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출신 개그우먼 줄줄이 KBS 공채 합격
'개그콘서트' 나홀로 독주 속 이적 불가피
누군가의 합격 소식은 분명 축하해줄 일이다. 그럼에도 입맛은 씁쓸하다. 이미 SBS 공채 개그맨으로 합격해 방송 활동을 하던 이들이 그 동안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KBS 신입 코미디언이 됐다.
사실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 처음은 아니다. 타 방송사 공채 개그맨은 물론이고 탤런트로 활동하던 이들이 KBS 신입 코미디 연기자 공채 시험에 합격한 사례가 있는 것. 그렇지만 이번엔 무려 세 명이나 SBS에서 KBS로 움직였다. 그것도 경력 입사가 아닌 신입 입사다.
최근 KBS는 ‘2014 KBS 신입 코미디 연기자 공채’ 합격자 명단을 발표했고 그 명단에는 SBS 공채 출신 김승혜, 이은호, 이현정 등이 포함돼 있다.
김승혜는 2007년도 SBS 9기 공채 출신으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를 대표하던 미녀 개그우먼 가운데 한 명이다. 또한 이은호와 이현정은 2012년 SBS 12기 공채 개그맨 출신이다.
김승혜의 경우 8년차 코미디언이지만 이제 다시 1년차 신입이 됐다. 기수를 강조하는 KBS 희극인실의 특성을 감안할 때 지난 8년 동안 타 방송사지만 같은 코미디언으로 알고 지내던 KBS 코미디언 후배들이 어느 순간 선배가 됐다. 과거처럼 선후배 사이의 규율이나 기강이 강조되는 분위기는 아닌 터라 신입이라고 무조건 막내로 지내게 되는 상황은 아닐 지라도 대단한 결심이 아닐 수 없다.
한 KBS 공채 코미디언은 “지금은 KBS 희극인실도 기수보다는 각자의 소속사를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10년 전이었다면 김승혜는 6~7년 후배이던 KBS 코미디언들에게 얼차려는 기본, 구타까지 당했을 수도 있다”면서 “김승혜 개인을 보면 대단할 결심이고 또 축하해 줄 일이지만 KBS 희극인실 독주시대에 MBC와 SBS 희극인실 소속 코미디언들을 생각하면 심히 씁쓸하다”고 말했다.
개그 프로그램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 그러니까 10여 년 전이 바로 개그 프로그램의 황금기였다.
1999년 KBS ‘개그콘서트(이하 개콘)’가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 전성시개를 오픈했고 SBS가 2003 ‘웃찾사’를 시작하면서 양대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두 프로그램 모두 20%를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수많은 스타를 양산했고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또한 MBC는 기존 정통 개그 프로그램을 유지해 극장식 개그 프로그램인 ‘개콘’과 ‘웃찾사’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았었다.
당시에도 공중파 방송 3사 희극인실의 분위기는 상반됐다. 우선 KBS와 MBC는 공채 문화를 중심으로 유지됐다. KBS는 확실한 기수 문화가 특징이었다. 이로 인해 기수에 따른 선후배 사이가 분명했다. 나이가 많을 지라도 후배는 분명한 후배였다. 결국 KBS 희극인실은 2000년대 중반 폭행 사건으로 이런 분위기에 큰 변화를 겪었다. 나이 어린 선배 코미디언이 나이 많은 후배 코미디언을 폭행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는 사건이 불거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
MBC 역시 기수 문화의 공채 시스템이었지만 KBS보다는 기수 서열이 중시되진 않는 분위기였다. ‘개콘’으로 KBS 희극인실이 돌풍을 일으키며 스타를 양산했지만 MBC는 다소 시청률이 떨어지는 정통 코미디를 고수하면서도 희극인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반면 SBS는 특채 문화가 접목됐다. 공채 시스템과 특채 시스템이 조화를 이루는 구조인데 ‘웃찾사’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에는 대학로 공연장에서 히트를 치는 코너를 만들면 곧바로 특채 코미디언이 돼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기수에 의한 선후배보다는 인기가 더 중요한 시스템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코미디언 지망생들을 고민을 해야 했다. 지방에서 상경해 고시원 등에서 어렵게 지내며 매년 KBS 신입 코미디 연기자 공채 시험을 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재수는 기본, 삼수 사수 아니 그 이상 시험을 봐서 합격한 이들도 많다. KBS 희극인실은 공채 시험을 통과하기가 힘겹지만 한 번 합격하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SBS는 그 반대다. 대학로 공연장에서 코미디 연기를 시작해 인기 코너만 만들면 곧바로 특채로 방송 데뷔가 가능했다. 반면 인기가 떨어지면 곧바로 방송을 접고 다시 대학로로 향해야 했다.
문제는 2000년대 후반 개그 프로그램 전성기가 끝나면서 부터다. KBS ‘개콘’만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황금 시간대에 방영되는 반면 MBC와 SBS는 모두 개그 프로그램을 축소했으며 결국 폐지했다. 한때 방송 3사 가운데 개그 프로그램은 유일하게 KBS ‘개콘’만 방송되던 시절도 있었다.
MBC와 SBS가 모두 다시 개그 프로그램의 방송을 재개했지만 시청률이 낮게 나올 수밖에 없는 새벽 시간대에 편성됐다. 다시 말해 KBS 코미디언은 계속된 전성기를 누리는 반면 MBC와 SBS 코미디언은 아예 방송의 기회를 잃었다가 겨우 시청자들의 접근이 힘든 시간대에서 제한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인기를 얻고 있던 일부 코미디언들은 연기자나 리포터, 방송인 등으로 전업에 성공했지만 나머지는 언제가 다시 올 개그 프로그램 전성기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난 해 4월 SBS '웃찾사‘가 방송을 재개하면서 제2의 돌풍을 기대했지만 시청률은 5%를 밑돌았다. 금요일 밤 11시 25분이라는 편성 시간대가 분명한 한계일 수밖에 없다. 자정을 넘긴 시간대는 아니지만 개그 프로그램의 주요 시청자 층인 20대 시청자들이 많이 시청하는 시간대는 분명 아니다. 결국 ’웃찾사‘ 방송 재개를 통해 다시 활기를 띌 것이라 기대됐던 SBS 희극인실은 소속 코미디언 세 명이 KBS 신입 코미디언으로 이적하는 모습을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됐다.
김승혜, 이은호, 이현정 등은 모두 ‘개콘’에 출연할 기회를 잡게 될 전망이다. 김승혜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코미디언인데다 기존 유명세와 인기도 있어 새로운 ‘개콘’의 주역이 될 가능성도 높다. 김승혜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이은호와 이현정 역시 스타 등극에 성공한다면 ‘2015 KBS 신입 코미디 연기자 공채’에는 더 많은 타사 소속 코미디언들이 몰려들 수도 있다.
이 같은 코미디언의 KBS 쏠림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타사 소속 재능 있는 코미디언들이 계속 KBS 희극인실로 유입될 겨우 ‘개콘’은 지금보다 더 경쟁력을 갖출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 비해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수요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시청률이 프로그램 편성에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할 때 무조건 개그 프로그램을 주요시간대에 편성하라고 방송사 측에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KBS ‘개콘’이 꾸준히 15~20%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얘긴 여전히 개그 프로그램을 즐기는 시청자 층은 존재한다는 의미다. ‘개콘’ 역시 2000대 후반 개그 프로그램 전성기가 끝날 무렵 시청률이 거듭 추락하는 등 위기 상황을 겪은 바 있다. 그렇지만 KBS는 꾸준히 ‘개콘’에 기회를 주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로 인해 ‘개콘’의 수장인 김준호는 지난 해 KBS 연예대상을 수상하며 KBS 희극인실 전성시대의 주역이 됐다.
어느새 케이블 채널 tvN의 ‘코미디 빅리그’에게도 밀린 MBC와 SBS 입장에선 지금이라도 개그 프로그램 활성화를 위해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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