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와이번스 김용희 감독의 별명은 ‘그라운드의 신사’다. 마초 냄새를 물씬 풍기는 거친 수컷들이 즐비한 승부의 세계에서 김 감독은 항상 온화한 표정과 예의바른 행동으로 학자나 선비 같은 인상을 주는 야구인이다.
하지만 신사 이미지가 ‘야구인’ 김용희에게 항상 득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 감독은 오랜 경력에 비하여 지도자로서는 불운했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김용희 감독은 90년대 한국야구에 ‘자율야구’ 열풍을 불러온 1세대 감독으로 꼽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승부사로서의 독기가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야구계에서는 “감독이 사람 좋다는 소리가 나오면 그 팀 성적은 꼴찌”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승부에 있어서는 비정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철두철미해야하고, 과정보다는 결과로서 평가받는 감독의 숙명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지난 시즌 SK는 5강 진출에 성공하며 3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이는 김용희 감독과 같이 지난해 현장에 복귀하며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김성근 감독의 한화보다 더 높은 순위였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에 비하여 김용희 감독의 업적은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SK가 시즌 개막전까지 삼성의 대항마로 꼽힐 정도로 기대를 모았던 우승후보였음을 감안하면 턱걸이 와일드카드 진출로는 팬들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오히려 많은 SK팬들은 김용희 감독이 표방했던 ‘시스템 야구’의 색깔이 모호하다며 무색무취한 플레이와 경직된 전술 운용에 많은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용희 감독이 추구하는 시스템 야구는 당장의 성적에 일비일희하여 선수들을 몰아붙이거나 혹사시키지 않고 장기적으로 강한 팀을 구축하는 것이다. 성적지상주의에 치우친 국내 야구계에서 김 감독의 구상은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한편으로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평가도 따라다녔다. 무엇보다 김 감독이 원하는 수준의 팀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SK에서의 첫 해는 성공이라고도 실패라고도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다소 어정쩡한 시즌이었다. 올해는 이제 김용희 감독만의 색깔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가운데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야할 시즌이다.
올해 SK는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불펜진의 핵이었던 정우람과 윤길현, 베테랑 포수 정상호가 한꺼번에 팀을 떠났다. 우승후보로까지 평가받았던 지난 시즌에 비하여 SK를 바라보는 기대치가 많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SK는 올 시즌 예년과 달리 FA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않았고 외부 영입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김용희 감독의 몫으로 돌아왔다. 어떤 면에서는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 야구의 진가가 빛을 발해야하는 시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김용희 감독이 이제 그라운드 밖의 신사 이미지를 넘어서 그라운드 안에서도 독기어린 승부사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야구 전문가들은 김용희 감독이 2016시즌에도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SK에서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김 감독에게도 SK에게도 중요한 과도기가 될 2016시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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