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일을 보면 못 참고 화를 내요. 어떤 화두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도 하고요. 내 안에 정의로움이 살아있다고 느낍니다."
전작 '가려진 시간'에서 꽃미모를 뽐내며 판타지 로맨스에 도전한 강동원(35)이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로 돌아왔다.
그가 출연한 '마스터'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 등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감시자들'(2013)로 550만명을 모은 만든 조의석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은 사법고시 출신 엘리트 경찰이다. 우리가 모두 꿈꾸지만, 현실에서 보기 드문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로 '정의는 있다'고 믿으며 상부의 말도 무시한 채 '나쁜 놈'들을 잡아들이는 올곧은 인물이다.
김재명에 대한 배경 설명은 없다. 오로지 사회 정의를 위해 '나쁜 놈' 진현필(이병헌)을 잡아들이려고 고군분투한다. 어쩌면 단편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어려운 역할이다.
영화 '마스터'에 출연한 강동원은 "쿨하고 정의감 넘치는 캐릭터에 끌렸다"고 전했다.ⓒCJ엔터테인먼트
강동원은 데뷔 후 처음으로 형사 캐릭터에 도전했다. 그간 한국 영화에서 선보인 거칠고, 투박한 형사를 벗어나 강동원표 '고운 형사'를 만들어냈다.
14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김재명은 신선한 형사 캐릭터"라며 "이렇게 쿨한 형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력에 끌렸다"고 밝혔다.
단조로운 캐릭터로 극을 이끌어야 하는 숙제도 안고 갔다. "까다로운 캐릭터라 용기가 필요했죠. 다른 사람이 이것저것 할 때 아무것도 안 해서 답답했습니다."
형사 캐릭터를 위해 딱딱한 대사를 해야 했다. 강동원은 "극을 끌고 가는 인물이자 메시지를 던지는 캐릭터"라며 "정의감 넘치는 대사는 최대한 오글거리지 않게, 가볍게 던졌다"고 말했다.
"제가 말이 느려서 대사를 빨리하는 게 어려웠죠. 입은 빨리 움직였는데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선택과 집중을 하자고 다짐했고 캐릭터 자체에 더 집중하려고 했어요. 들리는 부분은 나중에 수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또 "왜 저렇게 진현필을 잡으려고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경찰이니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캐릭터의 선을 명확하게 잡아 듬직하고 쿨한 경찰을 묘사했다"고 강조했다. "경찰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나요? 왜 우리 사회엔 이런 경찰, 정의로운 인물은 없을까 싶어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죠. 만약 김재명이 개인적인 복수 때문에 진현필을 쫓으려 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를 것 같았어요. 정상인데 비정상인 듯한 사람, 미친놈 같은 사람이 필요했죠."
영화 '마스터'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은 "단조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며 "대사를 오글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 신경 썼다"고 말했다.ⓒCJ엔터테인먼트
김재명은 "이 대한민국에 저 같은 미친놈도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외친다. 나쁜놈을 잡아들이는 게 당연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에선 이런 정의감 넘치는 경찰을 보기 힘들다.
김재명과 배우의 닮은 점을 묻자 "정의로운 부분이 닮았다"며 "신문을 읽을 때마다 화가 난다"고 웃었다. "저랑 친한 사람들은 제 성격을 잘 알죠. 엄청나게 비판하는 사람이거든요. 친한 사람들끼리는 욕도 하고 그래요. 하하."
정의감에 불타는 강동원은 '자기 검열'도 철저히 한다고 했다.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점검해요. 나쁘게 살긴 싫거든요."
'마스터'의 상영시간은 143분으로 비교적 길다. 강동원은 "길긴 하다"고 웃은 뒤 "후반 작업을 빠듯하게 해서 감독님이 아쉬워했다"고 털어놨다.
형사로 분하기 위해 10kg을 늘렸으나 필리핀 촬영 때 탈수 증상이 와서 3kg이 빠졌다. 필리핀에서는 유리가 목에 박히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 "카체이싱 하고 피도 흘리고 응급실에 실려 가고. 허허. 고생 많이 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위스키 한잔 하면서 촬영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부상 때문에 술을 못 마셔서 아쉬웠지요."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필리핀 촬영에 이어 지하터널 액션신을 꼽았다. 음향 탓에 환풍구를 막고 찍었는데 습하고 더운 기운이 몰려왔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찍어야 되나' 싶어 제작진에 얘기했단다. 이후부터는 비교적 나아진 환경 속에 촬영했다고.
영화 '마스터'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은 "내 안에 정의로움이 있다"며 "이 부분은 '마스터' 김재명과 비슷하다"고 전했다.ⓒCJ엔터테인먼트
작품에서 매번 새로운 옷을 입은 그는 "'마스터'에서 그간 고수해온 호흡과 리듬을 바꿔 연기해서 신선했다"며 "내가 준비한 만큼 몸이 잘 안 따라준 건 아쉬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영화엔 '나쁜 놈'들이 많이 나온다. 사기꾼 진현필을 비롯해 그와 연결된 사람까지. 강동원이 꼽은 가장 나쁜 놈은 누구일까. "다 나쁜 놈들이죠. 진현필 위에 또 나쁜 사람들이 있잖아요. 김재명은 그들까지 다 잡아야 했습니다. 누가 더 나쁘다고 따지기가 어렵습니다. 다 용납 안 되거든요."
'마스터'는 연말에 가볍게 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 등 톱스타들이 나오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통쾌한 메시지도 준다. 배우도 이 부분에 끌렸단다. 가볍게 건드리면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게 좋았다고. 잔인하거나 자극적이었으면 선택조차 안 했을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 감독과 처음 작업한 강동원은 "'감시자들'을 재밌게 봤다"며 "시나리오 구멍을 메우려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병헌, 김우빈과도 첫 호흡이다. 그는 "병헌 선배야 말할 것 없는 선배이고 우빈이는 어린 친구인데 배울 부분이 많다"면서 "특히 우빈이는 배우로서 타고난 게 있고 나보다 성숙한 듯하다. 잘하는 후배들을 보면 자극받는다"고 했다.
영화 '마스터'에 출연한 배우 강동원은 "데뷔 초부터 해외 진출을 꿈꿨다"며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털어놨다.ⓒCJ엔터테인먼트
'나쁜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는 결말은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한 부분이다.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이기 때문. 강동원은 "결말은 '마스터'의 장점"이라며 "30% 정도는 만족 못 할 수도 있다. 영화니깐 그런 판타지적인 장면을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캐릭터보다 시나리오를 먼저 본다는 그는 "어쩌다 보니 도전을 자주 하는 듯하다"며 "도전하는 건 재미있을 뿐이지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모델 출신인 그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들었다. 20대 때 부당한 일을 보면 무조건 싸웠다는 이 배우는 "지금은 화를 가라앉히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서 실행에 옮긴다"고 했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운 게 많아요. 지금 20대 친구들이 부당한 일을 얘기할 때 저는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라'고 해요. 제가 20대 때 이런 말을 한 선배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 후배들이 부당한 부분을 바르게 바꾸는 부분도 필요하죠."
20대 청춘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제가 20대 때 '젊음이 옳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는 것 같아요. 건강했으면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건 20대 자체의 문제가 아닌 교육 시스템이 문제예요. 10대 때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서 그렇죠. 전 나이 들어서 나쁜 아저씨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여전히 미소년인 듯한 그의 입에서 나온 '아저씨'라는 단어는 다소 어색하게 들렸다. 배우는 '가려진 시간' 촬영 당시 스무 살이나 어린 신은수에게 '아재 개그'를 쳤다는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배우 강동원은 "'마스터'는 본격 힐링 영화"라고 강조했다.ⓒCJ엔터테인먼트
올해 '검사외전', '가려진 시간', '마스터' 등 연달아 세 작품을 선보인 그는 "쉬니깐 작품 외적인 일이 생기더라. 차라리 촬영할 때가 즐겁고 행복하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홍보 일정이 힘들다고 툴툴거렸다.
"요샌 해야 할 게 너무 많더라고요. 허허. 올해 세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 1년의 반을 홍보하는 데 보낸 것 같아요. 한국 영화가 예산이 적다 보니 배우 의존도가 좀 높아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거죠. '세일즈'(영화 홍보)를 시키면서 '커리어'(배우 경력)를 갉어먹는 부분도 있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홍보 일이 계속 늘어나면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생각이 확고한 그는 "한국 시장은 한계가 있는 게 아쉽다"며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뷔 초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강동원은 "오픈 마인드로 오디션을 보고 있다"며 "병헌 선배처럼 배우가 먼저 진출해야 한국 영화의 시장이 확대된다"고 했다.
"한국 영화 현장이 유난히 열악해요. 중국 현장은 엄청 좋거든요. 드라마 출연을 꺼리는 부분도 사전 제작이 아닌 시스템이 많기 때문이죠. 드라마 출연은 사전 제작 작품만 할 거예요. 근데 드라마를 찍으면서 바로 내보내는 환경이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러는 거죠? 영화처럼 다 만들어 놓고 방송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스터'의 관전 포인트에 대해선 "본격 힐링 영화"라며 "현실에 지치고 화가 난 마음을 영화를 통해 해소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강동원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친한 사람들과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생각을 드러내는데, 글쎄요. 모르는 사람과 말을 많이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SNS가 소통의 창구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