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를 상대로 마침내 첫 승을 거뒀다.
이세돌 9단은 13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4국에서 180수만에 알파고로부터 항복을 얻어냈다.
앞서 1~3국에서 내리 패했던 이세돌 9단은 이번 매치 패배가 확정됐지만,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알파고를 상대로 감격적인 첫 승을 따내는 불굴의 의지를 선보였다. 이제 이세돌 9단은 하루 휴식을 취한 뒤 오는 15일 알파고와 마지막 제5국을 치른다.
지난 세 차례의 대국서 알파고가 선보였던 알고리즘은 인류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슈퍼컴퓨터 1202대가 연결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인간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수를 선보였고, 전체적인 판을 읽는 눈도 내로라하는 프로 바둑 기사를 훨씬 앞서갔다.
대국 상대였던 이세돌 9단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초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이번 맞대결서 5전 전승을 자신한 바 있다. 이미 컴퓨터에 지배를 당한 체스와 달리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한 바둑에서는 제 아무리 슈퍼컴퓨터라 할지라도 인간의 감성을 뛰어넘기가 무리라는 평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인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수읽기가 알파고로부터 나왔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의 1국에서부터 판이 꼬였다. 특히 알파고의 백 102수가 우변 흑집에 침투되자 이세돌 9단은 허탈한 웃음과 동시에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이른 바 알파고가 결정적으로 내민 ‘신의 한 수’였다.
2국에서는 변칙적인 수가 난무했다. 도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알파고의 실수들이 이어지며 이세돌 9단이 승기를 잡는 듯 했다. 하지만 이는 알파고가 치밀하게 파놓은 함정이었다. 이세돌 9단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사지로 빠져들고 말았다.
벼랑 끝에 몰린 이세돌 9단은 소극적이었던 앞선 대국과 달리 제3국에서 본연의 스타일을 들고 나왔다. 이세돌표 거친 몸싸움이었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프로기사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행마로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은 대국을 관람한 뒤 “이미 15수 후 기회가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미 확정된 패배. 그러자 이세돌 9단의 심정도 초연해졌고, 보는 눈도 훨씬 넓어졌다. 이세돌 9단은 이번 4국에서 양쪽 두 귀를 점령하고 좌변과 우변에도 집을 마련하는 실리작전을 전개했다. 상변에서 중앙까지 거대한 집을 만든 알파고는 이세돌 9단을 가운데로 유인했다.
이에 말려들 이세돌 9단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알파고의 집 안 쪽에서 수를 내려고 버티는 사이, 우변에서 알파고의 이해할 수 없는 수가 남발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지난 2국에서처럼 실수를 가장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세돌 9단은 침착하게 78번째 수를 중앙 흑 한 칸 사이에 끼웠다. 묘수였다. 이는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의 SNS 발언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허사비스는 대국이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이세돌 9단이 79수를 놓자 승률이 70%로 떨어졌고, 87수 때에는 50% 이하로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세돌 9단의 이번 4국 승리는 상당한 의의를 가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단 한 차례도 승리하지 못할 것 같았던 맞대결에서 값진 승리를 거둬, 구글이 내세운 AI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남과 동시에 감성을 가진 인간의 능력이 무한하다는 점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이는 구글이 이세돌 9단을 상대로 택한 의도하도 궤를 함께 한다. 바둑의 역사는 대략 4000년이며 기원은 중국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현재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는 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이다.
반면, 이세돌 9단의 현재 랭킹은 4위이며, 기량 역시 전성기를 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은 커제가 아닌 이세돌 9단을 선택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이세돌 9단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바둑판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기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말 그대로 희로애락이 느껴진다는 셈이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돌부처’ 이창호와 단단함이 무기인 커제와 전혀 다른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구글은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이세돌 9단을 통해 인간적인 프로그램 시험하려 했다.
초당 10만 개의 수를 계산한 알파고는 강했다. 하지만 승패 여부를 이세돌 9단의 바둑은 온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바둑에 대한 붐이 일고 있으며, 대국 도중 그가 선보이는 표정 하나하나에 시청자들도 공감을 하고 있다. 4시간이 넘는 대국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이세돌 9단에 박수가 쏟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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