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GK 부재’ 언제까지 선수 탓만..

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입력 2014.07.04 18:30  수정 2014.07.05 09:45

국내파 의존, 세계무대와 가장 큰 격차 실감

K리그 경험만으로 부족..전략적 대책 마련 시급

2014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한 K리거 6명 가운데 3명이 골키퍼다. ⓒ 연합뉴스

2014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와 가장 큰 격차를 드러낸 포지션 중 하나가 바로 골키퍼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도 진출하며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유일하게 아직 유럽파를 배출하지 못한 포지션이 골키퍼이기도 하다. 정성룡, 이범영, 김승규로 꾸린 홍명보호의 월드컵 골키퍼는 모두 국내파로 구성됐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K리거가 총 6명이었으니 절반이 골키퍼였던 셈이다. 이중에 월드컵 경험자는 정성룡이 유일했다. 홍명보 감독은 정성룡의 경험을 높이 사 러시아전과 알제리전 주전 수문장으로 기용했지만 2경기에서 5실점을 기록하는 초라한 성적에 그쳤다.

벨기에와의 최종전에서는 후배 김승규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오히려 김승규가 월드컵 데뷔전의 중압감이 무색하게 인상적인 선방쇼를 펼쳐 패배에도 호평을 받기도 했다.

2010 남아공월드컵부터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 자리를 독차지했지만, 쌓아온 경험에 비하면 기대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성룡에게만 의존하는 독주체제가 대체자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정성룡 본인에게도 독으로 작용했다.

지난해부터 소속팀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여러 차례 드러냈던 정성룡의 중용은 홍명보 감독의 '의리사커' 논란과 맞물려 비판을 자아냈다.

정성룡은 조별리그가 끝난 후 국제축구연맹(FIFA)가 공개한 '캐스트롤 인덱스'(Castrol Index)에서 10점 만점 가운데 5.53점을 받아 이번 월드컵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4번째로 낮은 점수를 기록한 골키퍼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현대 축구에서 골키퍼들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역할도 문전 근처에만 머물러 마지막 슈팅을 차단하는 소극적인 움직임을 벗어나 실질적으로 수비 전반을 아우르는 리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골키퍼들의 활동범위는 점점 넓어지는 추세며 이번 대회에서도 많은 골키퍼들이 페널티 라인을 벗어나 과감하게 전진해 상대가 위험 진영으로 들어오기 전에 패스를 차단하거나 슈팅각도를 좁히는 공격적인 수비의 비중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공수 전환 시에서는 롱킥이나 좌우 패스 연결을 통해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수행하는 골키퍼의 판단 능력과 시야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점점 템포가 빨라지는 현대축구에서 아무리 좋은 신체조건을 지니고 있어도 순간속도와 판단력이 떨어지는 골키퍼는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한국은 골키퍼로는 유일하게 4회나 월드컵 무대에 승선한 이운재 이후 고질적인 대형 골키퍼 부재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김승규가 벨기에전을 통해 위치선정과 펀칭, 공중 볼 장악 등에서 가능성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국내 골키퍼들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무대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골키퍼들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공격수들과 경쟁을 거듭하면서 발전하기 마련이다. 최근 스타급 선수들의 유출로 경쟁력이 약화된 K리그에서의 활약만으로는 골키퍼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내 골키퍼들에 대한 보호 차원에서 외국인 골키퍼들의 영입을 제한한 결정도 장기적으로는 경쟁 구도를 통한 경기력 향상에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다.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A매치를 활용하는 것이지만 결과에 대한 부담이 큰 대표팀에서 가장 안정감이 필요한 골키퍼 포지션에 다양한 실험을 시도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이제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만을 탓하기보다, 축구계 차원에서 대형 골키퍼 육성에 대한 전략적인 기획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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