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드라마가 판타지를 앞세워 연이은 인기 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타인의 눈을 보면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너의 목소리가 들려'(이하 너목들) 돌풍에 이어 이번엔 귀신들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주인공이 전면에 나선 '주군의 태양'이 또 한 번의 대박 신화를 만들어갈 태세다.
이런 판타지 드라마 열풍은 다른 요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의학 드라마라는 확실한 장르 드라마인 KBS2 '굿닥터' 역시 일종의 판타지로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자폐증 경력을 가진 이가 의사가 될 수도 있는 만큼 판타지로 보긴 어렵지만, 아직 그런 사례가 전무후부하며 앞으로도 쉽지는 않은 사안임을 감안하면 판타지로 봐도 무방해 보인다. '굿닥터' 역시 월화드라마 시장에서 가볍게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어떻게 타인의 생각이 들릴 수 있을까. 드라마 '너목들'을 시청하는 내내 들었던 의문이다. 판타지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1차원적인 목소리로 귀결돼 제 3자에게 들릴 수 있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가 어려웠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목소리로 귀결될 만큼 대화체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특별한 장소를 떠올리는 듯 공간감적이며 3차원적일 때도 많다. 아니 사람의 생각은 때론 4차원적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생각이 목소리치럼 들릴 수 있다는 게 말이 될까. 타인의 생각이 들린다는 능력보다도 3~4차원을 오가는 타인의 생각을 목소리라는 1차원 매개체로 전환한다는 점 자체가 더 뛰어난 초능력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처럼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최고의 설정은 일본 드라마 '사토라레'였다. 역발상이 돋보인 이 드라마의 설정은 나라를 구할 만큼 천재인 ‘사토라레’들이 일본에 살고 있는데 그들의 단점은 생각이 주변 사람들에게 다 들린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타인의 생각이 들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생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들에게 들리는 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행여 자신이 사토라레임을 알게 되면 천재성을 발휘하긴커녕 정신질환으로 힘겨워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사토라레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며 전 국민이 그들을 보호해 나라를 위해 천재성을 발휘하도록 만든다. 이런 역발상은 ‘타인의 생각이 들리는 이’의 이야기라는 판에 박힌 판타지를 새로운 차원의 판타지로 탈바꿈해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너목들'은 기본 초능력인 ‘타인의 생각이 들린다’는 설정은 그대로 뒀다. 이런 판타지적인 소재가 자칫 너무 가벼운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 드라마는 법정 드라마라는 장르 드라마를 선택했다.
기본적으로 '너목들'은 법정 드라마다. 민중국(정웅인 분) 장혜성(이보영 분) 박수하(이종석 분) 등이 얽혀 있는 큰 사건을 중심으로 드라마가 진행되지만 장혜성이 근무하는 국선변호사 사무실이 맡은 다양한 사건을 바탕으로 다양한 법정 에피소드가 더해져 흥미를 유발했다. 이런 법정 드라마에 ‘타인의 생각이 들리는 박수하’라는 판타지 소재를 끼워 넣었다.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재판에 개입하면서 재판은 늘 ‘진실’을 밝히는 명쾌한 판결을 내놓게 된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의 핵심 주제는 ‘타인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 법전만 해석하는 오늘날 사법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일 지도 모른다.
'너목들'이 죽을 뻔 한 위기를 넘긴 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생겼다면 '주군의 태양'의 태공실(공효진 분)은 죽을 뻔 한 위기를 넘긴 뒤 귀신이 보이게 됐다. 물론 귀신과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주군의 태양'은 '너목들'과 매우 유사한 형식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기본적으로 초능력을 갖고 이를 중심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다. '주공의 태양' 역시 메인 스토리는 태공실과 주중원(소지섭 분)을 둘러싼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회마다 등장하는 귀신의 사연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돼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귀신을 보고 그들과 대화하는 콘셉트를 다룬 드라마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스터디셀러인 '전설의 고향'이 대표적이다. 무속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기본이고 영화 '헬로우고스트'처럼 일반인이 귀신을 보고 듣게 되는 설정도 있었다.
이런 기존 동일 설정 드라마와 '헬로우고스트'가 같은 가장 큰 차이점은 우선 ‘주군’인 주중원의 존재다. 태공실은 이상하게 자신이 주중원의 몸에 손을 대면 귀신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로 인해 태공실은 주중원과 함께 있으면 귀신에서 벗어나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들이대게 된다.
주중원이 기업인임을 감안하면 이 드라마 역시 기업 드라마라는 장르드라마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1,2회 방송만 놓고 보면 기업 드라마보다는 로맨틱코미디(로코) 드라마에 더 가까워 보인다. 결국 '주군의 태양'은 로코 드라마라는 장르 드라마에 판타지를 더해 놓은 셈이다.
'굿닥터'는 전형적인 장르 드라마인 의학 드라마다. 기존 의학 드라마가 손대지 않은 영역인 소아외과를 다룬 이 드라마는 의학적 능력은 뛰어나지만 심성은 어린 아이들과 비슷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자폐증 이력을 가진 의사 박시온(주원 분)이 등장한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은 자폐증 경력이 있더라도 의대 및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자는 의사국시를 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물론 아직 이런 사례는 없다. 따라서 서번트 증후군의 자폐증 경력을 가진 의사는 현실성을 가진 인물이면서 판타지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의학 드라마는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다.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하얀거탑'은 과거 일본의 의학계 현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인데 이를 적절히 한국 의료 현실에 접목시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뉴하트', '골든타임' 등의 의학드라마 역시 한국 대학병원과 의료계의 현실을 철저히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반면 '굿닥터'는 박시온이라는 판타지적인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 자체로 현실성이 다로 떨어진다. 그렇지만 2회까지의 방영분을 놓고 보면 '굿닥터'는 훨씬 현실적인 드라마가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드라마는 아직까지는 기계적으로 환자를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박시온이 소위 말하는 의사정신을 깨우쳐 가는 과정을 그려나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을 통해 드라마는 오히려 환자를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오늘날 현실 속의 의사들의 의사정신 실종을 그려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근 방송가에 불고 있는 판타지 드라마는 오히려 더욱 현실성이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현실적이지 못한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너무 현실적인 전문가 집단(사법부, 의료계, 기업가들)을 비판하는 것. 또한 너무 가벼워질 수 있다는 판타지 드라마의 한계를 장르 드라마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도도 인기의 큰 비결이다. 조금이라도 더 특별한 설정을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장르 드라마에 덧씌워 더욱 날카롭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드라마가 바로 요즘 대세가 된 판타지 드라마에 대한 가장 적절한 정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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