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하품은 모두 입을 크게 벌리는 동작이다. 그러나 사회가 그 두 표정을 다루는 방식은 극명히 다르다. 웃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이어가게 한다. 조직에서, 가정에서, 일상 속 작은 웃음 하나가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연결고리가 된다. 하품은 정반대다.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면 몸이 알아서 하품을 터뜨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억지로 웃음을 지어내면서도 하품만큼은 숨기려 애쓴다.
▲지난 15일 광화문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임명식에 참석한 이재용 회장이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품을 하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16일간 미국에 머물던 그는 행사 당일에서나 서울에 도착했다. 아무리 강철 체력이라 해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 그가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미·일 순방 동행 경제단체 및 기업인 간담회'에선 이 대통령과 대화를 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웃음은 포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하품은 숨길 수 없다. 억지로 흉내 낼 수는 있어도, 하품에는 가식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피로와 위기가 쌓여 몸이 스스로 내보내는 신호처럼, 시장은 삼성의 답답한 행보를 직시하고 있다. 실제 삼성은 2017년 2월부터 시작된 사법 리스크에 성장이 묶이면서 '잃어버린 9년'의 시기를 보냈다.
반도체 사업에서는 파운드리와 시스템설계(LSI) 부문의 조 단위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초격차를 자부해 온 메모리 부문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개발 시기를 놓쳐 글로벌 점유율 1위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차세대 디스플레이(OLED)는 중국이 맹추격 중이고, 스마트폰 시장에선 중국 브랜드가 중저가 시장을 장악했다. 웃음으로 포장된 경영 메시지 뒤에 숨겨진 본능적 피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 전체 산업이 처한 현실과 겹친다. 조선은 중국에 생산량 1위를 넘긴 지 오래고 철강·석유화학은 중국 저가 공세에 시장을 뺏겼다. 4월부터 미국 자동차 관세를 맞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의 수익성도 나빠졌다. 그런데도 자고 나면 정부와 여당은 노란봉투법, 더 센 상법(2차개정안) 등의 반기업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이제는 웃음으로 위기를 감출 때가 아니다. 가식적 웃음은 잠시 분위기를 덮을 수는 있어도,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이재명 정부가 이 회장의 하품이 드러내는 본능적 신호를 정직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이유다. 기업들의 절박한 호소를 귀담아듣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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