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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잡는 공룡여당①] 국내 기업 무장해제에 엘리엇·소버린이 웃는다


입력 2020.08.31 07:00 수정 2020.08.30 20:27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다중대표소송제·감사위원 분리선임 도입시 경영권 위협, 경영활동 위축

소액주주 보호 순기능보다 해외 투기자본 '먹튀' 도구로 악용 우려

국회 전체 의석의 5분의 3에 육박하는 176석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공룡여당이 됐다. 국민이 부여한 이 막대한 권한을 기업 경영환경 개선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활용하면 좋으련만, 이들은 상법·공정거래법·노동법 등을 뜯어 고쳐가며 기업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공룡의 폭주’가 어떤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지 짚어본다.[편집자 주]


2019년 3월 2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제51회 정기주주총회 장면. 이날 주총에서는 엘리엇의 거액 배당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요구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019년 3월 2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제51회 정기주주총회 장면. 이날 주총에서는 엘리엇의 거액 배당과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요구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던 2018년 4월. 현대차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지분 10억달러 상당을 갖고 있다고 밝히며 등장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이듬해 2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3000억원의 고배당과 자사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그룹을 압박했다.


당시 엘리엇이 현대차(4조5000억원·우선주 포함 5조8000억원)와 현대모비스(2조5000억원)에 요구한 배당액은 이들 회사의 전년도 영업이익을 훌쩍 넘기는 금액으로, 해외 투기자본 특유의 ‘먹튀’를 노린다는 지적이 일었었다.


엘리엇이 현대차의 사외이사로 추천한 로버스 랜달 맥귄은 수소연료전지를 개발, 생산 및 판매하는 회사인 발라드파워스시템 회장으로, 그의 사외이사 선임은 수소연료전지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차의 기술을 통째로 넘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로 추천한 로버트 알렌 크루즈는 중국 전기차 업체인 카르마의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이 회사는 현대모비스와 거래 관계가 있는 회사다. 한 사람이 두 회사 임원 지위를 겸임할 경우 상호 이해상충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엘리엇의 야심은 그해 정기주총에서 표결에 패하면서 좌절됐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을 탈탈 털어 ‘먹튀’를 하지도 못했고, 사외이사를 밀어 넣지도 못했다. 결국 엘리엇은 지난해 말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철수했다. 지분 매입 시점보다 매각 시점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손실까지 떠안았다.


당시 한국에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엘리엇이지만 다시 현대차그룹을 먹잇감으로 삼아 실패를 만회할 의사가 있다면 조만간 좋은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이 똘똘 뭉쳐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무장해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열고 통과시킨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 도입과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우리 기업들이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약화시키는 법안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조만간 국회에 제출될 예정으로, 여당이 176석을 점하고 있는 만큼 야당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그동안 21대 국회에서 이른바 ‘공정경제 입법’을 완성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해 왔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시 투기자본 공격에 취약


투기자본이 우리 기업들을 단기차익 실현의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에서 합법적 배경을 만들어줄 대표적인 제도로 다중대표소송제가 지목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임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모회사 주주가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다.


자회사 경영진의 배임을 견제해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지만, 투기자본이 이 제도를 악용하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우리 기업을 쥐락펴락 하면서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장면.(자료사진)ⓒ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 장면.(자료사진)ⓒ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이 제도가 도입되면 비상장회사 주식 전체의 100분의1이나 상장회사 지분 1만분의1만 보유해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상장회사의 경우 경영진이 다수의 주주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임무를 게을리 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켰다’는 조항도 모호해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


재계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도가 도입될 경우 도입 취지인 ‘소액주주들의 이익 보호’보다는 ‘투기자본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더라도 배상액이 주주에게 직접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투기자본들이 다중대표소송을 빌미로 경영권을 압박해 단기차익을 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앞서 언급한 엘리엇을 비롯, 소버린, 론스타, 칼 아이칸 등 투기자본들은 그동안 우리 기업으로부터 단기차익을 얻어내고 ‘먹튀’를 하기 위해 상당한 규모의 자본을 동원해야 했으나,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그 과정이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


정부와 거대여당이 나서서 외국계 투기자본 앞에 우리 기업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셈이다.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해당 조항을 적용받는 자회사들의 경영활동 위축도 불가피해진다.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과감한 투자나 혁신에 나서기보다는 위험을 회피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경영에 임할 여지가 높다.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경제 활력을 회복시키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해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정부와 여당은 기업의 경영활동을 더욱 위축시키는 법안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간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주주에 비해 적은 지분으로도 회사 이사에 대한 소송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60%를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실질적으로 자회사 주식의 0.6%(모회사 지분 1%×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율 60%)만 보유하면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반면, 자회사 주주가 해당 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려면 자회사 주식의 1%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독일·프랑스·영국 등 대다수 국가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소송 제기 요건을 엄격하게 규정해 소송 남발을 막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도입시 경영활동 위축·기업 기밀 유출 우려


‘감사위원 분리선임’ 역시 대주주의 의사결정권을 제한해 경영활동을 위축시키거나 기업 기밀을 유출시키는 상황을 만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현재는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이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도입되면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한다.


명목상으로는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경영활동을 감시하게 한다는 취지지만, 실질적으로는 외국계 투기자본 앞에 기업들을 무장해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문제 조항. ⓒ대한상공회의소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문제 조항. ⓒ대한상공회의소

지금도 감사위원 선임시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상황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임까지 의무화될 경우 대주주의 감사위원(이사) 선임에 대한 의사결정권은 과도하게 제약되는 반면, 펀드나 기관 투자자는 더 적은 지분으로도 연합을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외부세력이 단기차익을 노리고 우리 기업의 주주로 들어올 경우 감사위원 선임 등을 무기로 배당 확대 등에 집중해 기업의 장기 성장 여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2003년 소버린이 SK(주) 지분을 매입하고 최태원 SK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며 주가를 끌어올린 뒤 2년 뒤 되팔고 철수하는 과정에서 투자액의 6배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거둔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6년에는 칼 아이칸이 KT&G 주식을 매입한 뒤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한 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1500억원의 수익을 빼먹고 떠난 사례도 있었다.


엘리엇의 경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실패하고 철수했지만, 상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언제 다시 되돌아와 반전을 노릴지 모를 일이다.


감사위원에게는 회사의 모든 정보를 열람할 권한이 있는 만큼 감사위원 분리선임이 우리 기업들의 기술 보호 장벽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외국계 헤지펀드나 경쟁사와 연관된 펀드가 감사위원을 통해 회사 기밀을 빼내가도 막을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소액주주 보호나 감사위원의 독립성 강화라는 순기능만 바라보고 (정부와 여당이) 무리하게 법안을 도입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면서 “도입되면 막대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수습도 쉽지 않을 텐데 일단 도입해 놓고 나중에 보완하자는 생각이라면 너무 무책임한 게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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