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10조 '쑥'…675조 돌파
장기 예치 대신 투자 대기 선택
예탁금 급감 속 쪼개기 적금 늘어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서 시민들이 시중은행 ATM기기 앞을 지나고 있다.ⓒ뉴시스
국내 주식시장이 뚜렷한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박스권에 갇히자 갈 곳을 잃은 시중 자금이 은행 대기 자금으로 향하고 있다.
자금을 장기로 묶어두기보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단기 예치 방식을 택한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증가세를 보였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주요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75조5249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과 비교해 1.6% 급증한 규모다.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등을 포함하는 요구불예금은 입출금이 자유로워 대표적인 대기성 자금으로 꼽힌다.
이처럼 요구불예금이 늘어난 배경에는 증시 정체와 맞물린 투자자들의 관망세가 자리 잡고 있다.
은행 예금 금리는 높은 편이지만 증시 반등세가 꺾이면서 투자 심리도 식었다.
장기 예치에 따른 투자 기회비용을 꺼린 개인들이 은행에 돈을 잠시 얹어두는 선택을 한 결과다.
여기에 기업들의 자금 흐름도 요구불예금 확대를 뒷받침했다.
수출 호조에 따른 결제 대금이 유입된 데다, 단기 운전자본 형태로 유동성을 쌓아두면서 법인 자금이 은행으로 대거 유입됐다.
실제로 지난달 한 달 동안 기업 자금 유입 등에 힘입어 요구불예금 증가 폭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자산시장의 관망 심리는 증시 지표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 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6월 4일 139조6948억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내림세를 이어갔다.
지난달 4일에는 93조5500억원까지 줄어들었다.
9월 30일 기준 104조6644억원으로 저점 대비 소폭 반등하긴 했으나, 지난 6월과 비교하면 25.08%나 감소한 수준이다.
반면 안정적인 확정 이자를 챙길 수 있는 저축성 상품 중에서는 적금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5대 은행의 9월 말 정기적금 잔액은 46조2749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2.66% 증가했다.
지난 7월 1조9179억원 감소했던 정기적금은 8월 734억원 증가로 돌아선 뒤 9월 들어 증가 폭을 1조원 이상으로 키웠다.
월간 증가액 기준으로는 2024년 9월(1조2157억원) 이후 1년 만에 최대 폭이다.
목돈을 한 번에 묶는 대신 매달 쪼개 저축하려는 소액 분산 수요가 집중된 결과다.
정기예금 잔액은 1006조871억원으로 5개월 연속 증가 흐름을 이어갔다.
다만 정기예금의 월간 증가 폭은 7월 35조5401억원에서 8월 15조6831억원, 9월 5조4641억원으로 눈에 띄게 둔화했다.
예금 금리가 정점을 지났다는 인식이 퍼진 데다, 장기 예치를 꺼리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요구불예금은 조달비용이 극히 낮아 은행의 순이자마진(NIM) 방어와 수익성 개선에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언제든 자산시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자금인 만큼, 유동성 관리 측면에서는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구불예금은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주식 등 시장 상황에 따라 등락할 수 있다"며 "예금금리 또한 높아지면서 은행권으로 자금이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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