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축구협회는 지난달 30일(한국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히딩크 감독의 사임을 공식 발표했다. 결국, 부진한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루이스 판 할 감독 뒤를 이어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복귀한 히딩크 감독은 높은 기대와 달리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로2016 예선 A조에서는 아이슬란드, 체코에 이어 3위에 머물러있다.
한국축구팬들에게는 2002 한일월드컵 4강의 영웅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와 유럽축구계에서도 인정받는 전설적인 명장이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고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4강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올렸고 PSV 아인트호벤, 첼시, 러시아, 호주대표팀 등을 넘나들며 가는 곳마다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어제의 영광에 연연하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은 이미 사임 전부터 네덜란드 축구계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히딩크 감독의 전략과 전술, 대표팀의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몰락은 한국축구에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대표팀 시절만 해도 국내 축구에 생소했던 압박과 체력의 중요성을 일깨운 선진축구의 전도사였다. 그랬던 히딩크 감독이 어느덧 세월이 흘러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어제의 영웅이나 자국 축구계 원로에게도 가차 없는 네덜란드 축구의 자아비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미있는 사실은 히딩크 감독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던 인물들조차 히딩크 비판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히딩크 제자였던 프랑크 데 부어 아약스 감독 등도 "히딩크는 너무 늙었고 그의 전술은 구식이 됐다"면서 사퇴를 종용했을 정도다. 한국축구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매정해보이지만,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하는 네덜란드인 특유의 실용주의적 마인드에서는 놀랄 일도 아니다.
사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국내 축구와 언론에서도 어느 정도는 본받아야할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축구계의 관행 중 하나가 지나친 '제 식구 감싸기'다. 선후배와 서열주의로 얽혀있는 국내 축구계에서는 같은 동업자들끼리의 내부 비판이 금기시되어있는 분위기다. 한국축구의 정점에 있는 대표팀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축구에 대한 일회적인 냄비여론이나 과도한 비판 못지않은 또 다른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대표팀과 한국축구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나 문제제기마저도 마치 감독 흔들기나 내부의 적처럼 매도하는 현상이다. 바로 2014 브라질월드컵의 홍명보호가 좋은 예다.
외국인 감독에게 들이대는 배타적인 엄격한 잣대와는 달리 자국 축구인들에게는 유독 관대한 한국축구계의 이중적인 태도도 한 몫을 담당했다. 축구계 내부의 건전한 비판 기능이 제몫을 다했다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홍명보호의 재앙은 없었을 수도 있다.
어제의 영광이나 흘러간 이름값이 미래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한국축구에서는 영웅으로 인정받는 히딩크 감독의 초라한 퇴장은 그가 한국축구에 남겨준 마지막 교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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