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 의존 줄일 투자도 필요
미래대응기금 추가세수 공백 대비 필요
정치적 성과보다 장기 재정 원칙 먼저
관련 삽화. ⓒ데일리안 김성웅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낭만은 짧고 생활은 길다.”
2000년대 중반 한 금융 광고에 등장한 문구다. 낭만과 설렘의 순간은 짧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현실은 길다는 의미로, 연애나 결혼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 종종 인용된다. 최근 반도체 호황으로 뜻밖의 세수 풍년을 맞은 나라 살림을 보면서 이 말이 새삼 떠오른다.
호황기에 확보한 재정 여력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울 기회다. 그러나 경기가 좋을 때 늘어난 세수는 언제든 줄어들 수 있는 반면, 한 번 시작한 재정지출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가 감당할 부담을 줄이는 일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다. 호황의 시간표와 국정의 시간표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세수 풍년에도 불어나는 국가채무
정부는 지난 9월 올해 국세수입을 추경 전망보다 63조2000억원 많은 478조6000억원으로 재추계했다. 반도체 기업 실적뿐 아니라 특별배당과 증시 활성화, 소비 회복 등이 맞물린 결과다. 아직 확정된 세수는 아니지만 정부의 선택지는 넓어졌다.
국가채무는 올해 1412조8000억원에서 내년 1519조8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성장에 힘입어 국내총생산 대비 채무비율은 낮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 금액은 커진다. 경기가 꺾이면 채무를 감당할 여력도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투자 확대와 재정안정화를 병행할 계획이다. 내년 미래대응기금으로 성장동력과 청년, 지방, 교육·인재 분야에 45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국채 신규발행도 기존 계획보다 12조5000억원 줄이고 여유자금은 적립한다.
미래 투자는 필요하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우리 경제 전체의 경쟁력을 영원히 보장하지는 않는다. 인공지능과 연구개발, 산업 기반에 필요한 투자를 놓치면 장기적인 세수 기반이 오히려 약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지출이 성장의 토대가 되고 어떤 지출이 오래가는 부담으로 남는지 구분하는 일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최근 분석이 이 대목을 짚었다. 예정처는 내년 미래대응기금 사업비의 46.7%가 반복 지출이 우려되는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기금의 추가세수도 장기 세수 추세에 따른 산식상 2029년부터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복 지출이라고 불필요한 정책은 아니다. 필요한 복지와 인재양성 사업이라면 안정적인 재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나 일시적 호황에 기대어 사업을 늘리면 경기 하강기에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다시 빚을 내야 할 수도 있다.
미래 투자만큼 중요한 채무 감축
이형일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16일 태국 방콕 기자간담회에서 초과세수를 활용해 국채 발행을 5조원 줄였다고 밝혔다. 추가 축소는 시장 상황을 보고 결정하고, 나머지 재원의 미래대응기금 활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초과세수를 모두 채무 상환에 쓰는 것도 해답은 아니다.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유지하고 위기에 쓸 자금을 적립하면서 성장 효과가 큰 투자도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기준이 필요하다. 얼마를 채무 관리에 배분하고, 어떤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며, 세수가 줄어든 뒤 사업을 어떻게 유지할지 설명해야 한다.
채무를 줄이는 일은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남기기 어렵다. 새로운 지원책이나 사업과 달리 유권자가 체감할 성과를 내세우기 어려워 정치권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리기 쉽다.
미래 투자가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일이라면 채무 감축은 그 기회를 지킬 여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호황을 영구적인 재정 여력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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