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버린 친구, ‘한결의 흔적’을 따라서 [쇼트 시네마(17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11.01 11:12  수정 2026.11.0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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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영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이경은 돈을 빌린 뒤 연락을 끊고 사라진 옛 친구 한결을 찾고 있다. 한결은 이경뿐 아니라 고등학교 동창들에게도 돈을 빌린 상태다. 동창들이 고소까지 거론하자, 한결과 유난히 가까웠던 이경은 마음이 무거워진다. 결국 직접 한결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한결의 흔적' 스틸 ⓒ

한결이 살던 집은 이미 텅 비어 있다. 그곳에 남은 건 한결이 키우던 거북이 한 마리뿐이다. 거북이를 발견한 이경은 재희, 한결과 함께 입시 미술을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세 사람은 거북이에게 등껍질이 곧 집이며, 그것을 잃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언젠가 자신들만의 작업실을 짓고 함께 살자는 꿈도 꾸었다.


또 철거를 앞둔 한결의 집터에 어떤 건물이 들어설지 궁금해하며, 훗날 셋이 다시 찾아오자고 약속하기도 했다.


현재 재희의 집에 얹혀사는 이경은 한결의 거북이를 데려온다. 재희는 갈 곳 없는 처지에 거북이까지 떠맡은 이경을 나무란다. 그러나 이경은 한결이 언젠가 거북이를 찾으러 돌아올 것만 같다. 재희 역시 한결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과거 한결의 아버지가 버렸던 기타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경은 한결이 일했던 미술학원까지 찾아가지만, 그가 두 달 전 일을 그만뒀다는 사실만 확인한다. 한결이 두고 간 가방을 챙겨 나오던 중 우연히 한결로 보이는 사람을 발견하고 뒤쫓는다. 지하철 승강장 건너편에서 마침내 한결을 발견하지만, 열차가 들어오면서 두 사람 사이가 가로막힌다. 한결은 그대로 열차를 타고 사라진다.


이경은 다시 한결의 빈집을 찾아간다. 가방에 남아 있던 펜으로 한결에게 편지를 쓴다.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는 마음을 전하려 하지만, 잉크가 거의 다 닳은 펜은 좀처럼 글씨를 남기지 못한다. 마음은 급해지고 끝내 눈물이 흐른다.


이후 이경과 재희는 거북이를 데리고 철거된 한결의 집터를 찾는다. 언젠가 세 사람이 함께 돌아오기로 약속했던 장소다. 한결은 없지만 두 사람은 거북이와 함께 그 자리에 선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돌린다.


영화는 한결이 사라진 이유나 이후의 행방을 설명하는 대신, 남겨진 두 친구의 마음을 따라간다. 돈을 빌리고 떠난 친구가 원망스러우면서도 걱정되고, 다시 만나고 싶으면서도 막상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이경이 거북이를 데려오고 재희가 기타를 간직하는 행동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우정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거북이와 집도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등껍질을 집 삼아 살아가는 거북이와 달리, 세 친구의 삶에는 안정적으로 머물 공간이 없다. 한결은 집을 떠났고 이경은 재희의 집에 얹혀 지낸다. 한때 함께 작업실을 짓고 살자던 꿈도 현실과 멀어졌다. 오래된 동네가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변화 속에서, 세 사람이 공유했던 시간 역시 과거의 기억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이경과 재희는 거북이를 데리고 한결의 집터를 찾는다. 언젠가 셋이 함께 돌아오자고 했던 장소지만, 정작 한결은 없다.


이 작품은 시간이 흐르며 달라지는 친구 관계와 어른이 된 뒤 마주하는 현실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학창 시절에는 같은 꿈을 꾸고 미래를 약속했지만, 각자의 삶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함께한 기억과 상대를 향한 마음까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한결을 찾아가는 이경의 여정을 통해 멀어진 관계를 선뜻 놓지 못하는 마음과 지나간 시절을 향한 그리움을 전한다. 러닝타임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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