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해?]이보다 더 영리한 복수극은 없다 '녹터널 애니멀스'

부수정 기자

입력 2017.01.03 05:58  수정 2017.01.03 08:42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 제작· 연출· 각본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주연

스릴러물 '녹터널 애니멀스'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UPI

'녹터널 애니멀스' 리뷰
톰 포드 제작· 연출· 각본


능력 있고 잘생긴 남편, 부유한 집안, 있어 보이는 직업...미술관 아트디렉터 수잔(에이미 아담스)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공허하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을뿐더러 불면증에 시달리며 '가진 자'의 결핍에 시달린다.

어느 날 수잔은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받게 된다. 과거 뉴욕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한 기억, 서로 사랑했던 추억, 아픈 이별 등이 수잔의 가슴을 찌른다. 소설에 몰입하며 에드워드를 떠올린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만나자고 제안한다.

스릴러물 '녹터널 애니멀스'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지난해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곧 열리는 골든글로브 시상식 3개 부문(감독상·각본상·남우조연상)에 후보에 오를 만큼 평단의 찬사를 얻었다.

오스틴 라이트 작가가 1993년 펴낸 소설 '토니와 수잔'을 각색했다. 친분 있는 패션 저널리스트 팀 블랭크스의 추천으로 책을 읽은 톰 포드는 "소설 속 소설인 부분이 신선하고 독창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읽자마자 좋은 영화로 완성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영화 제목은 에드워드가 수잔에겐 준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를 그대로 옮겨 왔다. '녹터널 애니멀스'(야행성 동물)는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수잔이 소설을 자기 이야기인 듯 몰입하며 읽은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자신이 주인공인 폭력적이고 슬픈 소설을 받은 수잔, 두 남녀의 사랑 뒤에 감춰진 진심과 복수를 담은 감성 스릴러이다.ⓒUPI

수잔의 현재, 과거, 그리고 소설 등 세 부분을 촘촘히 엮어 보여주는 게 이 영화의 미덕. 소설 속 사건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펼쳐지면서 관객의 심장을 꽉 붙잡는다. 감독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영화 속 소설을 수잔과 에드워드의 관계에 빗대어 보여주는 탁월한 솜씨를 부린다.

소설은 수잔과 에드워드의 심리와 관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소설 속 토니(제이크 질렌할)는 휴가를 즐기기 위해 텍사스로 향하던 중 강도의 공격을 받는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납치되고 혼자 남겨진 토니는 다음 날 경찰과 바비(마이클 섀넌)와 범인들을 찾다던 중 강간당한 채 나체로 죽어 있는 아내와 딸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토니는 위험한 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다 바비의 도움을 받고 범인들을 찾아낸다. 영화는 소설 속 토니와 에드워드를 동일시하며 인간이 상처를 받고 극복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부유한 집안의 수잔과 작가 지망생이었던 에드워드는 우연히 재회해 사랑하지만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지 못한다. 수잔은 가난한 에드워드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엄마에게 에드워드는 나약한 게 아니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상상 이상이다. 부르주아 삶을 좇는 엄마와 다르다고 외치는 수잔도 결국 엄마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인 셈이다.

그런 수잔에게 에드워드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리지 않아. 지키려고 하지. 그런 사랑은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수잔은 에드워드에게 "나약하다"며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에드워드를 잔인하게 버린다.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토니의 상처와 자책감은 현실 속 에드워드가 수잔에게서 받은 상처와 같다. 토니가 나약한 자신을 자책하며 바비의 도움을 받아 잔인한 복수를 결심하는 부분은 에드워드가 자신을 버린 수잔에게 소설을 건네며 하는 복수를 의미한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헤어진 연인 에드워드로부터 자신이 주인공인 폭력적이고 슬픈 소설을 받은 수잔, 두 남녀의 사랑 뒤에 감춰진 진심과 복수를 담은 감성 스릴러이다.ⓒUPI

이후 바비가 총을 못 쏘는 토니에게 총을 쥐여주며 범인에게 총을 쏘는 행위는 에드워드가 나약함을 딛고 믿음과 자신감을 회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마지막 엔딩 장면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소설을 통해 에드워드를 이해한 수잔은 재회를 꿈꾸지만 에드워드는 복수의 상대 앞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고 영리하게 복수를 끝낸다. 스크린에 가득 찬 수잔의 씁쓸한 표정이 압권. 부와 명예, 야망만 좇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진짜 행복을 잃지 말라고 영화는 일깨워준다.

톰 포드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리는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라며 "버리는 것에 익숙해 인간관계 또한 쉽게 버릴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작품은 충성심, 헌신, 그리고 사랑을 이야기한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돈을 많이 벌면 모든 게 아름답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할리우드의 영화를 보고, 믿고 성장했다는 감독은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해주는 건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했다.

매끈한 연출력뿐만 아니라 에이미 아담스, 제이크 질렌할 등 배우들의 연기에 엄지가 올라간다.

보고 나서도 여운이 깊게 남는다. 무수히 많은 인간관계를 통해서 내가 받은 상처, 그리고 내가 준 상처에 대해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다. 피비린내 나지 않는, 똑똑하고 우아한 복수극을 원하는 관객들을 위해.

1월 11일 개봉. 116분.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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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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