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절 레슬러도 단박에 깨운 ‘DDT 스네이크’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입력 2012.03.13 09:07  수정

[WWE 레전드]필살기 DDT로 유명한 WWF 시절 스타 로버츠

뱀과 함께 내뿜은 독 오른 카리스마 백미

로버츠의 독 오른 카리스마가 치명적인 유혹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동작하나하나마다 범접할 수 없는 독성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추억은 미화되고 과장하기 마련이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다.

지난 1980~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프로레슬링 메이저단체 ‘월드 프로레슬링 엔터테인먼트(WWE)’가 여기에 속한다. 실체 이상으로 과포장된 수준이 아닌, 지금 돌아봐도 내실이 꽉 찼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특히, 전율케 하는 전설적 레슬러들의 등장신은 카페인 커피를 다량 마신 직후의 각성효과처럼 엔도르핀을 샘솟게 한다.

통유리를 부수는 효과음과 나타나는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은 강인한 남성의 롤 모델이었다. 얼티밋 워리어가 그의 테마곡 ‘UNSTABLE’과 함께 링으로 돌진하는 장면에서는 많은 팬들이 무의식중에 빨랫줄을 흔들었다.

브록 레스너 등장신도 빼놓을 수 없다. 박자를 맞추듯 독특한 풋워크와 함께 두 팔을 정수리 위로 세차게 휘젓는다. 동시에 천지를 호령할 기합을 내지른다. 레스너의 장대한 ‘고릴라 등판’은 전국 헬스 마니아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WWE는 2012년 지금보다 지난 1980년~90년대 카리스마 넘치는 선수들이 많았다. 그중 노려보는 눈매만으로도 독살당할 듯한 ‘1급 독극물 카리스마’를 다시 꺼내본다.


‘혼절 레슬러도 단박에 깨운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필살기 ‘DDT’로 유명한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는 길쭉한 체형(신장 196cm·체중113kg)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대단했다.

등장 때마다 한 쪽 어깨에 비단 뱀 자루를 이고 나타나 상대 레슬러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로버츠가 데미안이라고 불렀던 그물비단무늬 구렁이는 사이즈만 3m가 넘었고 몸무게도 70kg에 육박했다. 다 자란 비단뱀의 경우, 평균 몸길이가 4m를 넘고 체중도 130kg에 달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80년대 로버츠와 달리, 90년대 로버츠는 뱀 자루와 함께 등장할 때마다 힘에 부치는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세월의 힘에 의해 데미안은 성장하고, 반대로 로버츠는 40대로 접어들어 상대적으로 기력이 쇠했다. 이로 인해 간간히 ‘대역 데미안’을 들고 나오기도.

상대 레슬러들이 로버츠를 두려워 한 가장 큰 이유도 뱀 자루를 항상 링 모서리에 두고 게임을 했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상대가 DDT 기술을 맞고 기절하면 얼른 자루를 풀어 혼절한 레슬러 가슴에 데미안을 살포시 얹어 놓았다. 승자의 엽기적인 세리머니 방식이었다.

로버츠 필살기 DDT.
또 한 가지 우스꽝스러운 점은 DDT 때문에 ‘일시적인 뇌진탕’ 증세를 일으킨 레슬러조차 뱀이 몸을 더듬는 순간 기가 막힌 타이밍에 깨어난다는 사실이다.

코너에 몰려 로버츠에게 흠씬 두들겨 맞다가도 주저앉은 엉덩이가 뱀 자루와 스치기만 하면 부리나케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로버츠의 하이라이트 경기는 故레비싱 릭루드(1958-1999)와의 철천지원수 대결이었다. 릭루드가 스네이크 아내에게 추파를 던지자, 이성을 잃은 로버츠가 릭 루드를 쥐어짜듯 쉼 없이 때리고 또 때렸던 명경기다.

특히, 1988년 릭루드의 노골적인 추파는 로버츠를 분노케 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릭루드는 경기를 하다말고 관중석에 있던 로버츠 아내에게 다가가 성희롱했다.

화가 난 로버츠 아내가 릭루드 뺨을 후려쳤고, 라커룸서 다음 경기를 준비하던 로버츠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달려 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릭루드 역공에 속수무책 흠씬 두들겨 맞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릭루드는 경기 때마다 신체 특정 부위에 로버츠 아내 얼굴을 새겨 넣은 유니폼을 공개하는 등 지속적으로 로버츠 아내를 성희롱했다.

닮은 꼴 체형 로버츠(196cm·113kg)와 릭루드(191cm·113kg)는 기본 매치를 비롯해 철장매치 등 숱한 하드코어 명경기를 펼치며 WWE 명예의 전당 경기 한 영역을 장식했다.

로버츠의 독 오른 카리스마가 치명적인 유혹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동작 하나 하나마다 범접할 수 없는 독성을 뿜어냈기 때문이다. 단순한 해머링조차 로버츠가 하면 리듬감 넘치고 전율케 했다.

2000년대 초반 전성기를 누린 더 락의 트레이드마크 ‘피플스 해머링’ 모태가 로버츠의 포이즌 해머링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두 레슬러의 해머링 공통점은 탭댄스를 연상케 하듯 경쾌한 발 구름과 함께 전광석화 연타 잽이 상대 레슬러 양 뺨에 정신없이 꽂힌다는 사실이다.

필살기 DDT도 단순한 피니시 기술 차원을 넘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았다. DDT를 하기 전 동작(검지 돌리기)에서부터 한쪽 팔 이두박근에 상대 머리를 꽉 낀 채 다른 한 손으로 상대 등을 내리치면서 그대로 내리꽂는 ‘이마타격 기술’은 스포츠 진기명기로 분류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복장 또한 로버츠의 일급 독극물 카리스마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뱀 무늬로 장식된 롱부츠는 닿기만 해도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전염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천재 레슬러 릭루드와의 명승부, 야생 파충류를 WWE 역사상 최초로 사각 링 안에 넣은 대범한 뱀 사나이, 스네이크를 모티브로 캐릭터를 잘 살린 기획력, DDT를 필두로 동작 하나 하나 자신만의 특징을 부여한 독보적인 개성파 레슬러. 독성 강한 카리스마라면 로버츠가 부동의 탑인 이유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충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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