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자신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지는 언론시사회와 VIP시사회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면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덕혜옹주' 속 손예진은 단순히 연기를 잘해낸 것이 아니라 덕혜옹주의 삶을 고스란히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기가 찍어놓고 자기가 운다고' 하시더라고요. 자막 올라갈 때 김윤아 씨의 음악이 너무 슬펐어요. 특히 스크린으로 보는 건 마지막일 것 같아서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더라고요.“
벌써부터 인생 연기, 인생 캐릭터라는 말이 나온다. 개봉 전에 비해 개봉 후 반응이 더욱 뜨겁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래서인지 손예진의 미소 속에는 안도감과 함께 모처럼 찾은 여유로움이 서려있었다.
손예진은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호평이 많은 경우는 처음"이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특히 전날 있었던 VIP 시사회에서 동료 배우들의 반응에 대한 뿌듯한 마음 때문인지 연일 이어지는 홍보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늘 영화가 개봉할 땐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은 편인데, 이번 영화는 관객들이 많이 들었으면 하는 단순한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간절해지는 마음속엔 여러 생각들이 교차해요."
손예진에게 '덕혜옹주와의 만남'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덕혜옹주와의 만남, 제겐 행운이었죠"
손예진과 덕혜옹주의 첫 인연은 2009년 출간된 소설 '덕혜옹주'였다. 그 속엔 전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의 옹주가 있었다. '옹주'라는 의미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이렇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죠. 이 작품이 영화로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여배우로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내가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죠."
사실 덕혜옹주의 삶은 영화보다 더 비극적이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망명 작전의 비중을 키우긴 했지만, 이야기 하나 하나에 덕혜옹주의 감정과 정신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만큼 이 작품의 성패는 손예진의 역량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덕혜옹주가 실존인물이라는 점은 손예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손예진에게도 실존인물 연기는 큰 부담이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출연을 결심한 손예진은 권비영 작가의 인터뷰 자료부터 덕혜옹주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을 모조리 섭렵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진들을 찾아보며 덕혜옹주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사진 속 표정, 손 모양을 보며 연기의 포인트를 찾아갔다.
"어떻게 하면 진실한 연기로 덕혜옹주의 삶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지점에서 책임감이 컸어요. 세상 압박이 모든 짐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았죠. 잘 못 해내면 스스로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더욱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이 큰 작품이었다. 특히 실존인물이 주는 그 무게감을 경험하고 견뎌낸 것은 배우 인생에 다시 만나기 힘든 값진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손예진은 "모든 작품이 다 소중했지만 '덕혜옹주'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여배우가 한 여자의 일생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 덕혜옹주를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손예진은 '덕혜옹주'를 통해 허진호 감독과 11년 만에 만났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노력하고 고민한 만큼 관객들도 감동을 느껴요"
허진호 감독과는 2005년 영화 '외출'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외출'은 손예진이 배우로서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게 한 소중한 작품이었다. 손예진은 "허진호 감독은 많은 장을 열어주신 분"이라며 고마워했다.
"추억이 있는 반가운 사람이죠. 힘든 시간들을 의지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가족 같은 끈끈함이 생겼어요."
특히 허진호 감독 특유의 열린 자세 덕분에 '틀에 박힌 연기'를 깨고 창의적인 연기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0년 전과 차이에 대해 손예진은 "그때는 무조건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만 익숙하고 단련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기적으로 성숙해가는 단계인거 같다"고 말했다.
"노력하고 시간을 할애하고 고민하면 관객들은 감동을 느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통스러운 순간을 이겨내고 감내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어렸을 때는 연기만 했지만, 지금은 상대 배우나 스태프도 보이기 시작해요. 그들의 마음들이 다 느껴지니까 더 애틋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죠."
벌써부터 주요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손예진은 손사래를 치면서도 상이 주는 의미를 전하며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동료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
"상을 받을 땐 쓰담쓰담 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상을 받게 되면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이 함께 기쁜 거니까 의미가 있죠."
손예진의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손예진의 연기 인생은 '덕혜옹주' 이전과 '덕혜옹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배우가 귀한 한국 영화에도 큰 소득이다. 손예진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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