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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제발” 지식인 찾은 고 최숙현 외침...기관 무용론마저 제기


입력 2020.07.06 00:01 수정 2020.10.07 18:32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지난해 3월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에 ‘고소’ 관련 문의 정황 포착

선수생명 걸린 중차대한 문제 놓고 온라인 공개할 만큼 선택지 좁아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내리기 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 내리기 전 어머니에게 보낸 모바일 메시지. ⓒ 이용 의원실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외롭게 싸우다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고 최숙현 선수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까지 찾았던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해 3월27일 네이버 지식인에는 자신을 운동선수라고 밝힌 한 글쓴이가 팀에서 폭언과 폭행을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면서 고소 절차와 방법을 문의했다.


글쓴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업팀에서 운동하면서 폭언과 폭행에 시달립니다. 어릴 적엔 이 상황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세상을 더 크게 보면서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체급 종목이 아님에도 체중 조절로 항상 압박을 받습니다"라며 "단 백그램 때문에 빵을 많이 사와서 먹고 토하고를 그 자리에서 계속 반복했다"고 ‘식고문’ 내용을 적었다. 또 "정말 살려달라고 빌어서 그만하는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이 사람들 평범하게 사는 모습 더 이상은 못보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글을 쓴 당사자가 최숙현 선수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글의 내용만 보면 최숙현 선수가 모았던 녹취록과 올해 초 작성한 진술서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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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글쓴이가 최숙현 선수가 아니라고 해도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는 선수가 호소할 곳이 ‘지식인’이라면, 대응 방안을 문의할 곳이 ‘지식인’이었다면, 선수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할 대한체육회나 경기단체연맹 등 기관의 무용론마저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최숙현 선수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네이버 지식인 글. ⓒ 네이버 지식인 캡처 지난해 3월 최숙현 선수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네이버 지식인 글. ⓒ 네이버 지식인 캡처

‘지식인’의 기능과 효과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생명을 걸어야 할 만큼의 중차대한 문제를 온라인상에 드러내놓고 한다는 것은 최숙현 선수에게 선택지가 좁았다는 방증이다.


“방법을 주세요 제발…”이라고 호소했던 최숙현 선수는 어떤 기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지난달 26일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부산의 숙소에서 목숨을 끊었다.


2016년 이후 최근까지 전 소속팀 선배, 지도자, 팀닥터 등으로부터 지속적인 가혹 행위와 폭언-폭행에 시달려왔다는 최숙현 선수는 지난 2월 경찰에 고소했고, 지난 4월 8일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 이를 신고했다.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도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해결은커녕 심리적 압박만 더 커졌다. 뻔뻔한 가해자들의 반성 없는 태도와 의지했던 기관들의 미온적인 대처에 좌절을 느낀 최숙현은 죽음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다.


미래통합당 ‘고 최숙현 선수 사건 진상규명 및 체육인 인권 보호 TF’ 위원장 이양수 의원은 “대한체육회 인권센터 조사관이 최 선수에게 증거 제출을 요구하니까 최 선수가 ‘이거 다 제가 해야 하는 건가요?’라고 조사관에게 반문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최숙현 선수에게 선수 피해구제 시스템은 허술했고, 기능에 따라 조직된 기관은 그저 허울이었다.


한편,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스포츠 공정위원회를 열어 고 최숙현 선수 사건의 가해자들로 지목된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에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A 감독, B 선수, C 선수 등 3명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당초 9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사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커지고 대통령까지 나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함에 따라 6일로 앞당겨졌다.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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