들은 이 작품을 접한 사실만으로도 일방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최수영은 자신의 딩고 리얼리티 제목 ‘90년생 최수영’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영감을 얻은 것임을 밝혔다가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레드벨벳 아이린은 팬 미팅에서 최근 읽은 책으로 ‘82년생 김지영’을 포함한 여러 책들을 언급했다가 공격을 받았다. 일부 남성들은 레드벨벳의 음반을 부수거나 아이린의 얼굴이 나온 사진을 찢으면서 불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이를 바탕으로 온라인상엔 이를 바탕으로 ‘믿고 걸러야 할 페미 연예인’ 명단이 나돌기도 했다. 일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정한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극성 안티페미들이 스스로의 잣대로 이들의 사상을 결정내린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 혐오, 젠더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편협한 잣대를 통해 사상을 멋대로 검증하며 공격하는 행태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런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이들을 보호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악플에 대한 처벌도 쉽지 않을뿐더러, 처벌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스위가 터무니없이 가벼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양새다.


근본적으로 안티페미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부 남성들의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 방송 관계자는 “안티페미는 페미니스트가 여성우월주의를 요구한다고 일반화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서 “지금 당장은 남성이 역차별 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성은 수천년을 핍박받으며 살아왔고, 여전히 사회 곳곳엔 여성에 대한 편견이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우리는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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