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스포츠 매거진]
1999년 천안북일고와 군산상고는 나란히 봉황대기와 황금사자기 정상에 올랐던 강팀이었다.
두 팀이 그해 전국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던 동력은 강력한 ‘에이스’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 주인공은 바로 조규수(한화)와 이승호(SK)다.
‘19살 에이스’ 조규수와 이승호
봉황대기에서 천안북일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던 조규수나 황금사자기에서 4번의 완투승을 포함해 군산상고가 거둔 5승을 모두 책임진 이승호는 졸업 후 각각 연고 프로팀 한화 이글스와 쌍방울 레이더스에 1차 지명 받고 입단했다.
조규수는 99년 고교야구 무대에서 6승1패 평균자책점 1.76을 기록하는 발군의 기량을 과시하며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의 뜨거운 구애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조규수는 그해 마지막 전국대회 황금사자기에서 완투행진을 벌이면서 뒤늦게 주목받은 이승호에 비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고교최대어‘ 조규수의 라이벌로 꼽혔던 선수들은 이승호가 아니라 경남고 에이스 강민영(전 롯데)이나 ’호타 준족‘의 김주찬(당시 삼성->롯데)이었다. 조규수(2억 8천만 원)와 이승호(1억 6천만 원)의 계약금 차이가 벌어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후 조규수와 함께 신인왕 레이스에서 가장 앞으로 치고나온 선수는 다름 아닌 이승호였다. 조규수와 이승호, 새천년을 뜨겁게 달궜던 두 신인 투수간의 특별한 라이벌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치열했던 신인왕 경쟁
두 투수의 출발은 조금 달랐다. 한화가 에이스 정민철이 요미우리로 떠난 공백을 메우기 위해 조규수를 선발로 기용한 반면, 쌍방울 선수들을 흡수한 신생팀 SK는 이승호를 마무리 투수로 기용했다.
그해 5월 중순, 조규수가 데뷔전 패전의 아픔을 씻고 내리 3연승을 달리는 등 5승을 챙기며 가장 앞으로 치고 나왔고, 이승호는 보직이 무색하게도 4승(3세이브)을 거두며 뒤를 바짝 추격했다. 팀의 빈약한 투수자원으로 인해 이승호는 선발, 마무리, 중간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승호가 신인 가운데 가장 먼저 9승에 선착하면 다음날 조규수가 신인 첫 완투승으로 9승을 장식하는 등 가을이 다가오면서 이들의 신인왕 경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들은 그해 신인투수라는 한계를 뛰어 넘어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 노릇을 했다. 바꿔 말한다면 고졸 신인투수에게 팀의 운명을 맡길 정도로 그해 두 팀의 전력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
시즌 중반까지 다승왕 레이스를 주도했지만, 신인이라는 체력적 한계와 팀 타격 부진 탓에 둘은 각각 6연패 나락으로 빠져들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시즌 막판 간신히 10승을 채우는데 만족해야 했다. 이승호가 먼저 10승에 선착하고, 조규수는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10승 고지를 밟았다.
그해 조규수는 한화에서 가장 많은 169.1이닝을 던졌고, 송진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승리를 따냈다. 선발보다 구원으로 더 많이 등판을 했던 이승호 역시 팀 내 1위에 해당하는 139.2이닝을 소화했으며, 팀에서 유일하게 10승 고지에 올랐다. 고졸 신인 투수였던 이들이 팀의 마운드를 책임진 것.
조규수의 최종성적은 29게임 10승 12패 평균자책점 5.05, 이승호는 42경기 10승 12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4.51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두 투수는 그해 신인왕 후보에 올랐으며 65표를 얻은 이승호가 15표를 얻는데 그친 조규수를 누르고 2000년 프로야구 신인왕에 선정됐다. 처음 출발에서 뒤쳐져 있던 이승호가 결국 뒤집었다.
그러나 조규수와 이승호의 라이벌 대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고 거기서 끝이 났다.
조규수가 팔꿈치 이상과 투구 밸런스의 극심한 난조로 신인 시절의 성적을 뛰어넘지 못했고, 이후 5년 동안 18승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2006년 군복무를 위해 마운드를 떠났기 때문.
이승호는 2001년과 2004년 각각 14승과 15승을 거두는 등 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조규슈와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고질적인 어깨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2005년 3.2이닝을 던진 것을 끝으로 마운드에 서질 못했다.
´새로운 10년´ 만들어 나가기를
2000년 이들의 신인왕 경쟁을 두고 놀랍거나 특별하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훨씬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둔 신인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시즌을 얼마든지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해 조규수와 이승호의 경쟁이 뇌리에 남아있는 이유는 향후 10년은 거뜬하게 프로야구 마운드를 양분해 나갈 것 같았던, 그날의 뜨거웠던 이들의 경쟁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어쩌면 19살 어린 에이스 어깨에 너무 무거운 것을 짊어지게 했던 미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창 호기심 많을 철없는 나이에 그 무거운 짐을 거뜬하게 짊어졌던 두 투수에 대한 애틋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2008시즌을 앞두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승호와 조규수가 다시 마운드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얼마나 회복됐는지,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고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팀 상황이 달라졌다. 이들이 대결을 펼치던 2000년, 꼴찌를 다투던 소속팀이 언제라도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이제 두 투수는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팀의 운명을 걱정하며 힘겹게 마운드에 오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부터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신들의 장밋빛 미래를 만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면 된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난 듯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20대 창창한 나이의 젊은 투수들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난 조규수와 이승호. 사연 많은 두 투수가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10년, 그 특별한 라이벌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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