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는 왜 독립 아닌 자치를 요구하나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 (kipeceo@gmail.com)

입력 2013.05.13 11: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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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중국 톺아보기>'멸족의 상황' 현실적 대안으로 중도적 해법 택해

'달라이 라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로버트 서면 저, 문정희 역, 김영사 간(2011)
생존하는 세계의 종교지도자 중 세계인과 가장 활발하게 소통해 온 사람은 달라이 라마(Dalai Lama)다.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丹增嘉措, 1935.7.6~). 그는 티베트인에게 살아있는 부처, 활불(活佛)로 추앙받는다. 게둔 두파(根敦朱巴)가 1391년 제1대 달라이 라마로 시작한 환생의 계보를 이어받은 종교적, 정치적 최고지도자다. 달라이 라마 제도는 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것을 넘어 티베트인들에게 관세음보살의 발현으로 여겨져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하는 독특한 제도다.

지금까지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민족의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시키고, 티베트인의 삶을 지탱해 온 구세주적 존재였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 라마의 영도 아래 티베트인들의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국가를 존속시켜 왔다. 하지만 현존하는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중국 공산당의 무력 침공에 의해 점령당한 라싸를 탈출하여 인도의 다람살라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티베트의 자치와 독립을 위한 고난의 행군을 이끌고 있다. 티베트 수도 라싸의 아름다운 포탈라 궁전에 은거해야 할 달라이 라마가 전 세계를 떠돌며 자유와 인권, 평화와 자치의 전도사가 된 이유다.

비폭력 평화주의의 전도사 달라이 라마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서먼(Robert Thurman)은 한때 학승으로 수계까지 받았고, 라마불교학에 평생 몰두해 온 콜롬비아대 불교학과 교수다. 특히 그는 스스로 말하듯, 달라이 라마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40여 년 간 달라이 라마가 정신적, 정치적 측면에서 세계적 지도자로 성숙해 간 과정을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달라이 라마의 역정과 비전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인 듯싶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가 세계를 향해 설파해온 종교적, 정치적 담론의 의미와 가치를 심층적으로 해석하면서, 달라이 라마의 연설 및 주장에 담긴 조국 티베트의 자치를 위한 비폭력주의와 중도적 해결책을 소개한다. 나아가 중국과 티베트 민족의 평화적 공존을 위해 중국과 티베트인 및 달라이 라마가 취해야 할 5단계 해법을 중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동안 달라이 라마는 무엇을 역설해왔고, 무엇을 성취했을까? 저자는 달라이 라마의 표현을 빌려 그가 헌신하고 있는 ‘필생의 세 가지 과업’을 소개한다. 첫째, 달라이 라마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 관용, 자비의 정신을 촉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속세를 떠난 승려의 신분이지만,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관인 ‘세속 윤리’를 도외시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 관용과 자비의 정신이 인간사회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고 본다.

둘째, 달라이 라마는 종교 실천가로서 세계의 종교적 조화와 불교적 자기수양을 강조한다. 그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세계 종교로 여긴다. 그는 세계의 여러 종교가 서로 개종을 앞세운 경쟁에 치닫지 말 것을 호소해왔다. 달라이 라마는 각 종교가 공통적으로 사랑과 자애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왜 자신과 다른 종교에 대한 사랑과 관용은 부족한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그는 윤리적 측면에서 ‘인간 공동의 종교인 자애’에 대한 상식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과 통찰적 수양에서 나온 타 종교에 대한 그의 관용 정신과 개방적 자세는 그를 티베트 불교 지도자의 위치를 넘어 종파 간 경쟁과 갈등을 조정하는 세계적인 종교 지도자의 위상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셋째, 그는 중국의 억압이 풀릴 때까지 티베트 민족을 대표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내생의 환생으로 티베트인들의 영적 교사가 되길 희구한다. 그는 현재 서글픈 망국의 지도자다. 그의 필생의 목표는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 티베트인에 의한 자유롭고 개방된 티베트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그 방편으로 비폭력적이며 윤리적인 해방운동을 전개해왔다. 자신은 자유 티베트가 완성되면, 오로지 티베트인들의 영혼에 가르침을 주는 영원히 환생하는 종교지도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달라이 라마의 ‘필생의 과업’ 가운데 인간의 보편적 윤리를 일깨우고, 종교 간 관용과 각성을 촉구하는 그의 노력은 그동안 높이 평가받아왔다. 세계인들에게 준 지혜와 영감, 그리고 감화가 작지 않다. 하지만, 티베트의 자치를 향한 그의 정치적 목표는 중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여러 정치적 관계망에서 날카로운 긴장을 만들어내면서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일구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그가 추구하는 비폭력주의가 중국의 동화에 의한 티베트 민족 말살정책을 방어해 내는 데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자유 티베트를 향한 달라이 라마의 ‘중도적 해결책’

티베트 민족의 숙원은 중국에게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티베트의 자유를 쟁취하는 민족해방이다.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은 무장투쟁과 평화적 협상으로 갈린다. 총 2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인민해방군과 인민무장경찰을 동원한 중국 공산당의 폭압 통치를 대항하는 유효 수단은 무장봉기라고 믿는 티베트인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달라이 라마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적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민족말살정책의 폭력성을 잘 알고 있지만,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의 ‘비폭력 자유투쟁’은 ‘중도적 해결책’이다.

그는 티베트 민족의 자유대변인을 자처하지만,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폭력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무력봉기 등 폭력을 불사하는 강경론자들의 노선과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이러한 평화적 협상 전략은 티베트의 해방에 직접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주의에 동의한다.

달라이 라마는 왜 ‘중도적 해결책’을 제기하는 것일까. 그 해법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달라이 라마의 연설과 담화에서 그의 철학과 해법의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자유투쟁의 정신의 밑바닥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깔려있다.

그는 “인간은 모두 자유를 원하고, 개인이자, 민족으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역설한다. 인간의 본성이 근대적 민주주의를 갈구하게 만들고 나아가 민족자결의 원칙을 자연스럽게 배태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티베트 자유에 대한 희구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의 추구에 깊게 뿌리박고 있는 셈이다.

달라이 라마의 ‘자유의 정신’과 인본적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비폭력 노선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투쟁은 비폭력적이고 증오심에서 벗어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쓸 뿐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호소가 이를 잘 말해준다.

달라이 라마가 추구하는 ‘중도적 해결책’의 틀은 의외로 소박하다. 티베트의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 ‘자치’다. 이 점이 ‘완전한 독립’을 강조하는 티베트인 강경론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가 그리는 그림은 보다 거시적이다. 중국 전역의 연방제적 운용의 틀 속에서 티베트인에 의한 민주적 정부체제를 희구하는 것이다. 형식적 독립보다 ‘자치’를 통해서도 티베트인만의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실질적 독립’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소신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달라이 라마가 자유 티베트의 해방을 위해 중국 공산당 정부에 요구하며, 전 세계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 내용을 보면, 현재 티베트인들이 처한 고난의 현실과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하고 있는 이유를 간파하게 해준다. 달라이 라마가 1987년 9월 미국 하원에서 촉구한 5개항이다. 이는 1988년 스트라스부르 제안의 토대가 된다.

1. 티베트 전역의 평화지구화
2. 하나의 민족단위로서의 티베트인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중국의 인구이동정책의 포기
3. 티베트인의 기본인권 및 민주적 자유의 존중
4. 티베트의 자연환경 복구 및 보호, 핵무기 생산을 목표로 행하고 있는 중국의 티베트 이용 및 핵폐기물 투하의 포기
5. 티베트의 향후 상태 및 티베트인과 중국인 간의 향후 관계에 대한 진지한 협상 착수

티베트인의 기본 인권과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인들의 대량 이주를 통해 티베트 지역에서 티베트인을 소수민족으로 만들고, 핵무기 생산을 위한 기지와 핵폐기물의 투하 장소로 활용함으로써 청정한 티베트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티베트 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은 고사 위기에 놓여있다. 멸족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애처롭기 그지없다.

달라이 라마가 ‘외교와 국방 사안’을 중국이 맡고 나머지 부문만이라도 ‘자치’를 허용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이런 현실적인 상황의 급박성 때문이 아닐까? 그가 말하는 ‘자치’는 완전한 독립과는 거리가 멀다. 외교와 국방의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자주독립국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정된 ‘자치’가 중국의 국제적 위상도 올리고 티베트의 “고유의 문명을 보존할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받고, 민감한 티베트 고원의 환경보호를 보장받게” 만드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중국과 티베트를 위한 5단계 해법

로버트 서먼은 달라이 라마의 ‘중도적 해결책’에 공감하면서, 티베트의 해방과 자유 티베트 건설을 위한 보다 상세한 대안을 설계하여 중국과 티베트인들에게 중재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의 해법은 달라이 라마에게 영향을 받은 듯, 비폭력주의와 평화적 협상론의 기조 위에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5단계 계획’은 티베트가 제기해 온 중국이 야기한 문제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내용이 담겼다.

대티베트를 ‘뵈(티베트인들이 티베트를 부르는 고유의 명칭) 자치구’로 복귀시키고(1단계), 홍콩과 유사한 1국 2체제를 도입하며(2단계), 중국 이주민과 군대를 철수시킨다(3단계). 이를 토대로 달라이 라마를 중국으로 초청하여 관계를 개선하고, 유엔의 배석 하에 양국 지도자의 공동 서명을 발효시키고(4단계), 티베트 전역을 환경적 보존 구역으로 선언하자는 것이다(5단계).

이에 대응하여 달라이 라마가 취해야 할 ‘5단계 반응’도 함께 제시됐다. 달라이 라마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회동하고, 톈안먼 광장에서 성대한 ‘태평(太平) 서명행사’에 참석하며, 재통합된 ‘뵈 자치구’의 미래를 티베트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국제적 참관 아래 자유투표를 실시하고(1단계), 달라이 라마와 전 세계가 중국 지도부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여 중국 지도부에 대해 보답하며, 라싸의 포탈라궁과 조캉 사원의 제전행사의 복원, 베이징 최대의 라마교 사원인 융허궁(雍和宮)의 재건 등 티베트 문화를 회복시킨다(2단계).

나아가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통해 티베트의 민족적 통일성과 소수민족 간의 조화를 증진시키는 노력을 하고(3단계), 만일 티베트 민족이 원한다면 중국의 공식적 일부로 편입될 수 있다는 목표를 달라이 라마가 공식 선언하라는 것이다(4단계). 또한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친선사절 겸 특사 역할을 수행하여 중국과 인도의 국경분쟁의 수습 등 중국이 당면하는 국제적 분쟁 해결에 적극 나서라는 것이다(5단계).

로버트 서먼의 해법은 중국과 티베트 모두에게 한발 씩 양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티베트의 무력 점령 상황을 종식시키는 대신,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인들은 중국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것을 약속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양국 지도자가 취할 조치들의 세부적인 추진 방안과 그에 따른 장애요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책도 제시하고 있다. 이대로만 실천된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저자의 절절한 희망사항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하려는 근본적 이유를 간과하고 있다. 중국에게 티베트는 티베트 민족 하나만의 차원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 전역을 ‘대일통(大一統)의 관점에서 티베트 민족, 몽골 민족, 위구르 민족, 만주족을 중화의 천하 속에 묶어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자유와 자치, 암울한 전망

저자는 자유로운 티베트가 생태학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중국과 티베트, 나아가 전 세계에 유익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국이 티베트를 식민지화하면서 자연환경 을 파괴하여 야기되는 비용과 생태적 교란의 악영향은 막대하다. 중국의 이주정책에 의해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고지대로 이주한 중국인들은 고산병으로 생체적인 곤경을 감내해야 한다.

또 약 2백만 명으로 추정되는 인민해방군과 인민무장경찰의 유지비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저자는 중국이 티베트를 해방시킨다면, 이대로 강점하면서 중국이 치러야 할 경제적, 생태적 희생을 더 이상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을 설득하려 애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를 수용할 여지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어 보인다. 사실 달라이 라마가 호소하는 ‘연방제적 자치’는 원래 마오쩌둥이 1922년 선언한 이민족 정책의 핵심인 ‘자유연방제’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1939년부터 ‘자유연방제’적 국가구상을 슬그머니 감추고, ‘중화민족’을 거론하면서, 다민족 자유연방제 대신에 ‘구역자치’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는 이름뿐인 자치일 뿐, 각 민족의 고유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스스로 다스리는 진정한 의미의 ‘자치’와는 거리가 멀다.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기초한 ‘티베트의 자치’는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달라이 라마는 2011년 티베트 망명 정부의 정치적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하버드 대학 출신의 티베트인 롭상 상가이(Lobsang Sangay)를 후임 총리로 선출하면서 망명 정부의 파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이제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만 남게 되었다. 이렇듯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티베트 망명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을 계승하고,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여 이를 관철해 나가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달라이 라마는 종교적 극단주의와 일체의 폭력주의를 경계했다. 그가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도 비폭력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전 세계 지도자들을 향해 티베트 자유와 평화의 확보를 호소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1989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인정받았지만, 이로 인해 중국 정부의 국제적 견제와 압력은 더욱 심해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즈음에 발생하던 티베트인들의 무장 봉기와 시위, 분신자살이 이어질 때에도 달라이 라마는 폭력적 수단을 지지하지 않았다. 티베트 민족이 겪는 수난의 역사를 폭력을 되갚지 않고, 비폭력 평화주의를 견지하는 달라이 라마의 위대한 정신은 비폭력 무저항주의의 상징인 간디에 필적한다.

이제 세계인들이 티베트 민족의 아픔에 눈길을 주어야 할 때다. 하지만 티베트 민족의 간절한 소망에 귀를 기울이는 나라와 지식인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2012년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허용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얼마 전 의회 답변에서 “영국은 티베트가 중국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티베트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캐머런 총리는 달라이 라마를 접견했다가, 올 가을로 예정된 중국 방문 계획이 취소되고, 80억파운드(약 13조60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중국의 대(對)영국 투자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를 고립시켜 자유 티베트를 향한 한 치의 노력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중국의 외교적 보복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 세계에 보여준 생생한 사례다.

우리도 이런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이름이고, 불교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는 친숙한 편이지만, 실제 그의 철학과 정치적 주장의 요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달라이 라마가 전 세계 문명국가를 누비며 그의 티베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지지를 호소하고, 아직도 한국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달라이 라마 방문 허용 시 안게 될 유형, 무형의 중국의 제재와 압력을 견딜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계에서 같은 불교권 국가이면서도 달라이 라마가 방문할 수 없는 나라는 ‘티베트와 한국’뿐이라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부 국가들처럼 ‘오로지 종교적 차원’이라는 단서를 붙인 방문조차 허락할 수 없는 우리 정부의 지나친 ‘중국 눈치보기’ 현실이 씁쓸하다.

“내적 평화를 통한 세계 평화”라는 내면의 혁명을 체현해 온 달라이 라마라는 ‘활불’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노선이라고 일부의 비판 속에서도 “비폭력적 해방투쟁”에서 벗어나지 않는 달라이 라마의 고귀한 평화애호 정신에도 불구하고, 날로 강성해지는 중국의 패권주의 앞에서 이제 세계는 티베트 민족에 대한 연민조차 함부로 엿보일 수 없게 되어 간다.

저자도 이런 상황이 심화되는 걸 우려하는 듯하다. 그는 달라이 라마가 입적하면, “티베트 소유의 불법성이 끝장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중국지도자들을 향해 평화주의자 달라이 라마야말로 티베트 문제의 진정한 해결사가 될 수 있다며, 그와의 협상을 간곡하게 촉구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티베트 인들이 조국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다. 821년에 티베트와 중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며, 조캉사원 앞의 돌기둥에 양국 언어로 새긴 선언을 전설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중국인은 중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티베트인은 티베트에서 행복하게 살 것이다.”

글/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장(kipec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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