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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근의 되짚기] 유통산업발전법이 ‘억제법’이 된 사연


입력 2020.07.27 07:00 수정 2020.07.26 20:18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현실 상황 제대로 반영 못한 규제 정책,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해

유산법 10년의 결과…유통업체는 구조조정, 전통시장 침체는 여전

규제 대신 자율과 상생에서 해법 찾아야

지난 2017년 6월 문을 연 이마트 노브랜드 구미 상생스토어 내부 전경.ⓒ이마트 지난 2017년 6월 문을 연 이마트 노브랜드 구미 상생스토어 내부 전경.ⓒ이마트

"유통산업 발전을 위해 마련된 유통산업발전법이 대형 유통에 대한 출점과 영업규제를 시행하면서 '유통산업 억제법'으로 변질됐다."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2020 신유통트렌드와 혁신성장 웨비나'에서는 현실에 맞지 않는 유통산업발전법 규제에 대한 정부의 성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은 당초 법안명처럼 유통산업의 발전을 위해 마련됐지만 현실에서는 규제법으로 통하며 악법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약 10년 전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으로 시작된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는 현재 복합쇼핑몰, 면세점 같은 다른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확대 움직임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단어의 사전적인 풀이대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각종 규제가 더해지면서 실상은 퇴보하고 있는 셈이다.


유산법이 억제법으로 불리게 된 데는 현실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점이 크다. 규제가 본격화 된 10년 전 당시엔 대형마트는 유통업 생태계 최상단에 위치한 포식자였다.


하지만 현재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쟁 구도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다. 대형마트가 영업을 쉰다고 해서 온라인 쇼핑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프라인 점포가 쉬는 날 온라인 영업도 하지 못하게 된 대형마트로서는 이중규제를 받는 처지가 됐다. 주말 장보기를 포기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불편함과 대형마트 규제에도 특별한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의 허탈함은 덤이다. 유통산업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 중 누구하나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는 셈이다.


오히려 지난 10년의 규제 기간 동안 적으로 마주했던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간 관계는 한층 가까워졌다. 온라인 쇼핑이라는 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탓도 있지만, ‘상생’이라는 공통의 해결책을 찾은 덕분이다.


이마트가 운영하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통시장이나 지자체의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통시장의 취약점으로 꼽혔던 주차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지원하고 시장 상인들이 판매하지 않는 공산품 등을 취급하면서 시장 경쟁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과는 전통시장 방문객 증가와 상인들의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공실로 방치됐던 시장 내 공간에 젊은 창업자들을 대거 유치하면서 지역 일자리 창출은 물론 시장이 하나의 관광 자원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장점도 누릴 수 있게 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지난 10년 간 규제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모습은 결국 시장의 자율과 상생이라는 가치를 통해 탄생한 셈이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동화 ‘해와 바람’에서도 비슷한 교훈이 등장한다. 외부 압력을 통해 강제하는 것보다 스스로 움직여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10년 간 계속된 규제의 결과는 어떠한가. 규제 대상으로 지목된 대형마트는 생존을 위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고,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은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번엔 온라인 쇼핑에 대한 규제를 통해 전통시장을 지키자고 할 일도 아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규제 보다는 자율과 상생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유통업체의 발목을 잡아 주저앉힐 것이 아니라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에게 노하우를 전수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지원이 필요한 때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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