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정우 "연기로 정상 찍을 생각 없어"

부수정 기자

입력 2015.12.21 09:03  수정 2015.12.28 08:18

엄홍길 대장·고 박무택 대원 실화 영화

"한 단계 성숙한 작품…뜻깊은 경험"

배우 정우는 영화 '히말라야'에서 고 박무택 대원을 연기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배우 정우(34)는 긴 무명 끝에 자신을 알린 '응답하라 1994'(2013) 이후 신중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곧바로 차기작을 선택할 법도 하지만 이 진중한 청년은 남들과 다른, 어려운 길을 걸었다.

올 초 '쎄시봉'에서 순수남을 소화한 그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 올랐다.

정우 특유의 순정남 이미지는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16일 개봉)에도 묻어난다.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와 따뜻한 인간미는 덤이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도전을 그렸다. '빙우'(2004) 이후 10년 만에 나온 산악 영화로 정우는 고 박무택 대원 역을 맡아 엄 대장 역의 황정민과 호흡을 맞췄다.

고인이 된 실존 인물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15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는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며 "촬영하는 순간순간 캐릭터를 진정성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박무택 대원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인 듯하다"며 "극 중 죽음을 맞는 장면을 연기할 때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배우 정우는 영화 '히말라야'에서 고 박무택 대원을 맡아 엄홍길 대장 역의 황정민과 호흡을 맞췄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엄홍길 대장은 정우와 박무택 대원의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했단다. 영화를 본 엄 대장은 무슨 말을 했을까. "항상 '기(氣)기(氣)기(氣)'라는 응원만 해주셨어요. 하하. 산의 정기를 받아서 상대방에게 불어넣으시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신 후 꽉 안아주셨고요(웃음)."

영화엔 배우와 제작진이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들은 산악 전문가와 함께한 사전 훈련은 물론 네팔 히말라야, 프랑스 몽블랑 현지 로케이션에 참여했다. 출연진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 막내인 정우 역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거대한 히말라야를 한눈에 담으면 어떤 기분일까.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랄까요? 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 느꼈어요. 순간 겸손해지더라고요. 히말라야 해발 4500m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배우이자 인간 정우로서 처음 해본 경험이었던 터라 참 뜻깊었죠."

가장 먼저 생각났던 사람이 있었느냐고 묻자 "다른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며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였고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급격한 체력 저하로 고통스러웠다는 정우는 "막내로서 애교도 부리고 현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야 했는데 힘들어서 못 했다"며 선배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배우 정우가 출연한 영화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도전을 그렸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히말라야'보다 힘든 작품은 없을 듯하다는 정우에게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지 않으냐"고 했더니 "더 힘든 작품을 만난다면 정말 영화 같은 인생일 듯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히말라야'는 소재에 끌려 출연했는데 이렇게 고생할 줄 몰랐답니다. '히말라야' 이상의 고생은...생각하기도 싫답니다. 하하."

영화에서 정우는 엄 대장 역의 황정민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자연스러운 호흡을 선보인다. 연기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황정민과 10년째 알고 지낸다는 정우는 "선배는 내가 무명일 때도 응원해준 고마운 분"이라고 했다. "정민 선배가 엄청나게 고생했어요. 휴먼 원정대의 선두에 서서 모든 걸 신경 쓰셨죠. 정민 선배는 저보다 적응을 잘하셨어요. 산에서 소주도 드시면서...하하. 정민 형뿐만 아니라 다른 선배, 동료분들에게 모두 고마워요."

힘든 촬영을 함께한 동료들과는 동지애가 생겼다.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으로 뭉쳐 위험한 촬영을 버텨냈다고.

실제 정우가 엄 대장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건데 쉽지 않겠죠. 심정은 이해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온다는 게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잖아요. 엄 대장님은 박무택 대원에 대한 우정과 사랑으로 움직이신 것 같아요. 대단하죠."

영화 '히말라야'에 출연한 정우는 "연기는 등반과 비슷하다"며 "많은 걸 보고 들으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산악인들은 산을 '정복'한다고 하지 않는다. 산이 인간을 허락한 거고 인간은 그런 산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정복'이라는 단어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고 배우는 말했다.

"등정은 정상을 밟는 거고 등반을 그냥 산을 오르는 거라고 해요. 연기는 등반과 비슷해요. 묵묵히 걸어가는 거죠. 무조건 정상을 찍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뒤돌아보고, 옆에 뭐가 있는지 둘러 보기도 하고 싶어요. 많은 걸 보고 들을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고 싶답니다."

정우는 최근 tvN '꽃보다 청춘-아이슬란드' 편을 찍었다. 출연진과 미팅 날 갑자기 아이슬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는 그는 "바보 네 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며 "'히말라야'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면 '꽃청춘'은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미소 지었다.

히말라야에도 오르고 아이슬란드에도 끌려 갔다 온(?) 그에게 2015년은 참 특별하다. "'히말라야'를 통해 많은 걸 배우면서 한 단계 성숙했죠. 촬영 이후에 광고 캠페인 차 무전여행을 떠났고 아이슬란드도 다녀왔어요.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됐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 듯합니다(웃음).

'히말라야'는 100억대의 제작비가 든 대작이다. 손익 분기점은 430만명 정도. 흥행 욕심이 있느냐고 묻자 정우는 "어휴, 흥행은 내 뜻대로 안 된다. 손익 분기점만 넘으면 좋겠다. 관객에게 따뜻한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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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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