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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전문 시위꾼 되는 법 알려주세요


입력 2020.07.09 11:28 수정 2020.07.09 13:01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전문 시위꾼 양산 우려

'일하는 자' 보다 '투쟁하는 자'가 득세하는 세상

민주노총 시위 장면(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민주노총 시위 장면(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접 사업체를 꾸리지 않는 이상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대기업 사원이건, 편의점 알바건, 심지어 대통령조차 일을(잘하건 못했건 간에) 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일을 안 하고도 임금을 꼬박꼬박 지급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해고자나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노동운동만 해도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기어이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경영계의 우려를 무시하고 지난 7일 국무회의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아직 국회 비준 절차가 남아 있지만, 문 대통령은 8일 ILO 영상 회담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아예 기정사실로 전 세계에 공표해 버렸다.


믿는 구석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여당이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국회에서 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을 통과시키지 않을 리 없다.


이제 남은 건 그 파장이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릴 때도, 근로시간을 무차별적으로 단축할 때도 부작용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정부였기에 이번 ILO 핵심협약 비준 역시 후폭풍은 오롯이 기업들이 덮어써야 할 형편이다.


기업들은 ‘해고자의 노조 가입 허용’을 인사권 침해라며 우려를 표한다. 해고자도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 사규 위반이나 범법 행위로 해고된 이도 결국 노조의 울타리 안에 머물며 사측을 압박해 결국은 복직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더 우려되는 부분은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이다. 사측과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는 이도 기업 노조 가입이 허용되면 노조에서는 사측과 임금·단체협약 교섭 과정에서 전문적인 협상가를 초빙해 교섭 테이블에 앉히는 게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사측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던 ‘전문 시위꾼’이 들어와 임금 인상을 압박하고, 교섭 테이블을 뒤엎고, 파업을 선동하는 난장판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도 허용되면서 ‘무노동 무임금’ 원칙도 깨진다. 굳이 일할 필요 없이 놀면서 기업과 싸움만 잘하면 더 편하고 돈도 많이 버는 세상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가뜩이나 노동계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이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더 크게 기울어진다면 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욱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에게도 ‘노동의 대가’보다 ‘투쟁의 대가’가 쉽고 더 달콤하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과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당시 “가게 때려 치고 알바를 하는 게 수입이 더 많겠다”던 소상공인들의 호소가 있었던 것처럼 “사업 때려 치고 노동운동에 투신해 한몫 잡겠다”는 사람이 나올 지 모른다. 노량진 학원가에 전문 시위꾼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날 수도 있다.


기업은 망하고 전문 시위꾼만 판치는 세상을 만들어 문재인 정부가 얻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의문이다. 정부의 리쇼어링 정책에 혹해 국내로 복귀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ILO 핵심협약 비준 이후의 국내 경영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세심하게 살펴본 뒤 결정할 것을 권하고 싶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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