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체육계를 향한 한 걸음, 이제 현장으로 [안덕기의 프리에이전트]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11.08 12:19  수정 2026.11.08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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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대한체육회장. ⓒ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체육계에서 징계는 결정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 당사자도, 징계받은 지도자나 선수도 그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재심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훈련과 대회는 이어지고, 당사자들은 같은 체육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다.


대한체육회가 지난 2일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을 개정했다. 징계 재심의 제도를 손질하고 체육단체 임원의 연임 심의 기준을 강화했다. 임원 비위가 발생했을 때 소속 단체의 통보와 자료 제출 의무를 명확히 하고, 채용 비위 처분 기준도 새로 마련했다.


체육계의 공정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이번 개정을 환영한다. 잘못된 징계를 바로잡고, 단체 임원에게 조직 운영의 책임을 묻겠다는 방향은 필요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개정된 규정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다.


이번 개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징계 재심의다. 기존에는 1차 징계에 대해 징계 혐의자만 재심의를 신청하면 징계를 가중할 수 없었고, 피해자만 신청하면 감면할 수 없었다. 대한체육회는 1차 징계가 심히 부당하거나 위법한 경우, 신청 주체와 관계없이 징계를 가중하거나 감면할 수 있도록 규정을 손질했다.


비위 정도에 비해 징계가 지나치게 가볍거나, 반대로 사실관계와 절차에 문제가 있는 결정이라면 재심의에서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신청했는지에 따라 잘못된 결정을 고치는 데 제약이 있었다면 이를 개선할 필요도 있었다.


대한체육회는 폭력행위로 견책 처분을 받은 지도자가 재심의를 신청했을 때, 징계가 비위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다고 판단되면 가중할 수 있다는 예시를 들었다. 이 대목은 개선의 필요성과 함께 앞으로 살펴야 할 과제를 보여준다.


재심의에서 징계가 가중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피해 당사자는 어떤 환경에 놓이게 되는가.


1차 징계가 견책이라면 그 징계 자체가 상대방의 출전이나 지도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과 활동 환경에 따라 피해 당사자가 상대방을 훈련장이나 대회장에서 마주칠 가능성도 있다. 다시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과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면, 선수에게 재심의의 시간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대의 경우도 살펴야 한다. 징계받은 사람이 사실관계나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재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그에게도 충분히 소명하고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결론이 나기 전까지 부당하게 활동과 명예를 침해받지 않도록 살피는 것 역시 공정한 절차의 일부다.


재심의는 최종 결정뿐 아니라 그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설계해야 한다.


재심의가 시작되면 당사자들의 상황을 살피고, 필요한 보호 조치가 무엇인지 신속하게 검토해야 한다.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듣고 훈련장과 대회장에서의 접촉 가능성, 신고 이후 불이익 우려, 상담과 법률 지원의 필요성을 확인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관계 기관과 소속 단체가 협의해 훈련 시간이나 공간, 대회 현장의 동선 등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조치의 이유와 범위는 분명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실제로 필요한 조치인지, 어느 한쪽의 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하지는 않는지 살피고, 조치가 길어지면 계속 필요한 지도 점검해야 한다. 임시 보호는 최종 판단에 앞서 당사자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대한체육회. ⓒ 뉴시스

시간 역시 선수 보호의 중요한 기준이다. 선수에게 한 시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조사와 심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은 보장하되 불필요한 지연은 줄여야 한다. 대회 출전과 선발, 계약처럼 시기를 놓치면 회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걸려 있다면 그 사정도 절차 운영에서 고려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모른 채 기다리지 않도록 진행 상황과 지연 사유를 적절히 안내하는 일도 필요하다. 피해 당사자에게는 보호와 지원을, 징계 대상자에게는 충분한 소명 기회와 절차 안내를 제공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혼자 견디게 해서는 안 된다.


재심의 권한이 넓어진 만큼 결정의 이유도 더 분명해야 한다. 1차 징계가 왜 심히 부당하거나 위법하다고 판단됐는지, 징계를 유지하거나 가중·감면한 근거가 무엇인지 당사자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판단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해충돌을 점검하는 일도 함께 따라야 한다.


체육계는 종목과 지역, 학교와 단체를 중심으로 관계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실제로 부당한 개입이 없더라도 심의의 독립성에 의문이 생기면 결정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 있다. 개인정보와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면서도 주요 판단 기준과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임원 연임 심의 기준을 강화한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대한체육회는 3연임 이상을 희망하는 임원에 대한 정량평가 지표를 강화하고, 회장과 일반 임원의 평가 항목과 배점을 차등화했다. 기존 가산점 제도는 폐지하고 연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감점이 확대되도록 했다.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기한 내 이행하지 않은 단체의 소속 임원에게 연임 심의 시 감점을 적용하도록 한 것도 의미가 있다. 징계가 요구된 뒤 체육단체와 임원이 처리 책임을 외면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체육단체의 성과는 경기 성적과 사업 실적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선수가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있게 대응했는지, 징계 요구와 결정이 제대로 이행되도록 했는지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물론 임원의 책임을 판단할 때도 실제 권한과 역할, 처리 과정의 구체적인 사정을 함께 살펴야 한다. 책임이 있는 곳에 분명하게 책임을 묻고 그 판단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제도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대한체육회의 이번 개정은 공정한 체육 환경을 향한 의미 있는 변화다. 잘못된 징계를 바로잡을 여지를 넓히고 체육단체의 책임을 분명히 하려는 노력은 평가받아야 한다.


이제 그 변화가 현장까지 이어져야 한다. 위원회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당사자들이 절차를 신뢰하며, 결정된 사항이 이행되는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재심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선수의 안전과 훈련 환경, 모든 당사자의 권리가 보호받아야 한다.


규정은 바뀌었다. 이제 체육 행정이 그 규정이 작동하는 시간을 책임져야 한다. 선수와 체육인들이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공정하게 보호받을 때, 이번 개정은 현장의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 데일리안

글 / 안덕기 대한체육회 홍보미디어위원회 부위원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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