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음악감독이 참여한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이 한전아트센터에서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 데일리안 이한철 기자
"마치 젊은 날 우리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어요."
박기영 음악감독(51)은 뮤지컬 '그 여름, 동물원' 배우들의 연습 모습을 떠올리며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그 아픔마저도 이제는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 여름, 동물원'은 고(故) 김광석과 그룹 동물원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동물원과 김광석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음악 뒤편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삶과 고뇌를 담은 만큼, 동물원 멤버인 박 감독의 직접 참여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작품은 김연미 작가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김광석을 '그 남자'로 설정하고 동물원의 시각으로 그들의 삶과 음악을 다룬 김 작가의 대본은 큰 주목을 받았고, 결국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대관료 지원 사업 대상작으로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작품을 준비 중이던) 작가와 인터뷰를 많이 했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됐어요. 작가가 기본적인 스토리의 틀을 잡아놓은 상황에서 실제와 괴리감이 큰 부분은 수정을 해나갔죠."
박 감독이 직접 참여한 탓인지, 작품 속에 그려진 멤버들의 모습도 디테일하다. 80년대 향수가 물씬 묻어나는 연습실 풍경이나 '카세트테이프'나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등 80~90년대를 대표하는 시대 아이콘의 등장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김광석을 연기한 최승열은 너무나 닮은 음색과 호소력 짙은 가창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또 박 감독을 연기한 배우 방재호는 박 감독과 말투나 외모가 닮아 있어 웃음을 준다. 박 감독도 "배우가 연기를 하면 자신의 캐릭터가 나오기 마련인데도 사람들이 너무 닮았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이처럼 작품의 디테일이 살아날 수 있었던 건 역시 박 감독의 존재 덕분이었을 것이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작품은 그 어떤 작품보다 동물원, 그리고 김광석 음악의 색채가 고스란히 담겨 더 큰 감동을 자아낸다.
"기존 김광석 뮤지컬 같은 경우는 김광석의 느낌이나 색채가 느껴지기보다는 스토리나 작품의 정서 맞춰져서 많이 편곡이 됐었죠. 하지만 '그 여름, 동물원'은 우리가 우리 음악을 연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오리지널리티를 간직하려고 했어요. 80~90년대의 음악, 지금 들으면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는 사운드에 약간 채색해주는 정도였죠."
음악만큼이나 다이내믹한 그들의 삶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명문대 출신인 동물원 멤버들은 학업과 취업, 그리고 음악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실제로 이 때문에 3년가량 활동을 쉬어야 했던 시기도 있었다.
김광석이 팀을 떠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 여름, 동물원'은 이런 동물원의 고민과 아픔을 미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려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특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이들이 어쩌면 다시 만나 함께 음악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다. '그 여름, 동물원'에도 이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1995년 12월 무렵이었죠. 동물원이 발표한 '널 사랑하겠어'가 크게 히트하면서 활동이 많아지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광석이 형은 1000회 공연으로 한창 주가가 높을 때였죠. 과거와 달리 안정된 상황이었기에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박기영 음악감독은 "김광석은 노래와 기타, 두 단어로 기억된다"고 말했다. ⓒ 데일리안 이한철 기자
하지만 김광석은 1996년 1월 6일 모두를 뒤로 하고 숨을 거뒀다. 이제는 그가 남긴 음반 4장이 그의 삶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저희가 광석이형 49재 때 첫 추모공연을 했어요. 그때는 너무 많이 울어서 공연이 잘 안 될 정도였죠. 하지만 그런 형식의 공연이 거듭되면서 감정도 추스를 수 있었고, 지금은 오히려 즐거운 분위기에서 공연을 하고 있죠."
박 감독은 '그 여름, 동물원'을 처음 만들 때도 아픈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으면서도 "공연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김광석을 노래와 기타, 두 단어로 정의 했다. "(김)창기 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다른 동물원 멤버들은 전적으로 음악과 매칭이 된 건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광석이 형을 보면 '평생 음악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광석은 음악을 사랑한 만큼 후배들에 대한 사랑도 각별했다. 박 감독은 "아마 살아 있었다면 아래로 꽤 굵직한 계보 같은 게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후배들을 워낙 많이 챙겼어요. 잘 한다는 후배가 있으면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자기 공연에 부르기도 했죠. 많은 실력 있는 후배들이 광석이 형을 따랐을 겁니다."
작업에 함께 하진 않았지만, 동물원 멤버들의 작품 사랑도 남달랐다. 박 감독은 이들이 자주 공연장을 찾아 고맙다고 전했다.
"창기 형은 공연 보면서 눈물도 훔치고 그러더군요. '작가님한테 나를 더 못된 인간으로 그려야지 장사가 된다'고 조언도 하고요. 유준열 씨 같은 경우는 '재밌게 봤는데, 내가 그렇게 변태였니?'라고 따져 묻기도 했죠. 박경찬 씨는 초연 때 회사 동료들을 그룹으로 데리고 와서 여러 번 보고 갔어요."
2018년 30주년을 맞이하는 동물원의 시계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현재 3인조 동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 감독은 코앞으로 다가온 30주년엔 김창기 등 옛 멤버들과 뜻 깊은 이벤트를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12월 발표되는 3곡의 신곡 소식도 함께 전했다.
"상업적인 성공은 사실 기대하지 않아요. 불가능하기도 하고. 하지만 30년 가까이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앨범으로서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 여름, 동물원'은 20주기를 맞은 김광석의 음악을, 30주년을 바라보는 동물원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볼만한 작품이다. 그 친구(김광석) 역에 홍경민과 최승열, 창기 역에 이승열과 임진웅, 그리고 김준호 방재호 유제윤 최성욱 홍종화 최신권 등이 출연하며 내년 1월 22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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