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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기에도 오르는 쌀값…‘눈치행정’이 ‘눈치쌀값’ 될라


입력 2018.11.22 09:00 수정 2018.11.22 09:18        이소희 기자

정부 쌀 정책에 농민·소비자 모두 반발, 과잉공급 해결 못하면서 매수로 가격만 상승

“쌀 목표가격 21만원 넘기면 쌀값도 오르고 쌀 변동직불금도 나가는 난감한 상황”

정부 쌀 정책에 농민·소비자 모두 반발, 과잉공급 해결 못하면서 매수로 가격만 상승
“쌀 목표가격 21만원 넘기면 쌀값도 오르고 쌀 변동직불금도 나가는 난감한 상황”


정부가 쌀값 딜레마에 빠졌다.

창고에는 팔지 못한 10여톤이 쌓여있는데도 쌀값은 계속 오르고 있다. 정부가 쌀 과잉공급의 해법으로 재배면적을 줄이는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했지만 목표에도 못 미치며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혔다.

통상 햅쌀이 나오는 시기인 10월부터는 벼 수매로 인한 쌀 공급이 늘면서 쌀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반적인데 올해는 쌀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농가들은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더해져 쌀 출하를 늦추는 통에 쌀값 폭등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쌀값이 상승세인데다 올해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6% 줄어들었고 향후 5년간 쌀값의 기준이 될 쌀 목표가격이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인 21만원까지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15일 기준 쌀값은 80kg당 19만3684원으로 지난해보다 26.5%가 올랐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52.5%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1년 반 만에 7만원 가량이 오른 것이다.

10월 쌀값은 공급량 감소로 80㎏당 19만3천∼4천원을 기록해 수매제에서 공공비축미 매입제로 변경된 지난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10월 쌀값은 공급량 감소로 80㎏당 19만3천∼4천원을 기록해 수매제에서 공공비축미 매입제로 변경된 지난 2005년 이후 13년 만에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연합뉴스

이에 정부는 단기적으로 5만 톤의 비축미를 시장에 풀기로 지난 14일 결정했고, 장기적으로는 쌀 직불금제 개편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농민들과 정치권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농민들은 쌀 목표가격이 지난 20년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24만원은 돼야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정치권도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수확기 구곡방출 철회’라는 기자회견과 성명을 잇달아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햅쌀 출하시기에 정부가 비축미를 푸는 것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한 전례가 없는 일이라지만 수확기에 쌀값이 오르는 현상도 드문 예다.

치솟는 쌀값을 놓고도 소비자들은 쌀값이 지난해보다 30%가량 올랐다며 정부보유미 방출을 통해 소비자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반면, 생산 농가들은 20년전 쌀값 수준에서 정상화로 접어드는 수순이라며 극명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또 있다. 올해 문재인 정부의 공약과 농민들의 주장대로 물가상승률이 감안돼 쌀 목표가격이 21만원을 넘길 경우 수천억대의 쌀 변동직불금이 추가로 발생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쌀값이 올랐는데도 국민 예산으로 집행되는 변동직불금도 별도로 자급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쌀 목표가격은 정부가 농가에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액수로, 시중의 쌀 가격이 목표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85%만큼을 변동직불금 형태로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쌀 고정직불금은 지급됐고, 변동직불금은 내년 2월에 지급할 예정인데 새로 정해지는 쌀 목표가격이 적용이 변수”라면서 “현재 쌀값 상승률을 보면 추가 직불금은 안 나갈듯 하지만 쌀 목표가격이 21만원을 넘으면 쌀 변동직불금도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농식품부는 쌀 변동직불금 예산으로 5775억원을 배정해 놨다. 예산서에는 쌀 목표가격 정부안 18만8192원과 산지 쌀값 15만5000원을 가정해서 예산을 짜놓은 상태로, 목표가격이 1000원이 오르든지, 쌀값이 1000원이 떨어지든지에 따라 1000원 단위 별로 370억원의 예산이 더 투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개호 농식품부 장관은 농민들과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해 “비축미 5만톤 방출은 정부 차원의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실시하지만 추가적인 비축미는 안풀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정부는 비축미를 더 풀어 쌀값을 떨어뜨릴 수도 없고, 쌀값을 더 올려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쌀값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이 같은 정부의 난감한 상황은 정부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쌀값 현실화’라는 대선공약의 실행과 문 정부의 초대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장관 재임 당시 농민들의 쌀값 인상 요구에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면서 쌀값은 오름세는 시작됐다.

이후 쌀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정부가 도입한 쌀 생산조정제에 호응하던 농민들도 참여도가 떨어지면서 정부 의도대로 쌀 재배면적은 줄지 못했고 쌀 생산량이 소비량을 웃도는 구조적인 문제를 푸는 출발점도 막혀버렸다.

농식품부는 내년에도 쌀 생산조정제는 실시하겠다는 입장이다. 1620억원의 예산을 들여 6만ha분의 쌀 재배면적을 타 작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지만 현재 고공행진하는 쌀값을 봐서는 농가 참여를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이 같은 지적에 정부의 “단기간에 쌀값이 가파르게 상승해 영세 자영업자, 저소득층 등 실수요자의 부담을 완화키 위해 비축미 방출을 결정했다”라며 “농가소득 안정, 소비자 부담 등을 감안해 적정수준에서 쌀값이 유지되도록 수급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설명이 외려 국민도 농민도 이해시키지 못할 ‘눈치행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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