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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우 감독 "'판도라', 포기와 타협은 없었다"


입력 2016.12.02 09:01 수정 2016.12.07 10:12        부수정 기자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로 화제

4년 제작 끝 개봉…"뿌듯하고 대견"

영화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게 돼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밝혔다.ⓒ뉴 영화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게 돼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하다"고 밝혔다.ⓒ뉴

"다 떠나서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 영화가 개봉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하고 대견합니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47)은 홀가분해 보였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인 '판도라'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작 기간만 총 4년인 이 영화는 민감한 소재와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안일한 모습을 담은 탓에 외압 의혹에 시달렸다.

최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판도라'는 원전 폭발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한반도를 스크린에 담아내 호평을 얻었다. 원전 문제를 끄집어낸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영화라는 평이 잇따랐다.

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박 감독은 "4년 끝에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며 "배우, 스태프, 관계자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웃었다.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소재를 스크린에 담은 박 감독은 영화 촬영 전 배우, 제작진과 약속한 게 있다고 했다. '비껴가거나, 피해가거나,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말자'고. 굳은 약속이 깨지지 않은 셈이다.

외압에 시달렸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그는 "엄밀히 따지면 외압은 없었다"며 "외압이 있었다면 누군가의 입맛에 맞게 시나리오를 바꾸거나, 개봉관을 잡지 못했을 텐데 그런 건 없다. 다만 크고 작은 난관은 있었다"고 말을 아꼈다.

투자, 배우, 캐스팅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박 감독은 흔쾌히 출연을 결정한 배우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발전소 직원 재혁 역을 맡은 김남길에게는 특별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시나리오를 주기도 전에 김남길 씨가 읽고 있었어요. 직접 만났는데 원전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더라고요. 남길 씨가 그간 고수해온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편안한 연기를 하길 바랐어요. 사석에서 본 인간 김남길은 그런 사람이었거든요."

영화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시국에 편승해서 기획한 건 아니다"며 "영화를 통해 원전의 심각성,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전했다.ⓒ뉴 영화 '판도라'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시국에 편승해서 기획한 건 아니다"며 "영화를 통해 원전의 심각성, 위험성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전했다.ⓒ뉴

그러면서 그는 "티켓 파워가 엄청난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 배우 덕에 흥행했다는 얘길 듣기 싫었다"며 "이야기와 영화의 힘만으로 잘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무능한 대통령, 정부 관계자들이 나온다. 이들이 낯설지 않은 건 그간 우리가 봐왔던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혼란스러운 현 시국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 시나리오를 쓴 박 감독은 "시류에 편승해서 기획한 것처럼 보이는 게 안타깝다"며 "4년 동안 피땀을 흘려 만든 결실이 현실에 묻히는 듯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판도라'는 원전의 심각성,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지, 대통령이나 정부를 욕하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다"고 못 박았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대사는 걸러내기도 했다. 지금 상황이 떠오르는 대사가 나오면 관객들이 극 몰입에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우유부단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막강한 권력을 쥔 총리에게 "도대체 이 나라는 누가 이끌어 갑니까?"라고 외친 부분, 재난 상황실에서 총리가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은 판단 능력을 상실했습니다"라고 한 부분 등을 편집했다.

통째로 집한 장면도 있다.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날아와 재혁과 구조팀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재혁은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한다. "쇼하고 있네. 이게 나라입니까. 죽어서도 지켜볼 겁니다"라고. 대다수 사람이 외치고 싶었을 대사라고 감독은 말했다.

"애착을 갖고 쓴 대사예요. 최상층에 있는 결정권자와 가장 밑에 있는 서민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지점이거든요. 근데 대통령이 원전이 폭발한 현장에 온다는 게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오해를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드러냈어요. 섭섭하게도."

대통령 순방을 TV로 지켜보던 재혁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모습도 잘라냈다. 박 감독은 "극 초반부터 재혁이의 비판적인 시선이 보여 부담스러웠다"며 "시작은 평범하게 연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인 '판도라'(감독 박정우)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국내 최초 원전 블록버스터인 '판도라'(감독 박정우)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뉴

4년 전 박 감독이 생각한 대한민국의 민낯은 2016년에 까발려졌다. 예상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비선 실세까지는 예상 못 했지만 청와대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을 거라고는 짐작했어요. 청와대 사람들을 똑똑하게 표현한 이유는 너무나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걸 표현하고 싶어서였죠. 아무리 똑똑하고, 경험이 많아도 재난이 터지면 속수무책인 상황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감독으로서 대통령을 묘사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앞서 박 감독은 "대통령을 한국 영화에서 표현하는 건 창작자로서 부담스럽다. 멋있게 만들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만들면 짜증 난다"고 솔직하게 말한 바 있다.

그는 "'판도라' 속 대통령은 성격도 바르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만 이런 장점을 발휘하지 못해 권력의 싸움에서 멀어진 대통령"이라며 "재난을 통해 스스로를 되찾고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솔직한 대통령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대통령으로 변모해 갔으면 하는 바람을 넣었다는 얘기다.

영화가 보여준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 아수라장이 된 대한민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로 다가온다. 박 감독은 "실제 상황보다 훨씬 순화해서 표현했다"면서 "원전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충격과 공포를 신경 썼다. 방사능 수치에 따라 변하는 신체를 영화적으로 묘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전했다.

신인 김주현을 여주인공으로 쓴 건 모험이었다. 박 감독은 "인지도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면 재난 현장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며 "차라리 참신한 배우를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김주현 씨가 인성도 괜찮았고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목숨 걸 각오로'로 하라고 했어요. 주현 씨가 예습, 복습 철저히 하면서 열심히 준비했어요. 신인이 대작 재난 영화에서 연기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을 텐데 잘해냈습니다. 시사 끝나고 관계자들에게 제가 가장 먼저 한 질문이 '여주인공 어떠냐'였어요. 반응이 좋아서 안심했습니다."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를 만들 때 포기와 타협은 없었다"고 강조했다.ⓒ뉴 박정우 감독은 "'판도라'를 만들 때 포기와 타협은 없었다"고 강조했다.ⓒ뉴

김남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판도라' 촬영장이 재난 그 자체였다"고 했다. 박 감독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다 처음 겪는, 정신없는 상황이라서 현장에서 소리지르며 촬영했다"며 "배우, 스태프가 단단히 뭉쳐 사고 없이 촬영을 잘 끝냈다"고 웃었다.

박 감독은 살인 기생충이란 독특한 소재를 다룬 '연가시'(2012)로 450만명을 모았다. 당시 40억 규모였는데 이번 '판도라'는 155억 규모다. '판도라'는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190여개국에 공개된다.

"소재가 가진 파급력, 재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을 감안할 때 안정적인 수준을 확보할 것 같아요. 사실 전 흥행을 계산하고 영화를 만들지 않습니다. 근데 '판도라'는 규모가 크니까요. 흥행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도 넷플릭스와의 계약 체결 덕에 손익 분기점이 낮아진 건 다행입니다. 시국이 경쟁 상대죠 뭐. 영화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겠어요."

두 편의 재난영화를 선보인 그에게 또 한 번 재난영화에 도전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최악의 재난을 다룬 영화는 '판도라'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재난 영화를 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4년 동안 너무 힘들게 일해서 이제는 좀 쉬고 싶다. 다시 현장이 그리울 때 현실이 바탕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최근 가장 행복한 기억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영화감독다운 대답을 들려줬다. "현장에서 영화 만드는 게 행복하죠. 좋아하는 영화 일 하면서 가족들을 지키는 것도 행복이고."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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