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마지막 승부’와 ‘슬램덩크’ 세대로 불리는 2030세대의 젊은 팬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농구붐이 일어났고, 특히 대학농구가 전성기를 맞이하며 한국농구계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됐던 시기로 꼽힌다.
1990년대 한국농구의 주역으로 대거 등장한 이들은 속칭 ‘농구대잔치 세대’로 불린다. 흔히 ‘397세대’(30대-90년대 학번-70년대생)로도 불리는 농구대잔치 세대는 1990년대 대학농구의 전성기를 이끌며 농구의 르네상스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 출범이후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10여 년 동안 한국농구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에 배출된 대표적인 스타플레이어로는 조성원, 문경은, 김재훈, 최명도, 김승기, 조동기, 홍사붕(90학번), 이상민, 김영만, 양경민 (91학번), 전희철, 김병철, 우지원, 박재헌, 김훈(92학번), 서장훈, 양희승, 추승균, 박훈근, 박재헌(93학번), 현주엽, 신기성, 김택훈(94학번), 김성철, 조상현, 강혁, 황성인(95학번), 이규섭(96학번) 등이 있다. 이들 중 은퇴한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아직도 프로에서 변함없이 왕성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등장은 당시 한국농구로서는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장신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코트를 내달리고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슛을 쏘아대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신체조건과 운동능력을 갖추고 있는 대학 선수들은 힘과 높이, 기량에서 모두 선배들을 압도했다.
프로화 이후 상무를 제외하면 순수 대학팀들만이 참가하는 아마무대로 입지가 축소됐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농구대잔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농구축제였다.
특히 마지막 전성기로 꼽히는 90년대 초중반에는 대학농구의 인기가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렀다. 프로와 아마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있는 현재와 달리, 어린 선수들이 대학시절부터 농구대잔치와 국제 대회 등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농구대잔치 세대의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연세대는 94년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이상민 등으로 구성된 ‘독수리군단’을 앞세워 88년부터 93년부터 농구대잔치 5연패,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기아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대학팀 최초의 농구대잔치 제패 겸 전승 우승이라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한국농구계에서 대학돌풍이 선배 격인 실업을 능가하는 역전 현상이 가속화됐다. 연세대가 첫 우승을 차지했던 94년부터 프로출범 직전 마지막대회이던 97년까지 4년간은 상대전적에서 대학이 실업을 오히려 압도했다.
연세대는 94년과 97년 당시 대학팀으로는 전무후무한 농구대잔치 통합우승 두 차례를 달성했으며, 97년에는 아마무대 44연승을 달성하는 등 명실상부한 90년대 최강팀으로 군림했다.
전통의 라이벌 고려대는 95년 대학무대 전관왕과 96년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전승우승, 3년 연속 4강에 오르며 연세대와 더불어 대학농구의 ‘쌍두마차’로 활약했다. 이밖에도 전통의 강호 중앙대를 비롯하여 경희대, 명지대, 한양대 등이 숱한 스타들을 배출하며 90년대 한국농구의 ‘대학돌풍’을 주도했다.
농구대잔치 세대에서 배출한 선수들은 뛰어난 실력뿐만 아니라 준수한 외모와 스타성을 겸비해 당시 침체기를 걷던 한국농구의 인기를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오빠부대’를 몰고 가는 10대 팬들의 열렬한 지지는 사회적인 현상으로까지 평가받기도 했다.
또한 농구대잔치 세대는 국제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97년 ABC 대회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물리치고 한국농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이끄는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들은 프로화 이후에도 사실상 한국농구의 중심적인 선수들로 활약했으며, 성실한 몸 관리와 꾸준한 기량으로 10년이 넘은 지금도 각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장수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태술-김승현-방성윤-김주성-하승진
2008년, 순수 프로세대로의 교체
프로 출범이후 뉴스타로 등장한 ‘208세대’(20대-00년도 학번-80년대생)는 과거 농구대잔치 세대의 첫 등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빠른 속도로 한국농구의 중심축에 자리잡아가고 있다.
프로화 이후 등장한 ‘순수 프로 세대’ 스타들의 출발점은 흔히 김승현(97학번)이 첫 손에 꼽힌다. 2000년대 프로무대가 배출한 최초의 스타로 꼽히며 01~02시즌 혜성처럼 등장한 김승현은 데뷔 첫해 신인왕-MVP를 동시 석권했고 전년도 하위권을 맴돌던 팀을 일약 정규시즌-플레이오프 통합우승으로 이끄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했다.
이후 김주성(98학번), 양동근(00학번), 방성윤(01학번) 같은 새로운 스타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기존의 농구대잔치 세대와 함께 프로화가 정착되어가던 ‘과도기’의 한국농구를 이끌었다면, 208세대의 등장으로 세대교체가 본격적으로 가속화 것은 지난 2007년부터였다.
프로 출범원년인 97년 초창기부터 한국농구를 이끌어왔던 원조 ‘농구대잔치 세대’가 이제 어느덧 노쇠화 문턱에 접어들었고, 이제 어느덧 ‘순수 프로화 세대’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
프로 출범 이후 외국인 선수들이 강세를 띠며 국내의 스타급 선수들이 외국인들을 받쳐주는 조연으로 전락하는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고, 농구대잔치 세대의 노쇠화에 따른 세대교체의 실패는 농구 인기의 하락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특히 농구대잔치 세대가 주축이 되어 치른 마지막 국제대회였던 2005년 도하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의 부진은 한국농구의 위기와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국농구는 지난 2006년부터 점진적인 세대교체에 돌입했다.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함지훈, 정영삼, 이광재, 김영환 등을 배출했던 2007년 드래프티들은 데뷔 첫해 저마다 소속팀에서 주전급을 꿰차며 프로농구에 신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어 지난달 열렸던 2008 신인드래프트에서는 다시 최대어 하승진을 비롯해 김민수, 강병현, 윤호영, 차재영, 정재홍 등 향후 한국농구를 이끌어갈 주역들이 대거 등장하며 10년만의 황금세대가 마침내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세대 선배들이 그러했듯, 2000년대 하승진, 방성윤, 김태술, 양희종, 김민수 같은 선수들은 일찍부터 국가대표 중용과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을 통해 두각을 나타냈다. 미국 NBA와 NBDL 등 해외무대를 통한 선진농구의 체험, 혼혈 출신 귀화 선수들의 영입 등으로 신체조건과 자질 면에서 기존 선배들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시기적으로는, 황금세대의 출발을 알린 2007년부터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제의 귀환으로 국내 선수들의 입지가 좀 더 넓어지며 신인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다.
이제 몇 안 되는 농구대잔치 세대의 마지막 멤버로 불리며 은퇴를 앞두고 있는 문경은, 이상민, 김병철 등 노장 선수들과 최근 새롭게 등장한 프로 1,2년차 선수들은 띠동갑 이상의 나이차가 된다.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의 아성을 넘어 한국농구의 새로운 도약기를 이끄는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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