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변동으로 긴급 취소”…해빙 기대 속 다시 조이는 한한령 [가요 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6.10.31 16:00  수정 2026.10.3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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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후 최소 15건 무산…노래 없는 '문화교류' 팬미팅 우회로도 막혀

국적·지역 안 가리는 취소…환불 공방 속 피해는 팬 몫

중국 본토에서 한국 연예인의 팬미팅과 팬사인회가 잇따라 무산되고 있다. 5월 이후 취소되거나 연기된 행사가 최소 15건에 이르고, 상하이에 몰렸던 차질은 청두와 베이징으로 번졌다. 콘서트가 막힌 상황에서 노래 없는 ‘문화교류’ 형식으로 명맥을 이어온 팬미팅까지 막히면서, 올해 초 한중 정상이 문화교류를 점진적으로 넓혀가기로 한 뒤 커졌던 해빙 기대와는 반대 방향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11월 중국 팬미팅을 준비하던 한 가수는 측은 현지 관계자로부터 “국내 정책 변동으로 한국 연예인의 팬미팅, 사인회 등 행사 개최가 긴급히 중지됐다(由于国内政策变动,对于韩国艺人的见面会签售会等活动举办被紧急叫停)”는 메시지를 받았다. 원문의 ‘자오팅(叫停)’은 윗선의 지시로 멈춰 세운다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다.


최근 중국 팬미팅이 취소된 가수 김재중(왼쪽)과 아이즈원 출신 배우 김민주 ⓒ데일리안DB

특정 아티스트나 주최사의 사정이 아니라 한국 연예인의 행사 전반이 중국 당국의 정책 판단에 따라 막히고 있다는 정황이지만, 어떤 정책이 바뀌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이어진 한국 대중문화 제한, 이른바 한한령의 존재 자체를 공식 인정한 적이 없다.


소속사와 현지 주최사의 공지, 관련 보도를 종합한 결과 5월 이후 중국 본토에서 예정됐던 한국 연예인의 팬미팅·팬사인회 가운데 최소 15건이 취소·연기되거나 개최지를 옮겼다. 이 중 11건이 상하이 일정이었다. H.O.T. 출신 토니안과 강타의 5월 31일 청두 합동 팬미팅이 하루 전 취소된 데 이어, 9월에는 선미와 박지훈, 엑소 시우민·첸의 상하이 팬미팅이 잇따라 취소되고 백현의 팬미팅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10월 들어서도 트레저와 알파드라이브원, 에반의 상하이 팬사인회가 취소됐고 FT아일랜드는 팬미팅을 미뤘다.


또 크래비티는 이달 24일 베이징에서 열 예정이던 팬미팅을 당일 취소하면서 ‘현지 사정’이라고만 밝혔고, 아이즈원 출신 배우 김민주는 9월 12일에서 31일로 한 차례 미뤘던 상하이 팬미팅을 23일 끝내 취소했다. 가수 김재중이 3일 청두에서 열려던 팬미팅도 무산됐다. 주최사와 소속사의 공지에는 ‘불가항력적 요인’ ‘불가피한 사정’ ‘현지 사정’ 같은 표현이 되풀이됐다.


그동안 중국 본토에서 한국 가수의 콘서트는 사실상 막혀 있었지만, 노래 무대 없이 대화와 게임으로 꾸리는 팬미팅은 비교적 가능한 영역으로 여겨졌다. 김재중은 지난해 4월 충칭을 시작으로 상하이와 칭다오, 청두에서 팬미팅을 열었고, 올해도 토니안이 4월 상하이에서, 배우 이성경이 5월 청두에서, 채수빈이 8월 광저우에서 중국 팬들을 만났다. 중국 매체 위러쯔번룬은 5월 기사에서 올해 1~5월에만 30여 건의 한국 스타 팬미팅이 중국 본토에서 발표됐다며, 공연 허가를 받을 수 없는 한국 스타들이 ‘문화교류’ 형식을 빌려 우회해 들어오고 있다고 짚었다.


피해는 팬과 국내 소속사에 돌아간다. 김재중의 청두 팬미팅은 취소된 지 3주가 넘도록 티켓 환불이 이뤄지지 않았고, 소속사 인코드는 28일 주최사의 환불 지연과 미이행에 대해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코드는 취소 사유와 법적 절차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민주 측은 티켓 환불과 함께 교통·숙박 비용 보상을 현지 주최사를 통해 진행한다고 안내했지만, 보상 기준과 이행은 결국 현지 주최사의 몫으로 남았다.


이번 연쇄 취소는 한한령이 문서 없이 운용되는 제재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킨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1월 5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문화교류를 점진적·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지만, 청와대가 밝힌 첫 단계는 바둑·축구 등 양측이 수용 가능한 분야였고 드라마·영화는 실무협의 과제로 남았다. 중국이 제재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해제 역시 선언될 수 없고, 정상 간 합의와 별개로 개별 행사의 허가는 여전히 지역 당국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중국 상하이에 걸린 맥도날드 지드래곤 광고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훙수 캡처

맥도날드 중국이 이달 8일부터 본토 8000여개 매장에서 지드래곤과의 협업 메뉴를 내놓는 등 상업 영역의 문은 열려 있지만, 광고는 기업의 판매망을 통해 집행되는 반면 공연과 팬 행사는 별도의 허가를 거쳐야 하는 만큼 이를 한한령 완화의 신호로 보기는 어렵다.


업계는 당분간 본토 팬 행사가 정상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대중음악 기획사 관계자는 “본토 대신 마카오나 대만에서 공연과 팬 행사를 여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나오고, 상하이 일정을 다른 지역으로 옮겨 치르는 방법도 논의되고 있다”며 “다음 달 18~19일 중국 선전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등 외교 일정이 이어지지만, 정상 간 합의가 지역 당국의 허가 단계까지 내려오지 않는 한 현장의 불확실성은 해소되기 어렵다”고 짚었다.


또 이 관계자는 “본토 일정을 추진하더라도 취소 시 환불 책임 주체와 보상 범위를 계약 단계에서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결정에 아무 권한이 없는 팬과 국내 소속사가 비용을 떠안는 일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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