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이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로 관객들을 만난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양아치 역을 해도 격조는 있죠"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김명민(44)은 어느 작품이든, 어떤 역할이든, 자신의 몫을 200% 해내는 배우다. 특히 '사'자 전문 배우란 나올 정도로 품격 있는 외모와 목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카리스마는 그의 전매특허다.
그런데 그가 요즘 달라지고 있다. 연기력이 떨어졌다거나 카리스마가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친근한 아저씨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귀에 착착 감기는 중저음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특유의 근엄하고 날카로운 눈빛보다 장난기 섞인 말투와 밝은 미소가 그의 새로운 매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요즘 유행하는 '아재파탈(아재+팜므파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서 만난 김명민은 '요즘 가벼워진 것 같다'는 지적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곧 대중성을 의식한 행보가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아무리 가벼워진 해도, 가벼워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죠. 김명민이라는 사람이 하는 양아치나 건달이라면 격조가 있을 겁니다."
김명민은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이하 특별수사)'에서 변호사가 아닌 사무실 브로커로 변신을 꾀한다. 그의 말대로 묘하게 얄미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필재 캐릭터에는 그만이 내뿜을 수 있는 '격조'가 살아 있다. 이는 그의 한계일수도, 장점일 수도 있다.
확실히 달라진 것은 한층 밝아진 캐릭터 탓인지,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과 농담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전엔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는 지적에는 "배우는 기본적으로 정신병을 앓는 사람들"이라거나 "무당에 가깝다"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응수했다.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다르네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사실 작품 속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같이 그렇게 가는 측면이 있어요. 이번 역할처럼 날 것의 냄새가 나고 자아도취에 빠진 역할은 목욕탕으로 치면 종아리 정도만 담근 경우라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아요."
김명민은 완성된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과정에 충실할 뿐, 결과를 쫓지 않는다"
과거 '베토벤 바이러스'나 '불멸의 이순신' 같은 작품에서 보여준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호하는 팬들이라면 조금은 아쉬울 법도 하다. 게다가 자칫 너무 대중적인 이미지로 변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하지만 김명민은 "그동안 상업적이지 않은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며 "대중적인 인기나 배우의 이미지는 의도치 않게 형성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중들의 사랑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때 찾아오기도 하고, 얻으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저 멀리 도망가기도 하는 거죠. 한 번도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서 무언가를 해보려 하진 않았어요."
'특별수사'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 시나리오를 읽고 이 작품 참여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완성본과 같은 분위기의 작품은 아니었다. 좀 더 메시지에 치중한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기에 "사실 흥행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성격도 크게 달라졌다. 원제였던 '감옥에서 온 편지'는 '특별수사'로 바뀌었다. 제목 자체가 주는 특유의 무거움도 사라진 만큼, 실제로 작품 자체도 매우 재밌고 명쾌하고 스피드한 전개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김명민은 "편집의 묘미에 놀랐다"며 영화 '특별수사'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영화 보고 상호 형이랑 거하게 낮술 한잔 했죠"
그렇게 달라진 결과물에 대해선 100% 만족이다. 김명민은 "편집의 묘미에 놀랐다. 이 정도로 잘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기술 시사회에서 처음 보기 전에 (김)상호 형이랑 저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갑시다'라고.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날 오후 6시까지 낮술을 마셨어요."
촬영 과정이 힘겨웠기에 보람도 컸다. 액션이 주가 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유독 정성을 들인 장면들이 많았다. 특히 수차례에 걸친 목졸림 연기나, 목욕탕 격투신 등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즐비하다.
김명민은 "죽을 뻔했던 순간들만 생각난다"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렸다.
"정말로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였거든요. 청부살인업자가 제 목을 밧줄로 당기는 장면에서 숨을 쉬지 못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 했어요."
김명민에게 김영애의 존재는 배우로서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진짜 베테랑 선수 만났을 때의 짜릿함
대선배 김영애와의 연기 호흡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어느덧 20년차 베테랑 배우, 더구나 '연기 본좌'라는 수식어까지 따라 붙는 배우지만, 45년차 '대배우' 김영애가 내뿜는 아우라는 상상 이상이었다.
김명민은 "진짜 베테랑 선수를 만났을 때의 그 짜릿함. 공기가 느껴지는 게 달랐다"며 "그런 공기를 느끼면서 연기하는 건 행복"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원래 성격은 굉장히 소녀 같이 맑은 분이세요. 그런 분이 슛 들어가면 눈빛부터 카랑카랑한 목소리까지, 촬영된 저택이 사실 굉장히 큰 공간인데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땐 소름이 끼칠 정도였어요."
김명민은 배우의 길을 '신내림을 받는 것'과 비교하면서까지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김영애와 같은 대배우가 되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도 '특별수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체험했다. 다시 한 번 고삐를 죄는 계기가 된 셈이다.
"배우는 타고는 게 90%, 나머지 10%가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10%의 노력에 따라 90%가 드러날 수도 있거든요."
무엇보다 한 가지 이미지로 배우의 성격을 규정지으려는 대중들의 심리를 돌파하는 것이 김명민에겐 가장 큰 숙제다.
"대중들에게 많이 각인될수록 그 탈을 벗는 것도 어렵죠. 그것은 배우의 몫이라 생각해요. 적어도 작품이 끝날 때만큼은 앞선 작품의 이미지가 겹쳐 보이지 않게끔 해야죠. 그런 자신감은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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