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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불법' 주방용 오물분쇄기 버젓이 활개…환경당국-지자체, 단속엔 '책임 전가'


입력 2020.08.24 08:28 수정 2020.08.24 18:46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음식물쓰레기 갈은 오물 그대로 한강 방류

관련 규제 하수도법‧환경부고시 '무용지물'

업체 검찰 송치됐는데 사용자 단속 지지부진

우리나라에선 음식물쓰레기를 하수 배관에 따라 버리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왔지만 2000년대 후반 오물분쇄기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2009년 오물분쇄기 시범설명회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가정에 설치된 분쇄기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우리나라에선 음식물쓰레기를 하수 배관에 따라 버리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왔지만 2000년대 후반 오물분쇄기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사진은 2009년 오물분쇄기 시범설명회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가정에 설치된 분쇄기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뉴시스

주방용 오물분쇄기(디스포저)가 수질오염 유발 원인이 되면서 환경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음식물쓰레기를 하수 배관에 따라 버리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왔다. 그러나 2012년 오물분쇄기 사용이 조건부 허용된 후 규제 사각지대를 틈탄 무단 방류가 성행하면서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당시 정부는 오물분쇄기를 사용하려면 ‘2차 처리기(망)’으로 분쇄된 음식물을 80% 이상 회수해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하고, 사용자가 임의로 조작할 수 없는 일체형 제품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환경부 고시를 개정했다. 그러나 분쇄한 오물을 회수통에 걸러 버리는 과정이 번거로워 오물을 그대로 하수도에 방류하는 ‘꼼수’ 사용이 급증했다.


오물분쇄기 남용에 대한 제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환경 당국과 지자체는 불법 사용 사례를 적발하고도 ‘개인정보법’을 구실삼아 처벌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단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제조판매업체들은 소비자들에게 불법 오물분쇄기 판촉에 열을 올리며 문제를 확산시키고 있다.


“회수통은 드리지만 달고 사용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습니다. 자사가 개발한 특수한 칼날로 오물을 갈면 통째로 배관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번거롭게 회수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규제법이 있지만 단속할 방법이 없어 무용지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 수도권 소재 주방용 오물분쇄기 영업사원의 열띤 설명이다.


◆환경부‧지자체, 책임 떠넘기려 '핑퐁게임'


환경부가 2017~2019년 3년간 소비자의 ‘불법 오물분쇄기 사용 사례’를 적발한 건수는 767개다. 실정법상 오물분쇄기를 불법적으로 사용하다 적발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하지만 실제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전무하다.


이중 765건은 지난해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서 무더기로 적발됐다.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 입주자들이 환경부로부터 인증받지 않은 H사 오물분쇄기 제품을 공동 구매해 사용하다 국민신문고 제보를 받은 한강유역환경청에 의해 적발된 것이다. 767건 중 765건이면 환경당국 입장에선 큰 건 잡은 사례다.


우선 제조업체 처벌은 업체가 자백하면서 손쉽게 이뤄졌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제조업체 정보를 관할관청인 서초구청에 넘겨줬고 업체로부터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에 불법 제품을 설치했다는 확인서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해당 업체는 한강유역환경청 환경감시단 수사를 마치고 지난 7월 검찰에 송치됐다.


불법 개조한 주방용 오물분쇄기에 대한 행정 당국과 지자체의 단속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남시 불법 개조한 주방용 오물분쇄기에 대한 행정 당국과 지자체의 단속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남시

제품의 ‘불법성’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불법 제품 사용자 단속은 제자리걸음이다. 단속을 위해선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 입주자 명단이 필요한데 과태료 부과권자인 환경부와 관할 지자체인 서초구청이 “개인정보법 침해 여지가 있다”며 책임을 서로에 떠넘기고 있어서다.


환경부는 관할지자체인 서초구청이 입주자 명단을 내주지 않아 단속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재활하수과는 “조합원뿐만 아니라 분양자, 임차인까지 다양한 입주자 정보를 환경부 차원에서 파악하기 쉽지 않다”며 “재건축 인허가권자인 서초구청이 입주자 명단을 넘겨 줘야 단속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서초구청은 입주자 명단은 과태료 부과 권한이 있는 환경부가 조사해야 할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서초구청 물관리과는 “입주자 명단을 입수할 수 없다는 환경부의 입장은 말이 안 된다”며 “한강유역환경청에서 제조업체 정보가 담긴 공문을 구청에 보내주기까지 했다”며 “사용자 현황 파악은 환경부가 직접 제조업체에 확인해보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불법 판촉 활동 여전…정부책임론도


환경부에 따르면 주방용 오물분쇄기 판매 실적은 2017년 2696대, 2018년 7753대, 2019년 4만9342대로 늘었다. 반면 2017~2019년 인증받지 않은 오물분쇄기 제조‧판매업자 수는 41곳, 이 중 위반 사실이 적발된 건 12곳에 불과하다.


이같이 정부의 단속이 유명무실하자 업체들은 암암리에 고객에게 편법 사용을 유도하며 적극적으로 영업활동에 나서는 분위기다. 환경부 기준대로 80%를 다시 회수해 버려야 할 경우 번거로움을 느낄법한 소비자 심리 공략에 나선 것이다.


환경부 인증을 받았음에도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는 오물 회수 없이 배관으로 흘려보낼 수 있도록 개조 또는 교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데일리안이 환경부 인증을 받았다고 홍보한 오물분쇄기 판매업체 15곳에 고객으로 접근해 문의한 결과, 무려 14곳(93%)이 “회수통을 달지 않고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홍보했다.


이는 업체들이 판매 진열대에 세워놓는 제품과 실제 고객에게 판매하는 제품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오물분쇄기 제조업자 박모 씨는 “환경부 인증받은 제품은 칼날이 무디어 찌꺼기 대부분이 회수통에 걸린다”면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제품은 모두 배관으로 흘러 내려갈 수 있도록 칼날을 날카롭게 갈거나 외산 칼날로 교체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귀띔했다.


회수통을 개조하는 움직임도 있다. 박씨는 “환경부 인증을 받을 때는 그물 구멍을 조그맣고 촘촘하게 낸 회수통을 부착한다”며 “그러나 고객이 원할 경우 남는 찌꺼기 없이 흘려보낼 수 있도록 그물 구멍 크기를 늘리거나 회수통을 제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체들이 불법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는 건 애초에 현실성 없는 오물분쇄기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업체들이 환경부 기준대로 ‘음식물의 80%는 회수통에 모아 종량제봉투에 버려야 합니다’ 광고하는 순간 소비자들은 제품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반대로 불법 제품을 판매하다 적발되면 환경부 인증이 취소되고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원치 않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오물분쇄기 업체들의 딜레마다.


◆오물분쇄기 도입 성행…"수질 오염 시간문제"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 입주자들이 불법 오물분쇄기를 사용할 경우 세대당 하루에 음식물 1kg씩만 버려도 하루평균 760kg의 오물이 한강으로 방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가정에 설치된 싱크대에서 내려가는 배관 크기가 작아 약 760kg를 배출하려면 수돗물 4톤을 함께 흘려보내야 한다”며 “이미 서울 하수종말처리장은 오수처리능력이 한계치에 다다른 상태라 수질 오염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한 하수처리장 ⓒ뉴시스 국내 한 하수처리장 ⓒ뉴시스

반포센트럴푸르지오써밋에 대한 진전 없는 단속이 커다란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오물을 통째로 갈아버려도 단속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만연해지면 다른 공동주택 단지들에서도 암암리에 편법 사용이 가능한 오물분쇄기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개포 프레지던스 자이’를 짓는 강남구 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조합은 지난 6월 30일 이사회와 7월 26일 임시총회에서 ‘주방용 오물분쇄기’을 도입하기로 의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계획세대수가 3375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다. 다수 조합원이 주방용 오물분쇄기 도입에 찬성 의사를 밝혔으며, 최근 유관 업체가 홍보 차원에서 조합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도권 등지 아파트에서도 오물분쇄기 공동구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본보 조사 결과 올해 서울 당산센트럴아이파크(802가구), 파주 운정신도시아이파크(3042가구), 평택 힐스테이트송담(952가구), 안산 신안1차아파트(2132가구), 세종시 가온1단지힐스테이트(1631가구), 수원 LG동수원자이3단지(924가구), 인천 서구 한국아파트(460가구) 등에서 오물분쇄기를 공동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지들에 오물분쇄기를 설치한 제조업체들은 표면적으론 환경부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앞선 사례에서 보았듯이, 막상 소비자들에게는 “회수통을 달지 않고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유인한 뒤 회수 없이 배관으로 오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제품을 판매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전국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음식물쓰레기 처리에 쓰는 평균 산소요구량(BOD)이 일부 포화 지역에선 230㎎/L까지 치솟았다”며 “우리나라 전처리 시스템은 처리 용량이 낮은 구형 비중이 많기 때문에 가정에서 오물분쇄기를 마구잡이로 쓰다보면 수질오염이 악화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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