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AI 모델에 의학 전문가 역량 결합
정부 신약 개발 투자, 장기적 관점 가져야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국내에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 암백신' 성공 사례가 나오기 어려운 건 기술과 임상 역량을 하나의 목표로 끌고 갈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모더나와 머크의 사례처럼 바이오텍과 제약사, 병원이 신약 개발 프로젝트의 성과를 내려면 정부가 나서 장기 투자와 규제 개선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현숙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는 2일 ‘모더나-머크 mRNA 암백신과 면역항암제’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모더나와 머크의 성공은 mRNA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명확한 질문과 자본을 가진 제약사, 그리고 병원이 완벽하게 협업한 결과”라며 “무엇보다 각 단계가 분절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더나와 머크는 지난달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유럽종양학회(ESMO)에서 개인 맞춤형 mRNA 암백신 ‘인티스메란 오토진’과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함께 투여한 경우 키트루다만 단독 투여했을 때보다 흑색종 재발 및 사망 위험이 42%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글로벌 임상 3상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한 고위험 흑색종 환자 113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항암 효과는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피해 숨어있는 암세포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 공격할 수 있느냐가 좌우한다. 모더나와 머크는 mRNA 암백신 초기 적응증(치료 범위)으로 유전자 변이가 많은 흑색종을 선택했다. 흑색종은 유전자 변이가 많은 만큼 암세포의 일부인 신생항원(네오안티젠)도 많이 나타난다. 신생항원을 표적해 암세포를 공격하는 면역항암제로서는 최적의 상대인 셈이다.
모더나의 mRNA 암백신은 흑색종 환자 개개인의 종양을 분석해 주로 나타나는 신생항원을 최대 34개까지 반영한다. 이후 몸에 들어가 환자의 면역세포에 맞춤형 ‘공격 대상(신생항원)’을 가르친다. 이후 머크의 키트루다가 면역세포의 PD-1에 달라붙어 암세포의 면역 회피를 막는다. 항암 수술 뒤 남아있는 암세포까지 끝까지 사멸시켜 재발을 막는 방식이다.
모더나는 신생항원을 골라낼 때 특화된 AI 모델을 사용했다. 종양에는 적게는 수백에서 많게는 수천 가지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다. 여기서 면역세포가 잘 알아 볼 수 있으면서 실제로 면역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신생항원을 골라내야 한다. 이렇게 AI가 골라낸 신생항원을 생화학과 면역학 및 생물정보학 등 연관 분야 과학자들이 검증한 뒤 암백신에 실릴 최종 신생항원을 결정하는 구조다.
이 교수는 “모더나가 암백신에 활용한 AI 모델은 구글의 알파폴드와 무관하고 AI가 자동화 루프에서 혼자 새로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며 “mRNA 기술과 여러 전공자의 판단 그리고 표적(신생항원)을 고르는 암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함께 적용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미국 보스턴 지역의 병원 인프라 역할도 컸다. 수술로 떼어낸 종양을 분석한 뒤 mRNA 암백신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주다. 병원에 mRNA 암백신이 도착한 뒤에도 키트루다와 함께 특정 조건에 맞춰 여러 차례 나눠 맞혀야 한다. 일반 백신보다 환자 관리가 훨씬 까다로웠던 셈이다.
결국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mRNA 암백신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컨트롤 타워를 통해 신생항원 발굴부터 암백신 제조, 임상 시험까지 연속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머크는 성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10년 가까이 모더나에 투자했다. 정부 차원에서 신약 개발 사업에 투자할 때도 장기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데이터 규제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혔다. 모더나처럼 정확도가 높은 mRNA 암백신용 AI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환자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현재 국내에서는 환자 데이터를 쓸 때마다 건건이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가 바이오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면서도 연구개발(R&D)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전향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각자 잘하는 민간 기업들이 어떻게 전체적으로 잘 협업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민간에서는 임상 시험 능력과 디자인이 중요하고, 정부는 규제를 푸는 것에 있어서 과학 발달에 맞게 전향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AI 정책 측면에서도 바이오 등 병원 데이터 특화 모델 지원과 더불어 바이오 기초 과학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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