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검열엔 7억 뚝딱, 1급 수사도면은 나라장터에 ‘통째 노출’
통계는 틀어쥐고 기밀은 흘리고…‘기본기’ 실종된 관료사회
3개월 순유입 47명…현금 수혈로도 못 막는 지역 소멸의 벽
통계 인용 기사를 검증하는 AI 사업에는 7억6800만원의 예산이 편성된 반면, 중수청 내부 도면은 공개 조달망에 노출됐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인구 유입 효과를 둘러싼 논란까지 겹치며 정책 우선순위와 행정의 기본기가 시험대에 올랐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10월의 마지막 주 세종과 대전 관가를 달군 세 가지 정책 이슈는 현 정부 관료사회가 마주한 구조적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최고 권력의 질타에는 수개월 만에 수억원대 신규 전산망을 급조할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이면서도, 정작 최고 수준의 기밀성이 요구되는 신설 수사기관의 인프라는 기초적인 보안 관리조차 되지 않았다. 여기에 수백억 원의 국가 재정을 쏟아부은 역점 사업은 채 1년도 안 돼 정책 목표의 한계를 노출했다.
◆ ‘오보 방지 지원’ 명분 내세웠지만… 독립성·타이밍 둘러싼 시각차
국가데이터처가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한 7억6800만원 규모의 ‘AI 기반 통계 인용 기사 정확성 확인 시스템 구축 사업’이 도마에 오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타이밍’이다.
이종욱 국민의힘 의원실 자료를 인용한 조선일보 보도(10월 29일자)에 따르면, 이 사업은 지난 7월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업무보고 자리에서 언론의 부정확한 통계 인용을 강하게 질타한 직후 급물살을 탔다.
당시 이 대통령은 연평부대 방문 때 사용한 총기 보급 보도를 ‘가짜 뉴스’ 사례로 지목했는데, 정작 해당 통계는 국가데이터처가 아닌 국방부 소관이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엉터리 기사” 지적 직후 기사의 맥락까지 분석해 오보를 걸러내는 ‘하이브리드 AI 검증 엔진’ 예산이 내년도 정부안에 일사천리로 반영됐다.
국가데이터처는 AI 기사 검증 사업이 통계 오류를 줄이기 위한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론 질타 이후 추진된 사업의 시점과 검증 범위를 놓고 통계 독립성과 보도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비판 언론을 겨냥한 검열 논란이 번지자 국가데이터처는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기사 속 수치를 공식 통계와 비교하는 과정을 자동화할 뿐이며, 논란이 된 ‘고차원적인 맥락 분석’ 역시 기준 시점·모집단·단위·지표 정의 대조에 한정된다는 설명이다.
오류 발견 시에도 정정 협조 요청에 그치고 수정 여부는 언론사가 자율 판단하므로 보도 위축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사업 기획의 절묘한 시점과 예산의 불균형을 보면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국가데이터처가 본연의 통계 품질 혁신을 위해 배정한 ‘특화 자체 생성형 AI 모델 연구(1억원)’나 ‘통계자료 자동분류 확대(2억원)’ 예산보다 두세 배나 큰 7억6800만원이 대통령 발언 수개월 만에 단일 검증 사업에 배정됐다.
이종욱 의원은 “국가데이터처는 부동산 통계 조작 논란 등을 거쳐 통계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처’로 격상된 것”이라며 “그런 데이터처가 대통령 지시를 운운하며 언론 보도를 검증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대통령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의도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내세우는 ‘전년 동기 대비’ 지표에 맞서 언론이 ‘전분기 대비’ 수치나 ‘체감실업률’로 정책 한계를 짚는 것은 고유의 해석 영역이다. 대통령의 호통 직후 급조된 AI가 이를 ‘속성 불일치’로 통보하기 시작한다면, 이를 순수한 ‘지원 서비스’로 받아들일 언론사는 없다.
◆ 출범 일정 맞추다 놓친 보안 기초…수사 보안 체계 완결성 확보 시급
검찰청 폐지와 함께 지난달 1일 출범한 중대범죄수사청을 둘러싼 논란은 국가 보안의 최후 보루에서 결코 벌어져서는 안 될 초보적 보안 참사라는 점에서 충격파가 크다.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5차례에 걸쳐 조달청 나라장터에 게시된 냉난방 공사 입찰공고에 중수청 본청과 전국 7개 지방청의 내부 평면도 59장이 암호화나 열람 제한 없이 무방비로 공개된 사실이 확인되면서다(조선비즈 10월 28일자·조선일보 10월 30일자 보도).
노출된 도면에는 중수청장실은 물론 전산 서버실, 디지털포렌식실, 조사실, 구속 피의자 대기실의 위치와 구조가 상세히 담겼다.
중수청 본청과 지방청의 내부 평면도 59장이 나라장터에 공개되면서 수사시설 보안 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정부는 도면 삭제와 출입통제 강화를 강조했지만, 이미 노출된 내부 구조에 대한 후속 보안 대책이 과제로 남았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논란이 일자 행정안전부 산하 중수청 개청준비단은 설명자료를 통해 “확인 즉시 나라장터에서 도면을 삭제했다”며 청사 스피드게이트·CCTV 등 출입통제시스템으로 방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행안부 관계자는 “수사기관 공사는 도면을 비공개해 현장 열람을 시켜야 하는데, 중수청이 아직 보안 시설로 지정되지 않아 실무자가 실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사고가 터진 곳이 정부청사 보안과 안전관리를 총괄하는 행안부 소속 핵심 수사 외청이라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경찰 등 수사기관은 국가정보원법과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나~다급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돼 위성사진까지 가려지지만, 중수청은 내부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안시설 지정도 받지 않은 채 수사를 개시했다.
피의자 호송 동선과 증거 서버 위치가 담긴 1급 기밀 도면을 실명(室名)조차 가리지 않고 민간 조달망에 올린 것은 심각한 기강 해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졸속으로 개청을 밀어붙이다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며 “이미 공개된 도면을 수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안 사고는 계속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유출된 도면을 두고 ‘사후 삭제했고 출입게이트로 막겠다’는 해명으로는 무너진 보안 기강을 덮기 어렵다.
◆ 498억원 투입에도 돌아선 인구 그래프… 초고령화 벽 실감한 남해군
이재명 정부의 핵심 농정 브랜드인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둘러싼 공방 역시 정부의 반박 논리 속에 정책의 한계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총 498억원을 투입해 매달 55억원씩 전국 최초로 기본소득을 지급한 경남 남해군의 인구가 최근 3개월 연속 감소하며 시행 8개월 만에 인구 증가 효과가 사실상 끝났다는 자체 평가(중앙일보 10월 29일자 보도)가 나오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장문의 반박 자료를 내놨다.
남해군은 ‘9월 인구현황 보고’에서 “기본소득 이전 상황으로 회귀했다”며 “자연 감소 우위 환경으로 전환됐다”고 진단했다.
농식품부는 남해군 인구가 전년 대비 4.4% 늘어난 4만1032명을 유지 중이고, 최근 감소는 전입(660명)이 전출(613명)보다 많았으나 고령층 자연감소 탓이라고 반박했다. 10개 군 가맹점 17.3% 증가와 833개 신규 창업을 들며 상권 성과도 강조했다.
안성필 남해군 인구청년정책단장 역시 “남해 연고 인구의 전입이 일단락돼 초기 유입 효과는 줄었지만, 전출이 줄어 전년보다 감소세는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경남 남해군의 7~9월 순유입 인구는 47명으로, 고령화에 따른 자연감소를 상쇄하지 못했다. 기본소득의 전출 억제·상권 활성화 효과와 함께 장기 정착을 뒷받침할 일자리와 생활 기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생성형AI를 활용해 제작했으며, 수치와 내용은 기자가 검수함.)
하지만 이 반박은 현금성 기본소득의 구조적 한계를 스스로 실토한 격이다. 7~9월 석 달간 남해군의 순유입 인구는 고작 47명(월 15.6명)에 그쳤다.
65세 이상 비율이 44.5%에 달해 매달 60명 안팎이 자연 감소하는 초고령 농어촌에서, 수백억 원을 쏟아부은 순유입이 월 15명 수준에 불과해 사망세를 메우지 못한 것이다. 충남 청양군도 353억원을 투입하고도 5개월 연속 인구가 줄어 3만명 선이 다시 무너졌다.
최호택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도 없는 상태에서 소멸 위기 지역의 감소세를 잠시 늦추는 수준의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쏟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대도시와 농어촌을 묶을 교통 등 기반시설 확충에 재정을 쓰는 게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신규 지역 추가 공모에 앞서 정주 인프라 없는 현금 살포의 한계를 무겁게 직시해야 할 때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