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아이돌이 사라졌다 [여돌 전성시대①]

이예주 기자 (yejulee@dailian.co.kr)

입력 2025.05.23 08:37  수정 2025.05.23 08:38

2020년대에 들어서며 케이팝(K-POP) 시장의 흐름이 눈에 띄게 변화했다. 남자 아이돌의 화제성이 급감한 반면, 여자 아이돌은 케이팝 팬들은 물론 대중의 사랑까지 잡으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바야흐로 '여돌 천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SM엔터테인먼트

싸이, 아이브, 에스파, 아이들, 아일릿, 비비, 지코. 2024년 대학 축제 섭외 선호도 상위권에 포진한 가수 명단이다. 싸이와 비비, 지코를 제외하면 모두 걸그룹이다. 올해의 대학 축제 역시 마찬가지다. 에스파, 있지, 아이들 등의 걸그룹이 다수의 무대에 서는 가운데 싸이, 데이식스, 잔나비 등의 가수들이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으나, 보이그룹은 NCT 위시와 투어스, 스트레이키즈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현재 국내 아이돌 시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2020년 이전에는 보이그룹이 강세였다. 앨범과 굿즈 판매, 콘서트 티켓 구매, 음원 사이트 스트리밍까지 여성 팬덤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이에 힘입은 기획사는 보이그룹 육성에 집중했다. 여자 아이돌은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는 기여했지만 팬 충성도가 낮았고, 티아라와 AOA 등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리스크 발생시 회복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남자 아이돌은 장기적인 수익화 차원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 실제 2010년대 주요 음원 차트를 살펴보면 빅뱅, 비스트, 샤이니, 엑소 등의 보이그룹이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국내 차트는 물론 일본 차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대 오리콘 CD 매출 랭킹에 따르면 동방신기, 빅뱅, 방탄소년단이 각각 8위, 16위, 24위를 차지했다. 차트의 기준인 앨범 판매량에서 보이그룹이 걸그룹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초동 판매량의 경우 한국 가수 중 동방신기는 '베스트 셀렉션'으로 41만 장을 기록했지만, 오리콘 케이팝 앨범 초동 판매량 10위권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걸그룹 카라는 '슈퍼걸'로 27만 장을 판매하는 데에 그쳤다.


콘서트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걸그룹은 체조경기장을 채우기 어렵다”라고 할 정도로 팬 충성도가 낮았다. 그러나 이 말도 이제 옛말이 됐다. 걸그룹 콘서트 표를 구하기조차 어렵다. 레드벨벳, 아이들, 아이브, 에스파 등은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를 잇따라 매진시켰다. 현재 공사 중인 잠실주경기장이 향후 다시 공연장으로 사용될 경우, 다수의 걸그룹이 이곳을 매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걸그룹은 소녀시대, 카라, 투애니원, 블랙핑크, 트와이스 단 다섯 팀 만이 체조경기장에 입성했던 2010년대의 기록을 5년 만에 따라잡으며 확장되는 팬덤 규모를 입증했다.


반면 보이그룹은 체조경기장 입성 횟수 자체는 더 많지만, 성장폭은 상대적으로 둔화됐다. 2010년대에는 총 17개의 보이그룹이 체조경기장 무대에 처음 이름을 올렸으나 2025년 현재까지는 10개 그룹에 그쳤다.


콘서트 티켓 판매 추이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코피스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파는 2020년 이후 데뷔한 그룹 중 유일하게 대중음악 티켓 판매액 상위 10개 공연 목록에 올랐다. 코피스가 공개한 2025년 대중음악 공연 총 티켓예매액 순위표를 확인해도 마찬가지다. 상위 30위권에 안착한 그룹 중 제로베이스원, 에스파, 아이브 만이 2020년 이후에 데뷔했다.


이러한 팬덤의 확장은 결국 대중성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2025년 5월 아이돌 그룹 브랜드 평판 10위권에 2020년대에 데뷔한 보이그룹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걸그룹의 경우 아이브, 에스파, 르세라핌, 키키 총 다섯 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대중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SNS 팔로워 및 유튜브 콘텐츠 조회수 또한 마찬가지다. 2020년 이후 데뷔한 아이돌 그룹 중 가장 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이는 에스파의 카리나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마찬가지다. 2020년대에 데뷔한 아이돌 중에서는 베이비몬스터, 에스파, 아이브, 르세라핌, 뉴진스가 유튜브 누적 조회수 부문에서 차례대로 상위권을 차지했다.


여자아이돌은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5년에만 키키, 하츠투하츠, 이프아이 등의 그룹이 성공적인 데뷔 활동을 마치며 5세대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보이그룹은 3세대로 불리는 방탄소년단, 세븐틴, NCT, 몬스타엑스 등 3세대로 불리는 팀들이 시장을 견인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라이즈, NCT 위시, 보이넥스트도어 등의 그룹이 팬덤 구축은 성공했지만 대중성 확보를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보이그룹 시장은 여전히 ‘다음’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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