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간 '김기사-T맵'... '지도분쟁' 점입가경

이호연 기자

입력 2015.11.04 13:57  수정 2015.11.04 15:27

네비게이션 1, 2위 업체 “지적 재산권 수호” vs "벤처 생태계 갈등 표출“

ⓒ김기사와 T맵 로고

내비게이션 1, 2위 업체간의 '지도분쟁'이 상호비방전은 물론 소송전으로 갈 모양새다. ‘T맵’을 운영하는 SK플래닛이 경쟁 서비스 ‘국민내비 김기사’를 운영하는 록앤올에 지도 무단 사용 소송을 제기한 것. 양사가 제휴를 맺고 T맵 데이터 서비스를 이용했었는데 계약 해지 이후에도 김기사가 T맵 지도 정보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현재 SK플래닛은 T맵 지식재산권 침해 중단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 이에 카카오의 자회사인 록앤올은 법정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며, SK플래닛이 일방적인 주장과 여론전으로 벤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사의 주장이 서로 다르면서 법원에서 진실 공방이 가려질 예정이다.

◇ 핵심 키워드 ‘디지털 워터마크’

법원에서 판결을 낸다면 ‘디지털 워터마크’가 결정적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SK플래닛이 록앤올이 T맵 지도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는 근거는 워터마크에 따른 것이다. 디지털 워터마크는 T맵 전자지도 DB에 지식재산권 보호 및 소유권을 증명하기 위해 정보를 추적할 수 있도록 삽입한 고유 정보이다.

예를 들어 △T맵 전자지도에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지명 삽입 △‘나주’, ‘전주’ 등의 지명을 일부로 ‘나두’, ‘전두’ 등의 오타로 표현 △ 강, 바다 등의 지형을 표기할 때 개발사만 알아볼 수 있게 표시 등이 있다.

SK플래닛은 이러한 T맵의 고유 워터마크가 표시된 지도 정보를 김기사에서 수십개 수집했다고 주장했다. 회사는 현재 법원에 수십개의 증거물을 제출했다. 이에 박종환 록앤올 대표는 “T맵 지도와 김기사 지도에 나타난 동일한 오타는 우연의 일치”라며 “부당한 주장을 한 SK플래닛을 공정위에 제소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오타 외의 증거 자료에 대해선 공식 답변은 하지 않았다. 일일이 해명하기보다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나 서비스 모방 등은 법원까지 가도 도용과 베끼기의 기준을 정하기 어려워 판결을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해당 사항은 SK플래닛이 수십개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만큼, 록앤올에서도 나타난 오타나 지형의 표기법 등이 SK플래닛의 워터마크인지만 밝혀낸다면 결론이 쉽게 날 전망이다.

◇ “잘 나가니 견제” 벤처 생태계 갑질 논란?

록앤올 박종환 대표는 지도 도용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면서 대기업의 벤처를 향한 갑질이라고 맞불을 놨다. 박 대표는 “T맵 전자지도 DB 무단 사용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지적 재산권 침해 사실은 있지도 않다”며 “일방적인 주장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한 것은 벤처 성장을 가로막는 행위로 대기업 갑질”이라고 주장했다.

김기사가 T맵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자, 계약 기간 동안 부당한 가격에 지도 정보를 제공하고 수 차례 김기사의 정보를 탈취하려고 했다고도 덧붙였다. 록앤올은 계약 기간 중 부당한 기술정보 요구와 가격인상 등의 압박이 있었다며,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용 진위 여부를 떠나, SK플래닛이 해당 사안을 공론화 시키는 것을 두고 김기사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상승세를 타고 있던 김기사가 이번 사건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입게 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카카오가 올해 록앤올을 600억원에 인수한 만큼, 실제 칼날은 모바일을 독주하고 있는 카카오를 겨눴다는 분석도 거론되고 있다.

카카오는 “SK플래닛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서는 공정위 제소 등 모든 법률적 검토를 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모회사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SK플래닛은 “문제의 초점은 기술도용인데, 록앤올이 대기업의 횡포로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며 “최저 수준의 가격으로 지도정보를 제공했는데, 벤처지원 노력이 폄하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 모방? 도용?...지적재산권 화두

지도 업계로선 김기사와 T맵 공방전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번일을 계기로 모바일 서비스에 대한 지적재산권 인식이 변화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모바일이 누구도 가보지 못한 신시장이다보니 다수의 서비스가 범람하면서 참조하거나 모방한 서비스가 하루에도 수십개씩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모방과 도용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베낀 제품에 상품 가치가 더해져 기존 제품보다 잘 팔리는 경우이다. 원 제품을 만든 개발사로선 아이디어를 도용해 수익을 거둔 것 아니냐고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간 사이에도 이같은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부동산 매매 정보를 제공하는 ‘다방’과 ‘직방’은 최근 상표권 분쟁을 벌이고 있으며, 배달 서비스 ‘배달통’은 포이트 적립 솔루션 업체 ‘비제’로부터 특허권 침해 관련 소송을 당한 바 있다. 건전한 생태계 발전을 위해서 지적재산권 보호에 대한 인식과 제도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베끼기와 창조는 종이 한 끝 차이지만, 무단 도용은 엄연한 범죄”라며 “김기사와 T맵 사이의 지도 도용 분쟁을 통해 업계가 지적 재산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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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 기자 (mico91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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