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문맹현상 높아져
디지털 문해력 수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직장인 A씨는 동생과 함께 새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 대리점을 찾았다. 동생은 대리점에서 계약 약관을 1분 만에 다 읽은 채 서명을 시작했다. 동생은 약관을 다 읽어보지 않아도 괜찮냐는 A씨의 물음에 “계약서를 언제 다 읽어, 읽어도 몰라”라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A씨는 이 대답이 흥미로워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니 휴대전화나 헬스클럽, 인터넷 신청 등에 필요한 계약서를 이해하는 건 차치하고 끝까지 읽는 읽는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거 글을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문맹'이라 했지만 요즘은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아지며 '실질적 문맹'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문해력은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지식과 잠재력을 발휘해 사회적 활동하는데 주 기반이 된다. 문해 능력은 개인의 자본적 가치 향상과 사회의 경제적 생산 증대에 꼭 필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이 미치는 다양한 의사 결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능력이다.
디지털 사회로 접어들면서 검색 하나로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일상다반사가 된 사회에 ‘실질적 문맹현상’은 나이를 초월해 가속화되고 있다.
올해 EBS가 국내 방송 최초로 중학교 3학년 학생 2400여명을 대상으로 문해력을 시험한 결과 약 30%가 중3 수준에 미달하고 이 가운데 11%는 초등학교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혼자서는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한 교실 학생의 3분의1가량이 자기주도학습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EBS는 지난 3월 1년 동안 유아, 초등학생, 중학생 대상으로 문해력 향상 프로젝트를 시행해 얻은 경험을 공유한 '당신의 문해력'이란 프로그램을 6회에 걸쳐 방영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고등학생 학생들이 영어 수업시간에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광고' 등의 단어를 몰라 선생님들이 뜻을 설명해주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또 사회시간에는 영화 '기생충'의 가제를 언급하던 선생님에게 한 학생이 "가제는 랍스터인가요?"라고 되물었다.
문해력 저하는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8월 17일이 임시공휴일로 확정되면서 토요일인 광복절 8월 15일부터 사흘 연휴가 결정됐다. 이에 사흘의 뜻을 검색하는 사람들로 인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사흘'이란 단어가 올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흘의 뜻을 두고 "3일을 왜 사흘이라고 하냐", "사흘과 나흘을 구분도 못하냐"는 황당한 논쟁이 펼쳐졌다.
또 지난해 사재기 의혹으로 블락비 박경으로부터 저격 받았던 송하예는, 박경이 명예훼손 혐의로 약식기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자신의 SNS에 "사필귀정. 첫 미니앨범 기대해"라고 글을 적었고, '사필귀정'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는 글보다는 영상을 더 친숙하게 생각하는 현상이 꼽힌다. 글이 아닌 영상으로 이해하다보니 글을 접할 일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여기에 영상마저도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며 오랜 시간 글을 읽는 행위가 점점 낯설고 수고스럽게 느껴지고 있다.
글을 수단으로 얻는 지식이나 이해는 뒤처지고 있어도 인터넷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취약점은 존재했다.
OECD가 2018년 만 1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3년마다 실시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인 피사(PISA) 결과에 따른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 문해력 개발하기'란 보고서에서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이 25.6%로 나타났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또한, 스팸메일 식별을 통해 정보의 신뢰성에 접근하는 역량도 OECD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판별하고, 왜곡된 내용을 걸러내는 능력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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